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마약류 오남용과 중독 문제가 사회적 위기로 확산되는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한국의 사법·문화적 특성을 반영한 중독 치료·재활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마약 중독 치료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연구개발사업단 지원을 받는 ‘마약류 오남용 및 중독 분야 연구협의체(협의체장 이해국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최근 한국형 인지행동치료(CBT) 기반 중독 치료 프로그램 개발을 완료하고 임상 현장 적용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이번 프로그램은 국내 치료 환경에서 적용이 쉽고 실효성이 높은 표준 치료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개발됐다. 특히 기존 서구 중심의 치료 매뉴얼을 단순 도입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국내 환자와 치료 현장의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치료체계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연구진은 프로그램 개발 과정에서 국내 중독 환자와 치료자들을 대상으로 심층 질적 연구를 수행했으며, 그 결과를 바탕으로 총 4종의 표준 정신사회 치료 프로그램을 설계했다. 개발된 프로그램은 지역사회 상담재활기관과 외래치료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지역사회·외래 단기 면담 프로그램’, 치료 동기 강화를 위한 ‘치료 첫걸음 프로그램’, 갈망 조절 및 대안행동 형성을 지원하는 ‘갈망관리·대안행동 증진 프로그램’, 정서적 안정을 돕는 ‘정서조절 프로그램’ 등으로 구성됐다.
특히 프로그램은 마음챙김과 연민 중심 접근법을 포함한 최신 3세대 인지행동치료 기법을 적용했다. 연구진은 국내 환자들이 사법적 치료 명령이나 치료보호 입원과 같은 제도적 개입을 단순한 통제가 아닌 회복을 위한 보호장치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반영해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프로그램 개발의 근거는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김종태 교수팀의 연구에서 마련됐다. 연구팀은 최근 국제학술지 ‘Frontiers in Psychiatry’에 발표한 체계적 문헌고찰 및 메타분석을 통해 자극제 사용장애 환자에게 인지행동치료 단독 적용만으로도 유의미한 치료 효과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총 849명의 환자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인지행동치료 단독 개입군은 최소치료 비교군보다 단기 단약 성공 가능성이 약 2.88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금전적 보상 치료나 지역사회강화접근법 등 추가 개입 없이도 CBT 자체만으로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로 평가된다.
연구협의체는 이번 연구가 국내 현실에서 시행 가능한 중독 치료 모델의 과학적 근거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예산과 인프라, 제도적 한계로 인해 해외에서 활용되는 다양한 치료기법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프로그램의 현장 안착을 위해 전국 병원 및 지역사회 기관 실무자를 대상으로 매뉴얼 활용 교육을 실시했으며, 오는 7월부터 대구대동병원과 인천참사랑병원에서 1차 예비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실제 임상 환경에서 단약 유지 효과와 심리적 회복 수준 등을 검증할 계획이다.
이해국 협의체장은 “마약 중독 문제는 처벌이나 개인 의지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며 “사법적 개입 이후 치료와 재활이 체계적으로 연계되는 공중보건 중심의 치료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형 CBT 프로그램의 전국 확산과 함께 다양한 치료기법의 효과를 검증하는 임상연구 확대를 위해 정부 차원의 지속적인 연구개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