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이 짙어가는 5월의 어느 날, 아침 일찍 영암 땅 천왕사에서 출발하여 월출산 정상 천왕봉에 오른다. 불교 경전 아함경(阿含經)에는 산 정상을 올라가 보라는 부처님 말씀이 들어있다. 높은 곳에 오르면 더 멀리 볼 수 있고, 산 아래처럼 좁은 소견으로 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하산은 강진 땅 경포대(鏡布臺) 방향이다. 그곳에는 천년의 바람이 지워버린 월남사가 있기 때문이다. 바람재 삼거리에서 경포대로 내려오는 산길은 연두에서 초록으로 익어가는 잎사귀들로 눈이 시리다. 경포대 탐방센터에서 월남저수지로 가는 길가로 오래전에 터 잡은 나무들이 저마다 초록을 가득 머금은 채 득의양양 하지만 풀 속에 나앉은 작고 여린 꽃들은 눈물 젖은 속눈썹처럼 애잔하다. 적막하고 고즈넉한 시골길을 느릿느릿 걷는 것처럼 마음에 충만을 주는 행위도 드물다. 사위를 둘러보니 월출산 준봉에는 한낮의 햇살이 넘치고 예부터 다산이 즐겨 마셨다는 백운동 옥판차로 유명했던 산자락 차밭은 산봉우리 그림자로 그윽하다.

조선 실학의 태두 다산(茶山) 정약용은 강진에서 18년간이나 유배되어 살았다. 당대 최고의 혁신적인 지성을 이처럼 땅끝마을에 가둔 조선은 정신적 장애자였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조선은 새로운 사상을 차단하고 오래되고 낡은 껍질을 탈피하지 못해 근대화의 길에서 멀어져만 갔다. 아름다운 청자를 빚어냈던 강진이 다산의 귀양지가 된 것은 아이러니다. 다산의 적소에는 다성 초의선사가 다향(茶香)을 심고, 명필 추사가 찾아와 예술혼(藝術魂)을 불살랐다. 세 사람의 만남은 그래도 불우한 좌절의 삶 속에 살아야만 했던 그 시대 지성들의 한 줄기 등불 이었다.

월남저수지를 지나니 시원하게 트인 편평하고 너른 월남사지(月南寺址)가 펼쳐진다. 편안하고 장엄한 풍경의 삼매경에 빠져 잠시 말을 잊는다. 월출산의 장엄한 준봉들이 절터를 둘러싸고 있어 이곳이 수행터로 더없이 좋은 곳임을 단번에 짐작하게 한다.
폐사지에 가면 늘 마음이 저절로 스산해진다. 드넓은 절터에 수백 년 묵은 고목이 마른 가지를 떨어뜨리고, 오래된 기왓장과 석물들이 어지러이 놓인 모습에 잠시 폐허의 슬픔이 밀려온다. 그렇지만 단청 화려한 건물에 금색 빛나는 불상을 모셔 놓은 절집에서 느낄 수 없는 처연한 정서가 있고, 고요한 절터에는 사색으로 이끄는 침묵이 있다. 그래서 부처 대신 절터에 버티고 선 삼층석탑은 마치 묵언수행(默言修行)의 표상처럼 보인다. 천수백 년을 버텨온 비결이 부동의 묵상에 있었음을 암시할 따름이다. 탑은 그냥 돌이 아니다. 옛날 사람들은 탑돌이를 하며 소원을 빌었다. 수많은 민초들의 염원이 서린 탑은 부처나 다름없다.

월남사지(月南寺址)는 월출산을 뒤로하고 낮은 구릉에 남쪽을 향해 지어진 절터이다. 최근 발굴 작업을 통해 백제시대 때 창건된 사찰로 추정되고 있는데, 고려시대 때 진각국사(眞覺國師)가 중창하여 전국 최대 규모의 사찰로 번성하였으나 조선시대 정유재란 당시 모두 소실되었다. 지금은 고려시대 백제계 양식의 삼층석탑만이 넓디넓은 월남사지에 외로이 서 있다. 절터 주변에서 수습되는 수많은 백제, 신라, 고려의 와편(瓦片)들만이 역사의 흥망성쇠를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월남사지에서 가장 마음으로 와닫는 것은 비움의 미학이다. 무엇보다 석탑의 배경인 월출산은 평야 지대에 불쑥 솟아올라 어디에서나 산자락에서 산 정상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그래서 산과 탑 사이의 공간도 넓어 보인다. 게다가 뾰족뾰족 솟아오른 월출산의 준봉들은 여백의 미를 더한다. 텅 빈 듯 가득 찬 ‘허(虛)의 세상’에 감동을 금할 수 없다.

천년의 세월이 지워버린 절터에 서서 잠시 묵상에 잠긴다. 월남사지는 신령스럽기 그지없는 월출산과 넓디넓은 초원이 펼치는 풍경의 변주에 아랑곳없이 절하듯 낮고 정결하다. 세상의 악다구니가 침범 못 할 산문(山門)의 고요, 그건 그 자체로 풍경의 절정이자 소리 없는 교향악의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월출산이 없는 월남사지와 월남사지 탑이 없는 월출산의 장엄함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그리고 인근에는 천년사찰 무위사, 백운동 원림, 차밭과 한옥마을들이 있어 오래 머물며 느리게 여행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절터에서 바라본 하늘은 청자처럼 푸르고 탱탱하며, 월출산 연둣빛 숲에서는 투명한 햇빛이 부서져 내린다. 백운동 원림 앞 차밭에는 햇살 멱을 감는 차나무들의 몸내가 상큼하고, 절터에 서 있으면 코끝으로 온갖 산향과 차향이 들이친다.
‘비움의 미학’에서 ‘채움의 미학’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여계봉 대기자]
수필가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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