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식 칼럼] 시 창작 방법의 열쇠

김관식

유태인의 교육법인 탈무드에 “물고기를 잡아주면 한 끼를 배부르게 한다. 그러나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면 평생 배부르게 먹고 살 수 있다.”라고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교육을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은 명문학교 진학을 위한 주입식 교육이다. 띠라서 문학교육도 입시를 위한 교육으로 진정한 문학작품 감상 교육이 되지 못하고 있다. 하물며 시 창작 교육의 경우도 창작 방법은 가르쳐주지도 않고 명시의 창작 배경을 소개, 문법적으로 분석 및 감상하는 데 그친다. 

 

따라서 시를 공부하려는 사람도 교과서에 학습한 문학작품이 최고의 작품으로 알고 있을 뿐, 다양한 외국 시를 비롯하여 우리나라의 시를 감상하는 능력과 시에 대한 안목이 없다. 그나마 시를 창작하겠다고 창작 방법을 찾는 사람들은 유명 시인들이 지도하는 각종 문화 강연회나 문화 센터에서 시 창작 교육을 받게 되면 콩나물이 되어버린다.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시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시 창작 방법을 가르쳐준다고 시 창작이론이라 명시 감상, 자신의 창작 노트를 소개하고 그것이 시 창작 방법이라고 가르쳐준다. 그래서 시는 아무나 쓸 수 없고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들만 시인이 될 수 있는 어려운 것이라고 포기하고 만다. 그러면서도 시인이 되고 싶어 습작기 시도 시인이라고 인정해 주는 문예지 신인상에 응모하여 시인이 된다. 시인이 되어서도 시가 무엇인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동호인들끼리 시 공부를 한다고 모여 자작시를 발표하고 합평회를 갖는다. 그런데 이런 방법의 시 공부는 장님들이 코끼리를 만지고 서로의 의견에 지나지 않을뿐 시 창작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기의 시를 지나치게 혹평을 하는 상대에게 반감이 생기게 되고 급기야 감정싸움이 벌어지는 인간관계를 악화시킨다. 이것은 마치 장님들이 코끼리를 만지고 서로 우기는 꼴이다. 시 창작 방법을 익히는 데는 같은 수준의 사람들끼리 공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시 창작 방법을 터득한 월등한 분의 창작 경험을 듣거나 첨삭지도를 받는 것이 창작 방법을 터득하는데 도움이 된다. 

 

따라서 시 창작 방법을 가르치는 사람의 능력은 콩을 싹 틔워 콩나물로 기르느냐, 콩이 스스로 자생력을 가지고 자라도록 가르치느냐 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전자의 방법으로 콩나물시루에 콩을 넣고 햇빛을 가리고 물만 부어주며 콩나물로 기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콩을 땅에 심어 스스로 햇볕을 받고 자라도록 가르치는 이른바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스승이 드물다는 것이다.

 

콩나물 기르는 방법과 같은 시 창작 방법으로 시 창작 공부를 한 시인은 콩나물 기르는 방법으로 시 창작 방법을 가르쳐줄 수밖에 없다, 시 창작 방법을 남에게 의존할 수도 없고 의존해서도 안 된다. 자기 스스로 창작 방법을 터득해야 개성적인 시를 창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 창작 방법을 가르치는 훌륭한 스승은 자기 제자를 콩나물과 같은 시인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콩이 스스로 자라도록 자생력을 키워준다. 다시 말해 물고기를 잡아다 주는 식의 시 창작 교육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시 창작 교육 방법으로 제자를 가르친다. 그런데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준다고 좋은 낚시도구를 자랑하고 자신이 잡은 장소와 월척의 물고기 잡았던 경험을 늘어놓는 것과 같은 시 창작 교육은 콩나물 기르는 교육 방법과 다를 바 없다. 이런 스승 밑에서는 자생력을 키울 수 없다. 시 창작 교육은 개성을 표현하는 교육이다. 물고기를 잡는 미끼, 미끼 끼우는 요령, 장소, 시기 등 잘 잡는 방법을 자세하게 안내해 주고 스스로 물고기를 잘 잡도록 가르쳐야 청출어람의 제자가 나오는 법이다. 

 

오늘날 콩나물을 기르듯이 시 창작 방법을 지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결과 인해 시인이 되어서도 자신만의 시 세계를 갖추지 못하고 시인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시 세계가 없고 시론도 없는 사람이 시집을 수십 권을 발간한다는 것은 무의미할 뿐이다. 그런 시인들의 시는 고정 틀에 얽매여 있고, 전혀 공감이 가지 않는 아리송한 시들이 대부분이다. 기껏해야 자기가 창작하기 좋은 통사구조나 틀을 만들어 말만 바꾸어놓고 독창적인 시 세계라고 그럴듯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그러한 위험성이 있는 장르가 시조 장르와 요즈음 유행하는 다카시다. 시조의 경우는 정해진 정형률에 무조건 상투적인 시어든 관념어든 말만 바꾸어놓고 우리 고유의 전통시조라고 내밀고 있고, 사진을 곁들여 사진 설명한 짧은 글은 다카시라 창작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전 근대시가 현대시로 전환하는 가장 큰 특징은 근대 이전의 시들이 노래로 불린 노래 가사인 반면, 현대시는 그림과 결합하여 경험에 그림을 그리듯이 또는 정서 경험을 유사 이미지나 상징어로 감각적으로 구체화하여 표현한다는 점이다. 

 

노래 가사 성격의 근대시 이전의 시들은 모두 사라지고 오직 우리나라에서는 시조 장르만 존속되고 있는데, 현대 정신을 담아내지 못하고 자연의 외형이나 정서를 퍼즐 맞추기 놀이에만 머문다면 갓 쓰고 양복 입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되고 만다. 현대시조는 현대 정신을 담아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관념어를 되도록 배제하고 이미지나 상징어로 현대 정신을 압축해서 담아내야 현대시조가 된다.  

 

디카시는 오늘날 현대시의 창작 방법을 터득하지 못한 콩나물 같은 시인들이 살아남기 위한 고육책으로 유행처럼 번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시는 설명하지 않는다. 언어로 모든 것을 압축해 표현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디카시는 현대시의 특징인 이미지로 객관화하여 표현하는 이른바 객관적 상관물로 정서를 표현하는데, 객관적 상관물을 사진으로 대체함으로써 창작 능력이 있는 것처럼 속이고 전자 매체를 이용하여 자신의 시적 능력을 홍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유행처럼 번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콩나물이 햇빛을 받아야 엽록소가 생기는 등 자생력이 생기는데 아직까지 자생력을 기르지 못한 시인들이 머릿속의 관념적인 그림을 이미지로 착각하여 주관적인 정서를 객관화하여 표현하지 못한 시인들이 사진에 의존하여 객관화한 시를 창작했다는 자화자찬의 도피 방법으로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동양적인 시 창작의 철학적 배경은 일원론적인 불교적 사상을 기반으로 한다. 자신이 주체가 되어 사물을 표현함으로써 주관적인 정서가 강하게 나타난다. 반면 서양의 시 창작의 철학적인 배경은 이원론적인 기독교적인 사상을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나와 세계를 이분법으로 주관적인 정서를 객관적인 정서로 표현했을 때 정서를 환기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시를 사물시와 관념시로 나눌 수 있는데. 대부분 서정시는 사물시로 표현된다. 서정시를 관념시로 표현하면 의미가 확장된 관념어나 추상어로 독자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 사물을 통해 시인 자신의 정서를 객관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사물을 객관적인 상관물로 하여 정서를 표현한다. 그런데 사물과 관련된 경험을 재료로 시적 형상화를 거쳐 그 정서 상황에 적합한 경험을 비유와 상징을 통해 묘사와 진술로 적절한 언어를 선택 배열하여 표현하면 정서의 환기가 이루어져 독자와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다. 

 

시적 정서는 크게 슬픔. 기쁨, 고독, 허무, 불안, 공포 등이다. 이 정서 상황 중 한 가지를 집중적으로 형상화하고 이미지로 구체화시켜 표현하면 시가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시인들은 한 사물을 통해 여러 가지 정서가 뒤죽박죽 하거나 정서와는 무관하게 자신이 머릿속으로 생각한 것이 이미지인 것으로 착각하고 그것을 언어로 기술하는 것이 시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따라서 정서의 혼란, 관념어의 남발 등으로 주관적인 정서를 객관화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주관을 객관화시키려면 한 가지 정서에 집중하고 그 정서 상황과 관련된 정서 경험을 형상화하여 유사 이미지로 구체화시켜 감각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인은 철저하게 연극이나 영화의 감독이 되어야 한다. 시적 화자인 배우를 통해서 자신의 정서를 표현해야 주관적 정서를 객관적인 정서로 표현이 되는 것이다. 자신이 느낀 경험 상황을 동일하게 독자도 느낄 수 있도록 환기시켜 줄 때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주위의 여러 사물을 하나씩 정서별로 연극 상황을 만들어 표현하는 이미지 데생 훈련을 꾸준히 해야 객관적인 정서로 공감이 가는 시를 쓸 수 있게 된다.

 

시 창작의 방법의 열쇠는 날마다 바로 연극적인 상황을 만들어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식물이나 무생물을 한 가지 선택해야 여러 가지 정서별로 이미지 데생 연습을 통해 연극 감독같이 정서를 형상화하여 표현하는 방법을 익히는 일에 있다. 이것이 바로 물고기 잡는 방법을 익히는 훈련인 것이다.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이메일 : ​kks41900@naver.com

 

작성 2026.06.22 11:14 수정 2026.06.22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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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