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집을 나서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 동안 내 시선은 늘 바닥이나 스마트폰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스마트폰 속에는 세상의 온갖 급박한 뉴스들과 타인의 화려한 일상, 그리고 오늘 당장 처리해야 할 업무 메일들이 쉴 새 없이 쏟아진다. 고개를 숙인 채 발걸음만 재촉하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곤 했다. 출근길은 그저 건너야 할 지루한 과정이었고, 그 사이의 풍경은 늘 회색빛 멈춘 화면 같았다.
그러다 며칠 전, 붉은 신호등에 걸려 유난히 길게 느껴지는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섰을 때였다. 습관적으로 주머니 속 스마트폰을 뒤적이려다, 문득 뺨을 스치는 바람의 감촉이 이전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차갑고 건조하던 바람 속에 알 수 없는 촉촉함과 미지근한 온기가 섞여 있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매일 지나치던 낡은 담벼락 위로 이름 모를 초록 잎들이 무성하게 뻗어 나와 있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앙상한 가지뿐이었던 것 같은데, 언제 이렇게 제 몫의 푸르름을 키워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출퇴근길의 걸음 속도를 조금 늦추어 보기로 했다. 화면 속 텍스트를 읽는 대신 주변의 소리와 풍경에 감각을 열어두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매일 걷던 그 똑같은 길이 매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파트 단지 입구의 가로수는 어느덧 짙은 녹음으로 우거져 그늘을 만들고 있었고, 빗물받이 틈새에 피어난 작은 들꽃은 비가 내린 뒤 한층 더 선명한 노란빛을 띠고 있었다. 계절은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는데, 나 홀로 삶의 속도에 치여 그 당연한 흐름을 보지 못하고 살았던 것이다.
어릴 적에는 계절의 변화가 참 크게 다가왔다. 첫눈이 내리면 세상이 뒤바뀐 듯 설레었고, 봄꽃이 피면 마음이 들떴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가면서 계절은 그저 '옷장 정리를 해야 하는 시기'나 '냉난방비를 걱정해야 하는 계절' 같은 기능적인 주기로 변해버렸다. 숫자로 표시되는 온도계와 달력의 날짜에만 의존하느라, 자연이 보내오는 수많은 미세한 신호들을 놓치고 있었던 셈이다.
작은 계절의 변화를 알아채는 일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다. 그저 이어폰을 잠시 빼고 나뭇잎이 바람에 사각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 출근길 담벼락에 피어난 넝쿨의 높이를 어제와 비교해 보는 것, 퇴근길 붉게 물드는 노을의 색감이 어제보다 조금 더 짙어졌음을 음미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이러한 사소한 발견들은 지친 하루에 아주 작은 여백을 선물한다. 내 삶의 속도가 아무리 가파르고 숨 가쁘더라도, 세상은 여전히 일정한 속도로 아름답게 흘러가고 있다는 안도감을 주기 때문이다.
오늘도 우리는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바쁜 걸음을 옮길 것이다. 하지만 오늘 퇴근길에는, 혹은 내일 아침 출근길에는 주머니 속 스마트폰을 잠시 그대로 두면 어떨까. 그리고 매일 지나치던 그 길을 조금만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아 주었으면 좋겠다. 담벼락 모퉁이에서, 가로수 가지 끝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번져가고 있는 여름의 흔적들이 지친 마음에 작은 쉼표 하나를 찍어줄지도 모르니 말이다.
[심선보]
칼럼니스트
머니파이 대표
금융투자 강사
월간 시사문단 신인상 시부문 작가 등단
저서:‘마음이 머물다 간 자리’, ‘초보를 위한 NPL 투자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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