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필의 감성에세이] 세 자매 이야기

여수 향일암 가는 길

1959년 로마 올림픽 출전 체조 선수 유명자 씨가 60여 년간 미국에 살다가 노령의 몸으로 그리운 조국을 찾았다. 이번 여행은 80 중반의 나이에 마지막 방문일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귀국하여 3자매가 만나 그리운 고국의 문화와 옛 추억을 회상해 보는 시간이었다. 명자 씨의 3자매는 본인, 유명자(84세), 언니 유경자(87세), 막냇동생 유제옥(79세)이다. 

 

이들 세 노인이 만나 20여 일간의 재미난 일상을 이야기해 본다. 명자 씨는 고령으로 이제 안 보면 다시 못 본다는 심정으로 미국의 온 가족 8명(큰딸 가족 5명. 작은딸 가족 3명)을 데리고 왔다. 어린 손주들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나라 한국에 가보고 싶다고 하여 동행을 한 것이다.  

 

유명자 씨는 누구인가? 

 

그녀는 우리나라 최초의 올림픽 참가 체조 선수다. 1960년 로마 올림픽에 출전했던 체조 선수다. 전후 가난한 나라에서 제대로 의상도 갖추지 못하고 정식 훈련도 받아보지 못한 17세 고교 1년의 어린 선수가 출전하여 국민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였다. 그 후 이화여자대학에 진학하여 피지컬 인체 해부학 등을 공부하였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교수의 길을 택했으나 연세대 의대생 정태섭과 결혼하는 바람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이름이 잠시 잊혔다. 

 

미국에 이민을 가서 주부의 몸으로 대학에 입학하여 학위를 받아 교수직을 원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의사인 남편의 배려로 윤택하게 살았다. 남편은 의사에서 목회자의 길을 택해 목회 활동 중에 과로하여 67세로 타계하고 1남 2녀의 자식을 잘 키워 3자녀 중 두 딸은 의사가 되었다.

 

세 자매 이야기 

그녀가 언니네 집에서 보낸 20일간의 일상이다. 3자매의 첫째(유경자), 둘째(유명자), 막내(유제옥)으로 통한다. 필자는 유제옥의 남편이다.

 

 “몸은 부실한데 목소린 생생하네.” 미국서 온 둘째가 막내에게 건넨 첫인사였다.

 “입술은 청춘인데 몸은 노인이지.” 막내는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

 “둘째 언니는 운동을 많이 해서인가? 몸매는 30대야.”

 “아니 나보다 큰 언니는 90줄 노인인데 놀리는 몸짓은 60대잖아.” 

 “언니들 건강을 보니 거꾸로 갈 것 같아.” 막내의 말이다.

 “우리가 이렇게 만나다니 꿈 갔구나.” 큰 언니가 울먹인다.

 

건강한 노인들의 싱그러운 대화였다. 소녀처럼 수다는 계속되었다. 막내는 노래 잘하고 재치 있었지. 둘째 언니는 공부밖에 몰랐어, 힘든 운동을 하면서 성적은 1등을 놓치지 않았어, 그거 생각나, 수업을 못 해 보충한다고 친구의 노트를 빌려와서 밤새워 내가 필사해 준 것 말이야, 운동으로 수업을 못 받아 안달을 떨면서도 시험을 보면 늘 1등이었어. 역시 공부란 머리도 머리지만 집념이 강한 자가 잘하나 봐. 아버진 둘째만 좋아했지. 큰 언니는 일찍 시집갔지, 둘째는 공부만 하지, 난 죽도록 가사 도우미였어, 아버진 부잣집에 혼처나 나자 얼씨구나 어린 20세 딸을 결혼시켜버렸어. 그래서 언니는 부잣집 며느리로 살아서 세상 물정 모른다니까, 아버진 하나밖에 없는 아들만 좋아하고 우리 딸들은 무시했어. 추억은 밤새도록 계속되었다.

 

유명자 씨는 체류할 일정을 정리하여 보여 주었다. 먼저 눈꺼풀 지방 제거 수술을 하고 모교를 방문하며 옛날, 같이 운동했던 교수, 선배 동기를 만나 식사를 하고, 시가 친척, 친정 친척 미팅을 한 후 국내 여행을 하기로 하였다. 

 

‘언니 제일 먹고 싶은데 뭐요.’ 막내가 물었다. 한국 향토 음식으로 옛날 어머니가 만들어 준 ‘지니국’이 먹고 싶어. 지니국, 그게 뭔데? 언니는 요상한 것만 기억하네.

지니국, 그건 김치를 씻어 간기를 빼고 끓인 국물이야. 큰 언니가 말했다. 그걸, 어떻게 만들어? 결국은 살수도 만들 수도 없어서 못 먹었다. 향토 음식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막내는 시장에 가서 수수부꾸미를 사 왔다. 수수부꾸미네, 역시 이 맛이야, 난 이런 음식이 좋아.’

 

오랜 세월 미국살이를 했지만, 고국과 향토 문화는 가슴의 얼로 간직하고 있었다. 큰 언니는 맛집과 시장을 찾아다니며 향토 음식을 마련해 주었다. 막내는 열무김치와 물김치를 사다 주었다. 둘째는 끼니마다 물김치만으로 식사를 즐겼다.

 

미국의 딸 손주들에게 한국을 알게 하다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을 모르는 딸. 손주들이 외할머니 나라에 가보고 싶다고 해서 데리고 왔다. 한국의 K-팝, 푸드, 콘텐츠에 관심이 많았던 아이들은 일등 인터넷 국가인 한국이 대체 어떤 나라일까, 마침내 의사인 큰딸 내외와 아들딸 3명 합 5명, 또 의사인 작은 딸 가족 3명, 총합 8명이 거액의 여행비를 지불하고 광화문에 숙소를 정하고 서울문화 탐방 체험을 시작했다. 첫날은 미국에서 온 9명의 가족과 친정 이모 가족 17명, 합 26명이 광화문 중국관에서 상견례 식사를 하였다. 문화가 다르고 전통이 다른데도 가족은 친숙하고 자유롭게 어울렸다. 

 

특이한 것은 어린아이가 많았는데 초등학교 2학년인 우리 손녀와 또래의 미국 손녀가 자유롭게 인사하고 대화하는 것을 보고고 깜짝 놀랐다. 어른들이 상상하지 못한 소통 문화였다. 어린이들이 핸드폰 통역기를 놓고 대화를 하는 것이다. 한국어로 말하면 영어로, 영어로 말하면 한국어로 통역되어 소통하는 것이었다. 비로소 글로벌 다국적이 하나가 되는 문화공간을 볼 수 있었다, 역시 인터넷, AI시대의 휴먼 라이프였다.

 

그런데 미국 아이들이 서울에 와서 호텔에만 묵어서 한국문화 체험을 충분히 갖지 못했다. 정보 부족으로 스케줄에 가이드 선택을 하지 않아서 다양한 한국의 문화와 전통을 체험하지 못하고 1주일 내내 서울시만 돌아보는 답답함이었다. 

 

그러나 한옥촌 체험은 재미있었다. 미국 아이들은 한옥을 통나무집이라고 했다. 계동의 이모할머니 댁은 한옥 저택이었다. 이모할머니 저택에 와서 즐거워하며 감탄하는 것은 통나무집 한옥의 기둥과 큰 통나무 대들보에 얹힌 서까래였다. 마룻바닥이 널빤지란 것이 친환경적이라고 감탄하였다. 딸 가족은 한국의 시골 모습을 보지 못하고 아쉽게도 일주일 만에 서울을 떠나고 할머닌 20일 더 머물기로 하였다. 

 

향일암 가는 길

세 자매의 여수 여행이 시작되었다. “KTX를 타보고 싶어.” 둘째의 소원이었다. 미국에서 기차여행은 못 해 봤고 KTX같은 고속열차는 체험하지 못한 문화다. “그럼 KTX 타고 부산. 여수, 목포. 강릉 어디든지 가보자.” 막내가 제안했다. “그래요, 우리 KTX 타고 여수로 가서 향일암에서 건강하고 오래 사는 기도발을 받고 밤바다 낭만과 해산물 요리를 맛있게 먹자고.” 큰언니 제안이었다.

 

마침내 여수 향일암 여행을 시도하였다. 내가 가이드로 나섰고 현지 교통은 택시를 렌트하기로 하고, 호텔, 식사 등 1박 2일 여수 여행 계획서를 작성했다. 그런데 자식들이 걱정하였다. 80 고령의 노인들 만 4명이 여행한다는 것이 남 보기 민망하다는 것이다. 그때 우리 사위가 ‘제가 렌트카 운전과 안내를 해 드릴게요.’라고 자청하였다. 그렇게 해주면 고맙지, 다른 자식들이 환호했다. 사위는 휴가를 내어 가이드로 나섰고 내 딸이 여행 비용과 호텔. KTX 예약, 식당과 메뉴까지 자상한 스케쥴을 짜 주었다.

 

드디어 KTX 타고 가는 여수. 순천 여행이 시작되었다. 용산역에서 아침 첫차를 탔다. 그때 미국의 둘째가 ‘KTX가 왜 이리 조잡해. 난 럭셔리한 거로 상상했지, KTX는 빨리 가는 열차일 뿐이야. 여수까지 450km를 3시간에 달려요. 막내가 설명한다.

 

마침내 용산역에서 세 자매가 마주 보는 테이블 좌석에 앉고 사위는 따로 앉았다. 열차는 줄기차게 달려 여수 엑스포 역에 도착하였다. 예약해 놓은 식당에서 여수의 명품요리인 감자 갈치조림으로 근사한 식사를 마치고 렌트한 차를 타고 순천으로 달려갔다. 순천 국제정원과 철새 재두루미 도래 갯벌을 보러 가는 것이었다

 

순천 국제정원은 상청수가 무성하고 꽃과 잔디밭이 잘 가꾸어져 있었다. 세계 각 나라의 특성과 정서를 느끼는 정원을 둘러볼 수 있었다. 아름다운 정원에 도취한 자매들은 비틀거리면서 소녀처럼 즐거워한다. 정원을 둘러보고 철새 도래지 갯벌과 해안 갈대숲이 무성한 순천만 습지로 옮겨 아름다운 갈대숲을 관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재두루미가 내리는 순천 갯벌과 와온의 석양은 시간이 늦어 체험하지 못했다. 정원 숲과 습지를 구경하고 예약된 식당에서 식도락을 즐긴다. 저녁 식사는 고급스런 보리굴비 정식이었다. 잘 건조된 굴비 맛이 남도의 풍미를 느끼게 하였다. 식후 여수로 내려와서 엑스포 박람회장 안에 있는 여수 최고의 소노컴호텔에 짐을 풀었다. 

 

밤이 되자 여수 명소인 밤바다 풍경을 구경하려고 했으나 일정에 지친 노인들이 일찍 휴식을 취하는 바람에 가보지 못했다. 아침은 간단히 빵으로 마치고 오동도로 향하였다. 여수의 상징적인 동백꽃 섬 오동도는 700여m 방파제 연결되었는데 여행 열차로 이동하였다. ‘노인들은 가팔라서 걷기 힘드니 유람선을 이용하세요.’ 여행사의 호객이었다. ‘아니요. 우린 걸을 수 있어요.’ 하지만 언덕진 길이 많아서 등대가 있는 곳까진 오르지 못하고 포구에서 아름다운 동백꽃 숲과 수니대 사이로 푸른 바다를 음미하였다. 정말 아름다운 섬이었다. 오동도를 나와서 해상 케이블카를 탄다. 바다 위를 달리는 케이블카였다. 자동차는 돌산섬 종점에 가서 대기하고 3자매는 해상 케이블카를 타고 여수시 해경을 관망한다. 푸른 바다를 가로질러 돌산 섬에 이르는 해상 케이블카는 그야말로 환상의 극치였다. 

 

여수는 전라좌수영, 이순신의 바다였다. 이 바다에서 장군은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었다. ‘천국으로 가는 기분이야. 장녀의 말이다. 이대로 하늘로 사라졌으면 좋겠어. 둘째의 감탄이다. 우리가 이런 호사를 하다니’ 막내가 눈물을 글썽인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대기한 차를 타고 여수의 명물인 장어구이와 장어탕 식당으로 갔다. 여수엔 하모 샤부샤부와 회가 일품인데 장어탕 역시 명품이었다. 하모는 갯장어이고 장어탕은 붕장어인데 장어구이와 통장어탕으로 맛있게 먹었다.

 

‘이젠, 향일암으로 기도발 받으러 가자.’ 큰언니 말이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해수 관음보살이 선 돌산 향일암으로 향하였다. 40여 분 달리는 해변 드라이브였다. 9월에 환상적인 여수 섬 세계박람회가 열린다. 공사 현장이 한눈에 보였다. 이곳은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 수군을 훈련하던 모슬포 해변이다. 장군은 이곳에서 출발하여 노량해전에 참전했다가 거룩한 전사를 당했다. 여수는 온통 이순신의 얼이 깃든 충절의 고장이다. 

 

구불구불한 갯가 길을 달려 향일암에 도착하였다. 세 늙은이는 기도한다.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살게 해주시오’ 되뇌며 가파른 언덕과 계단을 오르는데 숨이 차서 오르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언니 올라갈 수 있어?’ 둘째가 물었다. 그럼, 여기까지 왔는데, 가봐야 기도발을 받지. 난 못 갈 것 같아. 그렇다면 올라가지 말자.’ 포기하고 인근 빙수집에서 시원한 빙수와 냉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한다. 결국 세자매가 소원하던 향일암 기도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고령의 체력 때문 임을 알았다. 우리나라에서 해수관음의 기도발이 잘 받는 4개 기도처가 있다. 여수 향일암. 남해 보리암. 낙산사 성련암. 석모도 보문사이다. 

 

향일암 초입에서 차를 마시고 다시 해변 드라이브로 예술인촌에 들렸다. 바다 풍경과 유락시설이 잘 갖추어진 환상적인 예술인 펜션타운이었다. 마지막으로 여수 10대 풍미인 서대구이 식사를 하려고 했는데 ktx 탑승 시간이 절박하여 포기하고 엑스포 역에서 렌터카를 반납하고 간단한 우동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열차를 탔다. 열차에서 피곤해서 내가 떨어진 채 용사역에 도착하였다.

 

여정을 마치면서 3자매가 하는 소리가 재미있다. ‘이젠 나이가 들어 여행도 못 하겠네. 천천히 걷는데, 왜 이리 숨이 차냐고. 다리는 휘청거리고 허리는 구부려져 좋은 세상 다 갔다. 막내부터 거꾸로 갈 것 같아, 하하하 한바탕 웃어 저 낀다. 

 

아무튼 유명자 씨의 고국 나들이는 3자매의 가쁜 숨소리로 여수 여행을 마친다. 유명자 씨는 다시 미국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이번 여수 여행은 잊지 못할 80 고령 세 자매의 아름다운 추억 여행이었다.

 

 

[김용필]

KBS 교육방송극작가

한국소설가협회 감사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마포지부 회장

문공부 우수도서선정(화엄경)

한국소설작가상(대하소설-연해주 전5권)

이메일 :danmoon@hanmail.net

 

작성 2026.07.07 09:39 수정 2026.07.07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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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