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물포 개항장에서 140년 전 조선의 민낯을 본다
제물포는 개항과 동시에 열강의 조차지가 설정되어 조선 침탈이란 아픈 역사가 있었다. 조선의 굳게 닫힌 쇄국의 문이 제물포에서 열리고 서구 열강들은 서둘러 조선 침략의 야수를 드러냈다. 1876년 운양호사건으로 강화도 조약이 처결되면서 서양의 문물이 물밀듯이 조선반도를 강타하였다. 열강들은 서로 다투어 제물포에 점령지 같은 조차지를 구획하였다. 러시아, 미국, 영국, 독일, 일본과 청나라였다. 그중에서 가장 강한 세력을 구축한 나라가 일본과 청나라였다. 청나라 화상들이 대거 입국하여 차이나타운을 만들었고 일본인이 제물포 상권을 장악하여 상인 촌을 형성하였다.
일본은 조일수호조규(병자수호조약)를 처결하여 적극적인 조선 침탈의 바탕을 구축하였다. 한적한 제물포항에 열강의 포성이 으르렁거렸다. 제물포는 원래 전국의 세수와 물동이 집산하여 강화도와 한강을 통하여 마포나루에서 도성으로 옮겨지던 물류의 집산되는 포구였다. 전국의 물산이 옮겨지는 중심 포구론 고려 땐 예성강의 벽란도였고 조선은 인천의 제물포였다. 그만큼 제물포는 물동량이 많았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단행하여 근대국가로 급성장하여 서구열강과 대등한 위치에서 조선과 국교를 펼쳤다. 흥선대원군의 통상거부정책을 적극 지지하던 척사위정 세력이 와해 되고 민씨 척족 정권이 등장하면서 통상 교섭의 전기를 맞았다. 북학과 서학의 영향을 받은 영의정 이유원과 우의정 박규수가 주선하여 교섭이 이루어졌다.
청나라는 일본을 견제하려고 조선과 프랑스, 미국과의 국교를 권고하였으나 일본은 무력시위로 국교를 강행하였다. 군함 3척을 부산항에 파견하여 함포사격으로 조선 정부를 압박하더니 운요호를 수도의 관문인 강화도에 출동시켜 군사력을 동원한 강력한 교섭을 펴서 마침내 1876년 2월 3일 강화 연무당에서 전권 대신 신헌과 일본 특명전권판리 대신 구로다 기요타카가 12조로 된 조일수호조규를 체결하였다.
조선은 부산 이외에 두 항구(원산과 인천)를 20개월 이내에 통상할 개항을 할 것이며 연안 항해의 안전을 위해 일본의 항해자에게 해안 측량을 허용한다는 12조의 불평등조약으로 맺어 일본의 식민주의적 침략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리고 1882년 한미 통상조약이 화도진에서 이루어졌다. 이렇게 제물포에 5개국 조계지가 성립되었고 1914년 일본이 강제 침탈을 하면서 조계지가 폐지되었고 그 흔적이 신사에 남았다.
인천 상륙작전의 현장(자유공원=만국공원)
맥아더 장군 동상 : 인천시 중구 송학동 응봉산 자유공원엔 인천 상륙작전을 기념하는 높은 위상의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서 있다. 쌍안경을 쓰고 월미도를 바라보는 맥아더 장군의 근엄한 모습에서 한국 전쟁의 아픔을 되새긴다. 동상은 1957년에 건립되었다. 인천 상륙작전은 북한에 점령당한 남한을 찾으려고 점령지 허리를 끊고 유엔군이 상륙하여 북한군을 물리치고 한반도를 수복한 감격의 역사 현장이다.
자유공원은 열강의 조차지를 끼고 앉아 만국공원이라고도 한다. 공원 안에 연오정(然吾亭)과 석정루(石汀樓)이 있는데 연오정은 1919년 한성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13도 대표가 모여서 회의를 열었던 곳으로 연오 조용묵 선생의 아들이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1960년에 건립하였다. 석정루는 8각 지붕의 정자로 서해를 바라보는 전망대를 세웠다.
제물포 개항지: 조선 처음으로 개항한 제물포는 조차지란 아픈 역사가 있다. 지금도 역사 유산들이 제물포항 주변에 산재해 있다. 인천시는 개항 이후 제물포의 변천사를 인천항 누리길에서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었다. 제물포항의 옛 거리와 건물들이 아직도 건재해 있었다. 건물의 벽돌벽을 그대로 두고 지붕과 내부를 변경하여 조차지 거리와. 차이나타운. 일본인 거주지를 재현해 놓았다. 그 후 제물포항은 물동량이 많아지면서 신 제물포항(신포항)으로 변천하여 다시 인천항으로 변모하였다. 갑만의 차가 심해서 배가 드나들지 못해 갑문(덕크)을 7개 만들어 1에서 7까지 차례로 물을 가두어놓고 문을 여닫아 배가 드나들게 하였다. 따라서 덕크가 있으나 큰 화물은 운송이 힘들다.
차이나타운: 화교들과 화상들의 집단 주거지다. 중국의 화상들이 무역을 독점하던 곳인데 지금은 화려한 중화 음식 거리로 자리를 잡고 있다. 차이나타운은 화연장 차이나타운(황제의 길)으로 시작된다. 인천항에서 차이나타운 홍예문을 지나 자유공원에 오른다. 청일 조계지 경계는 공자상으로 구분하고 거리엔 스토리텔링 초한지 벽화와 삼국지 벽화거리가 조성되어 있고 자장면 백화점과 송월동 동화 마을에서는 옛 인천의 이발소, 가게, 주막 등의 풍물을 엿볼 수 있다. 공화춘은 자장면 춘장을 고루 갖춘 중화반점으로 유명하다.
일본인 거주지: 인천개항 누리길은 중구청사 앞거리인데 일본인 가옥이 산재해 있었던 곳이다. 조계지 7구역 경계계단을 오르며 일본인 은행, 상인 등 집단 가옥이 즐비하게 정렬되어 있고 일본관청이 건재해 있던 곳에 중구청이 그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중구청사 뒤엔 당시 번창하였던 일본의 사교 구락부 건물이 그대로 존치해 옛 추억을 들추게 한다.
개항누리길엔 현대 문학관 등 문화예술관, 박물관을 따라 신포동에 이루는 해변엔 엘로우하우스란 환락장이 한때 이름을 날렸으나 지금은 옛 이름만 전하고 있었다. 인천의 신포동은 새로운 서양 문물의 입항지로 번창을 누렸다. 신포에서 동인천역은 신흥 문물이 범람한 곳이었다.
관광 명소인 월미도: 서울 사람들의 신혼여행지였던 월미도는 바다가 매립되어 섬의 형태를 잃어버리고 유흥관광지로 발전하여 수산물 식도락을 즐길 수 있는 명소가 되어 버렸다. 월미도엔 조선인이 처음 하와이로 이민갔던 이민사를 엮은 이민사 박물관에서 한국 이민 역사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고래의 형상을 한 해양박물관이 인천항의 역사와 변천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월미도에 나서서 바다 건너 영종도의 모습은 새로운 인천의 모습과 송도 국제도시가 새롭게 발전하는 인천과 다른 미래상을 예측하였다.
[김용필]
KBS 교육방송극작가
한국소설가협회 감사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마포지부 회장
문공부 우수도서선정(화엄경)
한국소설작가상(대하소설-연해주 전5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