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행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성공하지 못한 미련에서 오는가. 행복이라는 높은 설정에서 오는가. 과거의 우리는 ‘할 수 없는 것’ 때문에 좌절하고 불행하다고 느꼈다면, 오늘날의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은 가능성 때문에 지치고 좌절한다.
현대인의 불행은 실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가능성에서 오기 때문이다. 더 공부할 수도 있고, 더 벌 수도 있고, 더 아름다워질 수도 있으며, 더 성공할 수도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 앞에서 우리는 오히려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 모든 가능성은 곧 책임이 되고, 모든 선택지는 또 다른 의무가 된다.
현대인은 일을 마친 뒤에도 쉬지 못한다. 휴식조차 생산적이어야 하고, 취미조차 자기계발이 되어야 하며, 여행마저 콘텐츠가 되어야 한다. 어느 순간 삶은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프로젝트가 된다. 그러나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꽃이 피기 위해서는 햇빛만큼이나 그늘도 필요하듯, 삶 역시 성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하루를 견디는 힘,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시간을 받아들이는 용기, 어쩌면 그것이 피로사회가 잃어버린 가장 인간적인 지혜인지도 모른다.
요즘 젊은 세대는 부지런한 사람을 두고 “갓생 산다”라고 말한다. 새벽에 일어나 운동하고, 책을 읽고, 자기 계발을 하고, 하루 계획표를 빼곡히 채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마치 신(神)처럼 빈틈없는 삶이라는 뜻이다. 재미있는 것은 과거에는 성공한 사람을 부러워했다면, 지금은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 자체를 존경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만큼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성실함은 재능보다 귀한 자산이 되었다. 신이 되는 삶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아내는 삶,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가장 현실적인 갓생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천천히 들여다보면 갓생은 현대인이 만들어낸 새로운 인생법일지도 모른다. 종교가 길을 잃고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삶의 의미를 밖에서 찾지 못하게 되었다. 대신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단련하고 관리하는 데서 존재의 가치를 찾기 시작했다. 각종 앱을 통해 기록하고, 독서 목록을 정하고, 자격증을 따고, 외국어 공부를 하며, 재테크까지 현대인은 마치 자기 자신이라는 회사를 운영하는 CEO가 되었다. 사회적 연대나 실패의 구조적 결함 없이도 자신이 만든 시스템 안에서 과정과 결과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는 삶을 살고자 한다.
이 갓생은 공정함의 언어 뒤에 숨어 우리를 유혹하기도 하고 착취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더 이상 기성세대의 폭압적인 권력은 먹히지 않는다. 혈연, 학연, 지연 등 연줄에 대한 믿음을 가뿐하게 넘기며 우주보다 드넓은 인터넷의 세계를 유목하며 각종 소셜미디어에 자신이 일상을 자발적으로 공유한다. 그것은 내 삶의 주인은 곧 나 자신이어야만 한다는 주체성을 확인하는 방법이며 자존감 높은 삶을 살고 있다는 증표일지 모른다. 갓생이라는 언어를 만들어낸 세대는 법이나 도덕의 통제를 벗어나 스스로를 통제하며 자기 성장의 드라마를 만들어가고 있다.
“갓생은 신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신성하게 사는 것이다.”
[전명희]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그만두고
‘밖철학연구소’를 설립해 연구에 몰두했지만
철학 없는 철학이 진정한 철학임을 깨달아
자유로운 떠돌이 여행자가 된 무소유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