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명희의 맛있는 개똥철학] 휴머노이드

전명희

인류는 오래전부터 자신을 닮은 존재를 만들고 싶어 했다. 신화 속의 인조인간에서부터 기계 인간, 그리고 오늘날의 휴머노이드까지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형상을 복제해 왔다. 어쩌면 휴머노이드는 기술의 산물이기 전에 인간의 오랜 욕망이 만들어낸 거울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신을 닮고 싶어 했고, 이제는 자신을 닮은 존재를 만들며 신의 자리에 서려고 한다.

 

휴머노이드는 인간처럼 걷고, 인간처럼 말하며, 인간처럼 일할 것이다. 위험한 공장에서, 재난 현장에서, 노인 돌봄 시설에서 인간을 대신해 일할 수 있다. 육체적 노동의 상당 부분이 기계에게 넘어가면서 인간은 더 안전하고 편리한 삶을 누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기술의 진보만 놓고 보면 이는 분명 축복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이 되는가. 인간이 노동에서 해방될수록, 인간은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를 다시 질문해야 한다. 지금까지 인간은 일하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왔다. 그런데 기계가 인간보다 더 잘 일하는 시대가 온다면, 인간의 존엄은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휴머노이드의 가장 큰 위험은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다. 인간다움을 빼앗는 것이다. 사람은 본디 불완전한 존재다. 실수하고, 망설이고, 후회하고, 절망한다. 그런데 휴머노이드는 실수를 줄이고 효율을 높인다. 문제는 우리가 기계를 인간처럼 만들다가, 거꾸로 인간을 기계처럼 평가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생산성, 속도, 정확성만이 기준이 되는 순간 인간의 눈물과 연민, 기다림과 사랑은 비효율이라는 이름으로 밀려난다.

 

앞으로 사회는 두 부류로 나뉠 가능성이 있다. 휴머노이드를 소유한 사람들과 휴머노이드와 경쟁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기술이 부를 집중시키면 빈부격차는 더 커질 수 있다. 또한 인간관계가 불편한 사람들은 사람보다 휴머노이드를 더 선호하게 될 수도 있다. 갈등도 없고, 배신도 없고, 상처도 주지 않는 존재를 인생의 파트너로 여길 것이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란 원래 불편함을 견디며 배우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포기하기 시작하면, 사회는 편리해질지 몰라도 점점 인간은 사라지고 기계인간만 남을지 모른다. 

 

대안은 기술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강화하는 것이다. 학교는 지식보다 공감 능력을 가르치고, 사회는 경쟁보다 협력을 배우게 해야 한다. 기계가 할 수 없는 것, 즉 사랑하고 용서하고 함께 아파하는 능력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한다. 휴머노이드가 많아질수록 인간은 더 인간다워져야 한다. 결국 휴머노이드는 미래의 적이 아니다. 인간은 스스로에게 “너는 기계가 할 수 없는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인간은 기술에 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지는 것이다.

 

휴머노이드가 인간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잃어버린 인간이 인간을 위협한다.

 

 

[전명희]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그만두고

‘밖철학연구소’를 설립해 연구에 몰두했지만

철학 없는 철학이 진정한 철학임을 깨달아

자유로운 떠돌이 여행자가 된 무소유이스트

이메일 jmh1016@yahoo.com

 

작성 2026.06.05 10:40 수정 2026.06.05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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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