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용 칼럼] 디카시 철학 담론의 두 궤적

김겸의 정동 이론과 최호영의 공간 이론을 중심으로

Ⅰ. 문제 제기

최근 디카시(dica-poem)에 대한 학문적 논의는 단순한 장르론을 넘어, 철학적 차원으로 확장하고 있다. 사진과 시가 결합한 짧은 형태의 시적 언어는, 언어와 이미지의 경계를 해체하며 새로운 감각의 사유를 요청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디카시는 일찍부터 ‘감각의 문학’ 혹은 ‘감응의 문학’으로 불리며, 미학적 실험과 철학적 탐구의 장으로 자리 잡았다. 그중에서도 김겸의 「디카시의 철학적 가능성에 관한 시론」(2022)과 최호영의 「디카시의 문학 공간과 헤테로토피아 미학에 관한 시론」(2023)은 이 분야의 이론적 지형을 대표한다.

 

두 논문은 각각 정동(affect)과 공간(space)을 핵심 키워드로 삼아 디카시의 철학적 가능성을 탐색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지만, 그 접근 방식과 철학적 방향성은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다.

 

김겸은 들뢰즈와 마수미의 정동론, 바흐친의 대화 이론을 결합하여 ‘생성의 존재론’으로서의 디카시를 모색했다. 최호영은 푸코의 헤테로토피아 개념을 통해 ‘문학 공간의 미학’으로서의 디카시를 해석했다. 하나는 감각의 흐름을 강조하는 역동적 철학이고, 다른 하나는 공간의 배치를 통해 질서화하는 구조적 철학이다.

 

이 글은 두 이론을 비교·대비함으로써 디카시 철학 담론의 전개 방향과 이론사적 의의를 비판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Ⅱ. 김겸의 정동 이론: 생성의 존재론으로서의 디카시

김겸은 디카시를 감각의 생성과 흐름이 교차하는 존재론적 장(場)으로 파악한다. 그는 들뢰즈의 ‘생성(becoming)’ 개념을 핵심 토대로 삼아, 디카시를 고정된 형식이 아닌 끊임없이 생성하는 감응의 과정으로 본다.

 

김겸에 따르면, 디카시는 언어와 이미지의 대립이 아닌 서로의 경계 위에서 새로운 감각적 진동을 만들어 내는 장르이다. 사진은 언어의 사유를 자극하고, 시어는 이미지의 의미를 확장시킨다.

 

이 상호 작용은 곧 정동의 흐름이자 감각의 정치학이다. 그는 마수미의 이론을 빌려, 이러한 감응의 관계를 ‘신체적 사유의 정치적 가능성’으로 본다. 또한, 김겸은 바흐친의 대화 이론을 보완적으로 결합한다. 디카시를 단일한 발화가 아닌 다성적 대화의 장으로 읽는다. 이때 대화란 언어적 상호 작용에 국한하지 않는다. 이미지와 언어, 주체와 타자, 감각과 사유가 뒤섞이는 복합적 생성의 과정이다. 그에게 디카시는 일종의 ‘움직이는 사유’이다. 언어 이전의 감각적 힘이 언어로 응결되는 사건이다.

 

들뢰즈는 감각을 존재의 ‘생성’으로 파악하는 반면, 마수미는 감각을 신체·정치의 작동 방식으로 읽는다. 즉, 전자는 존재론적 층위의 이론이고, 후자는 감각의 정치학이라는 실천적 층위의 이론이기에 두 개념의 직접 결합은 본질적으로 긴장을 내포한다.

 

이러한 시론은 그 철학적 야심에도 불구하고, 이론적 부정합성을 내포한다. 들뢰즈의 생성 존재론과 마수미의 감각 정치학은 인식론적 층위가 다르다. 바흐친의 대화 이론은 언어적 상호 작용의 구조를 전제한다. 서로 다른 이론들을 한 틀 안에 병합하면서도, 김겸은 그 접합의 논리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디카시의 생성성을 풍부하게 제시했으나, 그 생성의 구체적 작동 원리(정동이 어떻게 대화적 구조로 전환되는가)는 모호하게 남겼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김겸의 연구는 디카시를 감각적 사유의 장으로 끌어올린 최초의 철학적 시론이다. 그는 디카시를 단순한 미디어 장르가 아닌, 존재와 감각의 새로운 사유 구조로 제시함으로써, 이후 논의의 철학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Ⅲ. 최호영의 공간 철학: 헤테로토피아로서의 문학 공간

최호영의 공간론은 결과적으로 김겸의 정동론이 드러낸 모호함을 구조적으로 정합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그는 푸코의 ‘헤테로토피아’를 핵심 개념으로 채택하여, 디카시를 현실 공간과 비현실 공간이 교차하는 문학적 장소로 재정의한다. 그에게 디카시의 본질은 사진과 시의 대립이 아니다. 그 사이에서 생성되는 제3의 공간, 즉 ‘문학 공간’의 형성이다. 그는 이를 감응(공감)과 반감(비판)이 교차하는 작용으로 설명한다. 그 교차의 순간이 바로 푸코적 헤테로토피아의 미학적 현현이라고 주장한다.

 

최호영의 이론은 구조적으로 매우 정합적이다. 그는 ‘감응–반감–문학 공간–헤테로토피아’로 이어지는 논리 사슬을 구축하여, 디카시의 생성 원리를 단계적으로 도식화한다. 또한, 실제 작품 분석(문성해, 권덕하, 김남호 등)을 통해 이론의 적용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하지만 그의 체계는 동시에 철학적 축소의 한계를 드러낸다. 푸코의 헤테로토피아는 원래 사회 제도와 권력의 배치 속에서 작동하는 비판적 공간 개념이다. 최호영은 이 개념을 시와 사진의 감각적 상호 작용으로 환원함으로써, 헤테로토피아의 사회적 급진성을 미학적 은유로 약화시켰다.

 

본래 푸코의 헤테로토피아는 사회 제도와 권력의 배치를 교란하거나 재배치하는 비판적 장치이다. 단순한 ‘상상적 공간’이나 미학적 은유로 축소할 수 없는 정치 철학적 개념이다.
 

결국, 그의 논문에서 헤테로토피아는 ‘상상력의 공간’으로 변모하고, 푸코가 강조한 권력, 제도, 주체의 문제는 사라진다. 또한, 그는 ‘문학 공간’과 ‘헤테로토피아’를 거의 동의어로 사용한다. 두 개념의 위계나 구분을 명시하지 않는다. 그 결과, 개념의 논리적 경계가 흐려지고, 공간 철학을 미학적 수사로 평면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의 연구는 디카시 이론의 정합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김겸의 정동론이 이론적 과잉으로 인해 산란했다면, 최호영의 공간론은 개념을 체계화함으로써 디카시 비평의 논리적 틀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Ⅳ. 두 이론의 병렬적 대비: 정동의 흐름과 공간의 질서

김겸과 최호영의 시론은 철학적 기반, 개념의 구조, 비평의 초점에서 뚜렷이 대조를 이룬다. 김겸이 감각의 운동성을 중심으로 디카시의 존재론적 가능성을 탐구했다면, 최호영은 공간의 구조성을 통해 디카시의 미학적 체계를 설명했다.

 

김겸에게 디카시는 흐름이며 생성이다. 그의 정동 이론은 언어와 이미지가 서로의 경계를 넘어 끊임없이 생성하는 과정으로서의 시를 말한다. 그는 시를 닫힌 형식이 아닌 미완의 운동으로 본다. 반면, 최호영은 디카시를 공간적 질서로 이해한다. 그에게 시와 사진은 각각의 질서 속에서 긴장을 유지한다. 그 사이에서 제3의 공간이 탄생한다. 그 공간은 감응과 반감의 교차점이다. 푸코가 말한 “다른 공간”, 즉 헤테로토피아의 문학적 변형이다.

 

이처럼 김겸은 감각의 정치학을, 최호영은 공간의 미학을 구현했다. 전자는 흐름의 철학이고, 후자는 배치의 철학이다. 하나는 감각의 생성에 주목하고, 다른 하나는 그 생성의 구조화를 시도한다.

 

결국, 두 이론의 차이는 디카시 철학이 ‘운동성에서 구조성으로’ 이행하는 과정으로 읽힌다. 김겸이 개념의 확장을 통해 철학적 개방성을 보여 주었다면, 최호영은 개념의 정제와 체계화를 통해 철학적 안정성을 획득했다.

 

Ⅴ. 이론사적 의의와 비판

이 두 시론은 각각의 한계를 지니면서도, 디카시 철학 담론의 이론사적 발전을 보여 주는 연속선상에 놓여 있다. 김겸은 디카시를 ‘감각적 생성체’로 재정의한다. 감각·언어·이미지의 관계를 탈경계적으로 사유했다.

 

그는 디카시의 본질을 ‘흐름’과 ‘열림’의 개념으로 규정함으로써, 철학적 사유의 지평을 열었다. 반면, 최호영은 이 흐름을 공간의 틀 안에 정착시키려 했다. 그는 디카시를 감각의 흐름이 아닌 공간적 배치를 통해 구성되는 질서로 읽었다. 이는 정동론의 불안정성을 극복하려는 시도였으나, 그 과정에서 푸코의 급진적 공간 철학이 미학적 수사로 전락했다.

 

이론사적으로 보자면, 김겸은 이론의 풍부함 속에서 혼란을, 최호영은 이론의 정합성 속에서 결핍을 보여 준다. 전자는 개념의 과잉 결합으로 인해 논리적 긴장을 낳았고, 후자는 철학적 층위를 미학으로 축소함으로써 사유의 깊이를 잃었다.

 

결국, 두 연구 모두 부분적 성취와 본질적 한계를 동시에 지닌다. 김겸은 감각의 생성이라는 방향을 제시했으나, 그 흐름이 사회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보여 주지 못했다. 최호영은 공간의 질서를 통해 정합성을 얻었지만, 그 공간이 현실 권력과 제도의 배치 속에서 어떻게 의미화되는지는 탐구하지 않았다.

 

Ⅵ. 결론: 감각과 공간의 대화로서의 디카시 철학

김겸과 최호영의 시론은 상반되면서도 상보적이다. 김겸은 디카시에 생성의 불안정성을 부여했다. 최호영은 그 불안정성을 공간의 질서 속에 수렴시켰다. 한쪽이 과도한 이론적 유동성으로 흐른다면, 다른 한쪽은 지나친 개념의 고정으로 응답한다.

 

디카시 철학의 향후 과제는 이 두 흐름의 교차점에 있다. 감각의 생성과 공간의 구조, 정동의 운동과 장소의 윤리, 이 두 축이 통합될 때 디카시의 철학은 보다 온전해질 것이다. 푸코의 헤테로토피아가 다시 사회적·윤리적 층위를 회복한다. 들뢰즈의 생성 개념이 현실의 감각적 실천과 결합될 때, 디카시는 단순한 미학적 실험을 넘어 ‘감각의 철학이자 공간의 윤리’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결국, 디카시 철학 담론의 두 궤적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면서도 하나의 중심(감각과 공간의 대화라는 근원적 질문)으로 수렴한다. 이 두 사유의 교차점에서, 디카시는 언어와 이미지, 사유와 감각,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21세기적 문학 철학의 새로운 장으로 완성된다.

 

따라서 디카시 철학의 향후 과제는 감각의 운동성과 공간의 구조성을 상호 변환시키는 이론적 회로를 구축하는 데 있다. 두 개념이 교차하는 지점에서만 디카시는 미학적 실험을 넘어, 현실을 사유하는 철학적 힘을 획득한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경남정보대학교 특임교수

저서:평론집 10권, 이론서 4권, 연구서 3권, 시집 6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

이메일 shin1004a@hanmail.net 

 

작성 2026.07.08 10:41 수정 2026.07.08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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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