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서 칼럼] 해양수도는 무엇으로 완성되는가

문화는 철학을 먹고 자란다

문화예술행정에서 ‘합리’와 ‘실용’만큼 반박하기 어려운 말도 드물다. 누가 비합리를 옹호하겠으며, 누가 비실용을 주장하겠는가. 이 두 단어는 종종 내용과 무관하게 스스로 정당성을 획득한다. 부산의 새 시정 인수위원회가 퐁피두 분관과 라 스칼라 초청 공연에 대해 ‘재검토’와 ‘갈등이 덜한 방향’을 언급했을 때도, 이는 일견 합리와 실용의 언어처럼 들린다. 그러나 합리와 실용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삼는지, 누구를 위해 작동하는지 묻지 않는 순간, 이 말들은 판단의 원칙이 아니라 판단을 유예하는 술책이 된다.

 

재검토 자체를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오히려 퐁피두 분관의 부산 유치는 애초에 충분한 검토를 거쳤다고 보기 어려운 사업이었다. 투자심사와 타당성 검토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졌고,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의문도 계속 제기돼 왔다. 그런 점에서 처음부터 생략되었던 공적 판단을 이제라도 시작하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인수위의 언어에는 검토의 기준이 보이지 않는다.

 

기준은 그리 어렵지 않다. 절차적 정당성이 문제였다면 갈등의 크기가 아니라 적법성을 따지면 될 일이다. 시민의 세금이 대규모로 투입되는 사업이라면 정치적 부담이 아니라 시민이 떠안게 될 비용부터 계산하는 것이 합리이자 실용이다. 문화정책의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하기조차 민망하지만, 외부 브랜드의 명성보다 그것이 지역의 문화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먼저 묻는 것이 상식에 부합한다.

 

또한 검토에는 끝이 있어야 한다. 언제까지, 누구의 책임으로, 어떤 근거에 따라 결론을 내릴 것인지에 대해 시민들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에도 미적대는 시간 속에서 엉뚱한 사업이 기정사실화되고, 시민이 되돌릴 수 있는 선택지가 줄어드는 과정을 우리는 이미 충분히 경험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이 모든 논의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문화행정은 개별 사업을 하나씩 저울질하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우리는 어떤 도시를 원하는가, 어떤 도시를 만들고자 하는가”라는 질문이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재검토든 유예든 이러한 철학 없이 문화예술사업을 온전히 판단하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부산, 그리고 부산시민은 문화를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관광객을 불러오는 산업인가, 도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수단인가. 아니면 세상을 이해하고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는 공공의 언어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부산의 문화정책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 것이다.

 

문화를 산업으로만 이해한다면 세계적 브랜드를 유치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정책일 수 있다. 그러나 문화를 시민의 삶을 깊게 만드는 공공재로 본다면 우선순위는 달라진다. 지역 예술가가 지속적으로 창작할 수 있는 토대, 시민이 일상 속에서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환경, 그리고 학교와 도서관, 공연장과 생활문화가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되는 일은 훨씬 더 절실한 과제가 된다.

 

세계적인 이름을 들여올 수는 있지만, 시민의 감수성과 도시의 품격까지 돈으로 살 수는 없다. 퐁피두와 라 스칼라를 둘러싼 논쟁이 단순히 미술관 하나, 공연 하나의 성사 여부에 그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부산이 외부의 이름으로 자신을 설명할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의 문화적 힘으로 자신을 증명할 것인지를 묻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해양수도 역시 마찬가지다. 항만과 기관을 이전한다고 해양수도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도시의 격은 인프라의 규모가 아니라 스스로를 설명하는 서사의 깊이에서 나온다. 바다를 어떻게 이해하고, 그 바다 위에서 어떤 문화와 예술을 키우며, 어떤 삶을 시민에게 제안하는가. 그 철학이 없다면 해양수도는 그저 거대한 시설의 집합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인수위의 출발은 우려스럽다. 문화정책의 방향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문화예술은 애초부터 중심 의제로 다뤄지지 않았고, 뒤늦은 자문위원 보완 역시 문화를 정책의 말단에 두는 인식을 드러낼 뿐이었다.

 

합리와 실용은 버려야 할 가치가 아니다. 행정은 언제나 합리적이고 실용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합리는 철학 위에서 방향을 얻고, 실용은 가치 위에서 의미를 갖는다. 새 시정이 이제라도 시민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은 어떤 문화도시를 지향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비전이다. 지금 인수위가 가장 먼저 재검토해야 할 것은 퐁피두나 라 스칼라를 넘어, 부산은 어떤 도시가 되고자 하는지 그 질문에 대한 스스로의 답이다.

 

 

[이진서]

고석규비평문학관 관장

제6회 코스미안상 수상

lsblyb@naver.com

 

작성 2026.06.29 10:54 수정 2026.06.29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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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