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물병원에서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보호자의 표정이 무너지는 걸 마주할 때 나는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괜찮아질 거예요"라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다가도 도로 가라앉았다. 그 말이 그 순간 그에게 얼마나 공허하게 들릴지 알았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 앞에 매일 서는 직업을 가지고도, 나는 정작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자주 막막했다.
마음이 무너진 사람 앞에서 우리는 보통 이렇게 말한다. "힘내." "긍정적으로 생각해." "조금만 더 버텨봐."
예전엔 나도 그랬다. 곁에 있는 사람이 힘들어하면 어떻게든 일으켜 세우고 싶어서 격려의 말을 건넸다. 거기엔 분명 선한 의도가 담겨 있었고 뭔가 해줘야만 한다는 의무감, 강박이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됐다. 그 말들이 위로가 되기는커녕 듣는 사람을 더 힘들게 만들 때가 있다는 걸.
우리는 종종 마음이 힘든 사람에게 적극적인 독려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더 힘을 내라고, 더 노력하라고 등을 떠밀면 그가 일어설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음이 가라앉은 사람에게 "노력해봐"라는 말은 가장 하기 어려운 일을 요구하는 말이다. 그들은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다. 하고 싶은데 못 하는 것이다. 일본 드라마 〈Dr. 린타로〉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이미 지나치게 힘을 내고 있는 사람에게 '힘내'라는 말은 낭떠러지 끝에 선 사람을 떠미는 것과 다름없다." 힘내라는 말이 더 아픈 건 그래서다.
우울감과 우울증은 다르다. 우울감은 살면서 누구나 언제든 느낄 수 있다. 시험에 떨어졌을 때, 사랑하는 존재를 떠나보냈을 때, 아무 이유 없이 마음에 가뭄이 드는 날. 그건 큰일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반대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만큼 깊고 오래간다면 그건 가벼이 여길 일이 아니라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일이다. 중요한 건 어느 쪽이든 그 사람의 마음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태도다.
그런데 우리가 위로랍시고 건네는 말 중에는 오히려 상처를 덧내는 말이 많다. 대표적인 게 고통을 비교하는 말이다. "너보다 더 힘든 나도 버티며 살잖아" “너만 힘든 거 아니야, 세상 사람들 다 똑같이 힘들어. 그러니 힘내.” 이 말은 위로가 아니다. 저마다 자기 짐의 무게가 가장 무겁다. 남의 고통과 내 고통의 크기를 저울에 다는 일만큼 의미 없는 일도 없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정혜신은 『당신이 옳다』에서 이런 말을 한다. "충조평판의 다른 말은 '바른말'이다. 바른말은 의외로 폭력적이다. 나는 욕설에 찔려 넘어진 사람보다 바른말에 찔려 쓰러진 사람을 과장해서 한 만 배쯤은 더 많이 봤다. 사실이다."
충조평판이란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말한다. 가만 보면 우리가 힘든 사람에게 건네는 말 대부분이 여기에 속한다. "이렇게 해봐", "그건 네가 약해서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돼." 다 맞는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옳은 말이 늘 필요한 말은 아니다. 무너진 사람에게 바른말은 또 하나의 무게가 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할까.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곁에 있어주는 것. 판단하지 않고 들어주는 것. 마음이 무너진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건 해결책이 아니라 "그랬구나, 많이 힘들었겠다"는 한마디다. 감정이 무너진 자리에 생각을 세우려 해봤자 자꾸 무너질 뿐이다. 먼저 감정을 알아주는 일, 그게 공감이다. 공감은 무너진 마음의 기초를 다시 다지는 일이다.
겉으로 웃고 있는 사람도 속으로는 조용히 울고 있을 수 있다. 힘겹게 울음을 삼키는 중일 수 있다. 우리는 서로의 속을 다 알 수 없다. 알 수 없기에 더 조심스러워야 하고, 더 따뜻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마음이 어두울 때 그 어둠을 단번에 걷어내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어설픈 격려로 그를 밀어붙이는 대신, 그저 곁에 앉아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건 강요의 언어가 아니라 조용한 관심과 진심 어린 공감이다.
그리고 침묵도 하나의 언어다. 꼭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침묵이 익숙하지 않아 그 순간이 견디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도 말없이 곁을 지키는 것만으로 충분할 때가 있다.
지금 당신 곁에 힘들어 보이는 누군가가 있는가. 그에게 무슨 말을 해줄지 고민하기 전에 먼저 이렇게 물어보면 어떨까. "요즘 어때? 많이 힘들지." 그리고 가만히 들어주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건넬 수 있는 가장 큰 위로일지 모른다.
[박근필]
그로쓰 퍼실리테이터
읽고 쓰고 말하는 삶으로 당신의 성장을 돕습니다
박근필성장연구소장, 수의사,
칼럼니스트, 커리어 스토리텔러
저서; <마흔 더 늦기 전에 생각의 틀을 리셋하라>
독저팅, 필북, 필레터, 필라이프 코칭 운영
부산 시청 특강 외 다수 출강
이메일 : tothemoon_par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