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선보 칼럼] 어른이라는 이름의 미완성들

심선보

서른이 넘고, 마흔이 넘으면 삶의 모든 문제가 명쾌한 해답을 찾을 줄 알았다. 적어도 내가 아는 어른들은 그랬다. 그들은 복잡한 서류를 척척 처리하고, 갈등 상황에서 현명하게 중재하며, 무엇보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어릴 적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정답을 쥐고 있는 어른들의 세계가 동경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막상 그 나이가 되어보니 알겠다. 어른의 세계에도 정답은 없었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질문은 더 많아지고, 그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더욱 모호해질 뿐이다.

 

우리는 여전히 사람을 대하는 일이 두렵고,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낼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직장 동료와의 관계는 여전히 어렵고, 나만의 확신을 가지고 내린 결정조차 돌아서면 다시 불안해진다. 

 

문득 거울을 보다가, 마흔을 훌쩍 넘긴 내 모습 뒤로 열일곱 살의 내가 여전히 웅크리고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몸집만 커졌을 뿐, 마음속 고민의 깊이나 두려움의 크기는 사실 어린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사람들은 이를 '성숙하지 못한 것'이라 자책하곤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아는 상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과정'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어릴 때는 내 무지가 부끄러워 아는 척을 했고, 실수를 숨기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조금씩 나이가 들며 깨닫게 된 것은, 모두가 각자의 가면 뒤에서 남몰래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능해 보이는 상사도 퇴근길에는 내일의 업무를 걱정하고, 완벽해 보이는 부모조차 자식 앞에서는 자신이 옳은 선택을 하는 것인지 끊임없이 반문한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위치에서 처음 겪는 삶의 파도 앞에서 매번 서툰 항해를 하고 있는 셈이다.

 

모르는 것투성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삶은 의외로 조금 더 가벼워진다. 정답을 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으니 타인의 실수에 너그러워지고, 나의 서툶을 좀 더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답을 찾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답이 없는 상황을 견뎌내는 법을 배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아도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내일 다시 한 번 부딪쳐 볼 용기를 내는 것. 그것이 우리가 그토록 동경했던 어른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

 

오늘 하루도 어김없이 닥쳐온 크고 작은 선택지 앞에서 당황하고 있다면, 너무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척척 해내는 것처럼 보이는 저 사람도 사실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수만 가지 고민을 품고 있을 테니까. 우리 모두는 그저 어른이라는 이름의 미완성으로, 서로의 불안을 조금씩 덧대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조금 서툴러도 괜찮다. 정답 없는 문제지에 기꺼이 오답을 써 내려가며, 그 오답들이 모여 우리만의 고유한 삶이라는 이야기를 완성해 나가는 것. 어른이란, 어쩌면 그렇게 '모르는 채로 계속해서 걸어가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심선보]

칼럼니스트

머니파이 대표

금융투자 강사

월간 시사문단 신인상 시부문 작가 등단

저서:‘마음이 머물다 간 자리’, ‘초보를 위한 NPL 투자 가이드’

메일 : ssonbo@nate.com

 

작성 2026.07.03 11:56 수정 2026.07.03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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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