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은 본래 불확실성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오랜 세월 검증된 자신의 가치관 속에서 안정을 찾으려 한다. 문제는 그 가치관이 시대와 환경이 바뀌어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는 순간 발생한다. 꼰대란 단순히 권위적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보편적 진리로 오해하는 사람이다. 꼰대는 원래 늙은이를 낮잡아 부르는 은어였지만, 오늘날에는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경험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래서 스무 살 꼰대도 있고, 여든 살 청년도 있다. 문제는 나이가 아니라 사고방식이다.
사실 모든 세대는 잠재적 꼰대다. 인간은 자신이 힘들게 얻은 경험을 진리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렵게 산 사람은 어려움이 사람을 성장시킨다고 믿고, 참고 견딘 사람은 인내가 최고의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정답은 아니다. 꼰대는 자신의 경험을 지혜로 만드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것을 자신만의 법전으로 만들어 남에게 들이민다. 꼰대는 시간의 착각 속에 사는 사람이다. 그는 세상이 변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사람은 여전히 자기 시대의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시대는 강물과 같아서 같은 물결이 두 번 흐르지 않는다. 어제의 성공 공식이 오늘의 실패 원인이 되기도 하고, 한 세대의 상식이 다음 세대의 편견이 되기도 한다. 꼰대의 비극은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이 아니라, 세상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있다. 독일 철학자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은 역사를 '정신의 발전 과정'이라고 보았다. 새로운 시대는 늘 이전 시대를 부정하면서 탄생한다.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의 가치관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일종의 역사적 필연이다.
그런데 꼰대는 이 자연스러운 변화를 배신으로 받아들인다. 자신이 살아온 세계가 흔들리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누구나 꼰대를 싫어하면서도 결국 꼰대가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지식을 배우기보다 익숙한 신념을 지키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꼰대의 반대말은 젊음이 아니다. 겸손이다. 자신의 경험이 소중하되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 배울 것이 아직 남아 있다고 믿는 사람은 나이를 먹어도 꼰대가 되지 않는다.
어쩌면 꼰대란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는 사람이 아니다. 더 이상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귀는 닫고 입만 열려 있을 때, 지혜는 충고로 변하고 충고는 잔소리로 변한다. 강물은 흐르기에 맑고, 웅덩이는 고여 있기에 썩는다. 인간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결국 꼰대의 진짜 문제는 늙음이 아니다. 변화보다 확신을 사랑하는 태도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의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변화를 요구하는 사람은 많지만, 자신부터 변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 드문 사람이 어른이다.”
[전명희]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그만두고
‘밖철학연구소’를 설립해 연구에 몰두했지만
철학 없는 철학이 진정한 철학임을 깨달아
자유로운 떠돌이 여행자가 된 무소유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