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웃을 일 없다. 웃겨주는 개그맨도 없고 웃음 주는 좋은 일도 없는 세상이다. 웃을 일 없을 때 갑자기 병맛 같은 영화가 똬악하고 나타났다. 병맛이라는 단어가 좀 거슬리긴 하지만, 위키백과에도 당당하게 기재된 단어이니 못 쓸 것도 없다. ‘병맛’은 원래 병신 같은 맛을 줄여 쓴 말인데 맥락도 없고 형편도 없고 어이도 없는 상황일 때 재밌게 쓰는 단어다. 단순하게 부정적인 의미로만 쓰는 게 아니라 비논리적이고 엉뚱한 상황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저절로 웃음이 날 때도 병맛이라고 말한다.
이 ‘병맛’같은 영화 ‘코끝에 매달린 사나이’를 보면서 그냥 생각 없이 웃었다. 생각을 멈추고 웃다 보니 행복 바이러스가 내 몸에 침투해 머릿속을 청소해 주는 것 같았다. 억지 설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보다 보면 무방비하게 웃게 된다. 욕망에 찌들어 사는 우리에게 한 번 신나게 웃어보라고 만든 영화 같다. 진심 방심하다가 빵 떠지는 곳이 영화에 곳곳에 숨어있다. 이 엉성한 연출은 뭐지 하면서도 계속 보게 된다. 감독은 아마 우리의 허를 찌르면서 ‘인생 뭐 있냐, 그냥 웃어봐’라며 만든 영화 같다.
넬슨 히버트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미국의 대기업에서 차기 사장이 발표되는 날 그는 승진을 기대하고 있었다. 회사 대표의 딸과 약혼한 사이고 늘 대표 곁에서 아첨하는 일도 다반사였기에 당연히 사장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회사는 다른 직원을 선택한다. 분노한 넬슨은 대표를 찾아가 언쟁을 벌이는 가운데 대표가 갑자기 누군가의 칼에 맞아 사망한다. 당황한 넬슨은 그대로 회사를 뛰쳐나와 도망해 버린다. 그는 자신이 유력한 용의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경찰이 곧 자신을 체포하러 올 것이라고 믿은 그는 아무런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도망치기 시작한다.
문제는 경찰이 애초에 그를 범인으로 의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넬슨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넬슨은 경찰의 추격이 시작되었다고 믿으며 국경을 넘고, 기차에 오르고, 낯선 도시를 떠돌며 필사적으로 달아난다. 그 과정에서 진짜 범죄자들과 엮이고, 납치 사건에 휘말리고, 온갖 황당한 오해가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그러다가 어느 길에서 히치하이킹하고 린을 만나게 된다. 린은 넬슨을 태워준 이유가 순하고 무해하고 약해 보여서 태워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기면증이 있던 린이 갑자기 운전 중에 잠들어 버리고 만다. 이마를 다친 넬슨은 린의 집에 가서 치료받고 다시 떠나려고 하는 데 린이 붙잡는다.
“넬슨 혹시 도와줄 수 있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여기서 일하면서 숙식 해결하면 어때?”
“넌 나를 여기에 두면 안돼 난 문제만 일으켜”
“넬슨 그럼 어디로 갈 건데?”
“아, 몰라 그냥 길 따라가겠지, 쓰레기통에서 먹을 것 좀 찾으면서”
“정말 괜찮아?”
“좋아, 있을게 근데 잠깐만이야.”
관객은 처음부터 넬슨이 무죄라는 사실을 안다. 더 정확히는, 아무도 그를 쫓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영화는 범인을 찾는 미스터리가 아니라, 착각이 어떻게 한 인간의 인생을 폭주시키는지를 보여 주는 거대한 풍자극이 된다. 인간은 사실보다 자신이 만들어 낸 상상에 더 자주 붙잡히게 된다. 살면서 가장 무서운 감옥은 철창으로 만든 감옥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만든 상상의 감옥이다. 주인공 넬슨처럼 세상은 그에게 별 관심이 없는데 그런데도 자신이 만든 상상 때문에,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지는 않은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상상은 결국 걱정을 만든다. 그래서 보험회사 같은 ‘걱정산업’이 흥행하는 것인지 모른다. 벌어지지 않은 일에 대한 상상은 현실보다 더 괴롭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비웃을 것인지 걱정하고 곧 큰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걱정한다. 주인공 넬슨처럼 상상과 추측이 우리의 뇌를 더 강하게 자극해 현실로 믿게 된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넬슨이 처한 비극적인 상황을 눈물 대신 웃음으로 풀어내는 연출의 맛에 있다. 넬슨이 저지르는 일들은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지만 이상하고 묘하게 공감된다. 넬슨의 어리석음을 비웃다가도 어느 순간 내 안에 있는 넬슨을 발견하게 된다.
나도 누군가의 시선에 쫓기고 있지는 않은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없는지, 오늘을 쓸모없이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지 상상이 만들어 낸 감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괴로워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데이비드 스테인버그 감독은 한 남자의 황당한 착각이라는 이 단순한 설정 하나만으로 인간 심리의 본질을 찌른다. 넬슨의 도주는 우스꽝스럽다. 그러나 그 우스꽝스러움은 현대인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우리는 종종 현실의 벽보다 상상의 벽에 더 자주 부딪히며 살아간다. 이 영화는 우리 모두 삶의 우화다.
“확인하기 전까지는 두려움을 믿지 말라”
[최민]
까칠하지만 따뜻한 휴머니스트로
영화를 통해 청춘을 위로받으면서
칼럼니스트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공부하고
플로리스트로 꽃의 경제를 실현하다가
밥벌이로 말단 공무원이 되었다.
이메일 : minchoe29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