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결혼은 인생의 ‘통과의례’가 아니라 선택이 되었다. 봄이 오면 논에 물이 들듯, 나이가 차면 사람은 당연히 혼인해야 한다고 믿었다. 개인의 행복보다 가문의 유지가 중요했던 농경사회에서 결혼은 사랑 이전에 생존의 계약이었다. 인간은 결혼을 통해 유전자를 남기는 생존방식을 유지했다. 그래서 아이를 낳고 아이는 곧 노동력이 되었으며, 그 노동력으로 사회가 돌아가고 국가의 기본 틀이 되었다. 그러나 시대는 빠르게 변했고, 인간은 이제 혈연보다 주체적 자아를 중요시하는 존재가 되어 비혼주의는 사회현상이 되고 가고 있다.
인류 역사에는 의외로 많은 비혼주의자들이 존재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인간의 정신과 이데아의 세계를 탐구하며, 비혼주의자로 생을 마감했다.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 역시 평생 독신으로 살며 자신의 삶을 철학의 질서 안에 묶어두면서 비혼주의자가 되었다. 또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사랑과 결혼을 인간의 소유욕과 권력 의지의 문제로 바라보며 “결혼은 긴 대화가 가능한 사람과 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스님들이나 신부님, 수녀님들도 종교라는 제도권 안에서 비혼주의자가 된 것이지만, 자신만의 세계를 끝까지 밀고 간 사람들이었다.
오늘날의 비혼주의는 조금 다른 결을 가진다. 시대와 사회가 만들어낸 독특한 생존방식으로 진화하며 자아실현의 문제에 중점을 두는 경우가 많아졌다. 특히 연예계에서는 공개적으로 비혼 의사를 밝히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하고 친근한 김혜수, 이서진, 엄정화, 김완선, 김소현, 기안84 등 많은 연예인들이 홀로 사는 삶을 선택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주위에 보면 한 집 걸려 한 명은 결혼을 못했거나 하지 않은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은 단순히 “결혼 안 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성의 틀 밖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시대가 만들어낸 현상이다.
흥미로운 것은 시대가 바뀌며 비혼의 의미도 달라졌다는 점이다. 과거 철학자들의 비혼이 ‘사유를 위한 고독’이었다면, 현대인의 비혼은 자아실현을 위한 것이거나 결혼해서 아이를 키울 능력이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태어날 때 자기 먹을 건 다 갖고 태어난다는 통념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다. 누군가는 결혼이라는 틀 안에 자신을 던져 사랑을 완성하고, 누군가는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자기 존재를 지켜낸다. 중요한 것은 혼인 여부가 아니라, 그 삶이 얼마나 자기 자신에게 진실한가 하는 문제다. 오늘날 비혼주의의 확산은 인간이 처음으로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집단적으로 깨닫기 시작한 시대적 증후군인지도 모른다.
결국 비혼주의자는 시대가 낳은 자화상이다. 사랑도, 결혼도, 비혼도 개인의 선택이 중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이제 국가가 나서서 1인 가족을 보호하지 않으면 비혼은 사회현상으로 큰 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시대는 단순히 “결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이 사라진 자리에 무엇을 새롭게 세울 것인가의 문제다. 혈연 대신 타인과의 연대, 공동체적 돌봄이 새로운 가족의 형태가 될 수 있는가를 묻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비혼주의자에게 자유는 필수 고독은 선택이다
[전명희]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그만두고
‘밖철학연구소’를 설립해 연구에 몰두했지만
철학 없는 철학이 진정한 철학임을 깨달아
자유로운 떠돌이 여행자가 된 무소유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