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항아리
안녕하세요. 최우주입니다. 새로움을 좇느라 잠시 놓쳐온 우리 사유의 뿌리를 다시 꺼내어 오늘의 언어로 마주해 보는 시간입니다. 빠른 해답 대신 오래 곱씹을 숨결을 건네며 지나온 시간 속에서 오늘을 살아갈 지혜를 찾고자 합니다. 자, 함께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오늘은 우리 조상들이 물건을 담아 저장하는 데 썼던 항아리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항아리는 오랫동안 우리 조상들의 부엌과 마당을 지켜온 생활용기였지만, 동시에 한국인의 미의식과 자연관을 가장 아름답게 보여주는 문화유산이기도 합니다. 항아리는 흙에서 태어납니다. 좋은 흙을 고르고, 물을 섞어 반죽한 뒤 물레 위에서 천천히 형태를 빚죠. 이후 건조와 초벌, 유약 작업을 거쳐 1,200도 안팎의 가마에서 오랜 시간 구워냅니다.
그 과정에서 불길의 세기와 가마 속의 공기, 흙의 성질이 조금만 달라져도 빛깔과 형태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같은 장인이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도 똑같은 항아리는 하나도 없습니다. 항아리는 사람이 만들지만, 마지막 완성은 자연이 함께하는 예술이죠.
항아리는 단순히 음식을 담는 그릇이 아니었습니다. 간장과 된장, 고추장과 김치, 곡식과 물을 저장하며 계절을 품었습니다. 숨을 쉬는 흙의 미세한 기공은 공기를 천천히 드나들게 하여 발효를 돕고, 음식이 오랫동안 제맛을 유지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과학이라는 말을 몰랐던 시대였지만, 우리 조상들은 자연의 원리를 삶 속에서 이미 실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장독대에 줄지어 놓인 항아리들은 단순한 저장 용기가 아니라 한 집안의 시간과 정성이 익어가는 공간이었습니다.
항아리의 가장 큰 미덕은 넉넉함입니다. 무엇을 담든 그것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익게 합니다. 발효는 기다림의 예술이고, 항아리는 그 기다림을 끝까지 견디는 그릇이죠. 그래서 항아리를 바라보고 있으면 조급함보다 여유가 먼저 떠오릅니다. 가득 채워야만 가치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비워두어야 새로운 것을 품을 수 있다는 삶의 지혜가 그 안에 스며 있습니다.
오늘날 플라스틱과 스테인리스 용기가 생활의 중심이 되었지만, 오래된 한옥의 장독대에 놓인 항아리들을 바라보면 마음이 이상하리만큼 편안해집니다. 햇빛을 머금고, 비를 맞고, 바람을 견디며 묵묵히 계절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사람의 삶과도 닮아있습니다. 오래 견딘 것일수록 더 깊어지고, 천천히 익은 것일수록 더 향기롭다는 사실을 항아리는 말없이 보여줍니다.
오늘의 이야기가 그대에게 다다랐다면 지혜의 숲을 거니는 사유의 시간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저는 최우주 기자였습니다.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