
호랑이는 우리 민족과 함께 살았던 동물이다. 백두산 호랑이로 불리는 우리나라 호랑이는 러시아의 시베리아 호랑이와 같은 종으로 덩치가 웬만한 황소만 하다.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은 인도의 벵골 호랑이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몸집을 갖고 있다.
이런 호랑이를 옛날 사람들은 범이라고 했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조선범이라고 한다. 한반도에서 정확히 언제 호랑이가 멸종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일제 강점기 때까지도 포수들이 호랑이를 잡았다는 기록이 있다.
호랑이는 농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고라니나 멧돼지 등을 잡아먹어 개체 수를 조절하는 이로운 역할을 했다. 그러나 배가 고프면 민가로 내려와 가축을 물고 가고, 드물긴 해도 사람을 잡아먹는 경우도 있었다. 호랑이에게 당하는 재난을 호환이라고 한다.
지금도 강원도 산골에 가면 호식총의 흔적이 남아 있다. 화전민들이나 약초꾼들이 심심산골을 헤매다가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사고를 당하면, 남은 시신을 수습하여 무덤을 만들어 놓은 것이 호식총이다.
옛사람들은 호랑이가 무서워 밤에 화장실 가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월걱대'라는 호랑이 퇴치를 위한 긴 장대가 있었다. 길고 굵은 대나무 끝을 몇 갈래로 찢어 방문 앞의 마루에서 마당 쪽으로 걸쳐 두고 '월걱 월걱' 소리가 나게 흔들어대던 것이다. 이런 월걱대 이야기를 증조할머니에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
호랑이는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항상 사람들 곁에 있었다. 절에 있는 산신각에 가면 산신 옆에 호랑이가 수호신처럼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호랑이는 민화에도 자주 등장하며 사람처럼 담배를 피웠다는 익살과 해학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서울의 인왕산에도 호랑이가 많아 경복궁으로 내려온 호랑이를 궁수들이 잡았다는 기록도 있다. 영남이나 호남에서 과거 보러 서울로 가는 사람들이 마지막 넘어야 하는 고개가 남태령인데 그곳에도 호랑이가 득실댔다고 한다.
호랑이가 아무리 사납고 무섭다고 해도 인간보다 무섭진 않았나 보다. 세금을 징수하는 세리들은 예나 지금이나 범보다 무서운 존재다. 황구첨정이나 백골징포 때문에 호패를 버리고 호랑이가 우글대는 산으로 숨어든 백성들이 많았던 것이 조선 시대의 사회상이었다. 결국 범보다 무서운 것이 인간이다.
이제 호랑이도 사라지고 월걱대도 없다. 그러나 범보다 무서운 인간들의 횡포는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 문득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 그리워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봉수 논설주간]
시인
이순신전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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