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용대 칼럼] 늦게 풀린 수수께끼

문용대

동네 근처에 치매를 앓는 지인 라 씨가 살고 있다. 그 부부와는 수십 년 전 경남 창원에서 인연을 맺었고, 지금도 같은 모임에 속해 있다. 아내들끼리는 격의 없는 친구 사이지만, 라 씨는 나보다 대여섯 살 위인 여든 초반으로 늘 형님처럼 느껴지는 분이다. 

 

젊은 시절 그는 사회단체의 지방 도 단위 책임을 맡았고, 목회 현장에서 활발한 선교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십여 년 전 내가 다리를 다쳐 입원했을 때, 병원도 알리지 않았는데 가장 먼저 찾아와 준 사람이 바로 그였다. 그때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몇 해 뒤, 단톡방에 올린 글 문제로 우리 사이에 불편한 일이 있었다. 다툼이라기보다 일방적으로 거칠게 대응한 사건이었다.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시간이 흐른 뒤 모임 산행 자리에서 그의 아내를 통해 마음을 조금 풀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모습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단정하던 차림이 흐트러졌고, 나를 대하는 태도에도 이전과 다른 기색이 스쳤다. 무엇보다 그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 후로 그는 모임에 나오지 않았다. 

 

시간이 흐른 지금에야 비로소 알게 된다. 나와 부딪혔던 그 시기가 치매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그 사실을 모른 채 오래도록 품었던 감정들이 이제는 미안함으로 남는다. 

 

아내를 통해 그의 소식을 가끔 듣는다. 밥 한 끼 대접하고 싶다는 말을 건넸지만, 이제는 밖에 나올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찾아가겠다는 말에도 조심스러운 사양이 따랐다. 

 

전해지는 이야기는 점점 무거워진다. 씻지 않고, 옷을 갈아입지 않으며, 배고픔조차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오랜만에 다녀간 아들을 두고, 돌아선 뒤 “방금 그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고 했다. 그 말 한마디가 오래 마음에 남는다. 

 

최근 김희연 작가의 책 <서른넷 딸, 여든 둘 아빠와 엉망진창 이별을 시작하다>를 접했다. ‘엉망진창’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깊게 박혔다. 간병의 시간 속에서 때로는 미워하고, 곧바로 스스로를 책망해야 했던 마음. 그 고백이 낯설지 않았다. 

 

아버지가 떠난 뒤에도 그는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우울과 불안, 몸의 이상 신호들이 뒤따랐다. 긴 시간 붙들고 있던 것이 놓이는 순간, 다른 무게로 되돌아오는 듯했다. 그것이 남겨진 이들이 감당해야 하는 또 하나의 시간일 것이다. 

 

요즘 따라 라 씨의 얼굴이 자주 떠오른다. 그의 안부보다, 곁을 지키는 아내의 시간이 더 마음에 걸린다. 길고 어두운 간병의 시간 속에서 그 삶이 끝내 무너지지 않기를, 그 이름이 더는 엉망진창으로 남지 않기를, 조용히 바라게 된다.

 

 

[문용대]

한국수필 수필문학상 수상

문학고을 소설문학상 수상

지필문학 창립10주년기념 수필부문 대상 수상

코스미안뉴스, 브레이크뉴스 고정 필진

한국예인문학, 지필문학, 대한문학, 각종 문학카페 활동

대한문학 부회장, 지필문학 이사

수필집 ‘날개 작은 새도 높이 날 수 있다’, ‘영원을 향한 선택’

이메일 : myd1800@hanmail.net

 

작성 2026.07.02 10:31 수정 2026.07.02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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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