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수 칼럼] 7월 8일은 사천해전이 있었던 날… 사천해전지 위치 바로잡아야

사천시 주도 학술대회를 개최를 제안한다

7월 8일은 임진왜란 당시 사천해전이 있었던 날이다. 1592년 음력 5월 29일에 사천해전이 있었지만 그해의 양력으로 환산하면 7월 8일이 된다. 이날 이순신 장군은 최초로 거북선을 동원하여 사천만 일대에서 적선 13척을 격파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그동안 사천해전지가 어디인가에 대해서는 노산 이은상이 1960년대에 주장한 대로 줄곧 사천시 용현면 선진리성이라고 알려져 왔다. 그러나 선진리성은 이순신 장군의 '당포파왜병장'에 기록된 내용과는 전혀 다른 지형적 특성을 갖고 있다. 사천해전지가 선진리성이 아니고 장암창지라는 사실은 필자가 이미 ‘임진왜란 시기 사천해전지의 위치 고찰(지방사와 지방문화 28권 1호, 2025년 5월)’이라는 논문에서 자세히 밝힌 바 있다.

 

여수에서 거북선을 이끌고 제2차 출전을 결행한 이순신 장군은 1592년 음력 5월 29일 남해 노량으로 진출하여 원균 장군과 만나 적의 행방을 묻고 있었다. 조선수군의 연합함대가 노량에서 사천만으로 막 접어들 때의 상황을 이순신 장군이 조정에 보고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멀지 않은 해상에서 왜선 한 척이 곤양으로부터 나와 숨어서 사천으로 향하여 기슭을 타고 배를 저어가고 있었습니다. 선봉에 위치한 여러 장수들이 노를 빨리 저어 추격하였는데, 전부장 방답첨사 이순신과 남해현령 기효근 등이 그 배를 따라잡자(追捕) 왜인들은 상륙해버렸으므로 배만을 당파 분멸하였습니다."

 

사천만 일대 지도 (자료 출처: 국토지리정보원 국토정보맵)

 

이 같은 이순신 장군의 기록을 보고, 나는 직감적으로 선진리성은 사천해전지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적선 1척이 곤양에서 나와 사천만 북쪽 끝에 있는 사천으로 도주했다면, 곤양에서 나올 때 바로 앞에 있는 선진리성은 이미 지나갔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음으로 장암창지가 사천선창이라는 심증을 굳힌 것은 다음과 같은 당포파왜병장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적선 1척을 추격하여 불태워 없앤 후 사천선창을 바라보니 산이 구불구불 7~8리나 뻗혔는데, 지세가 높고 험한 곳에 무려 400여 명의 왜적들이 장사진으로 결진하고, 붉고 흰 깃발들을 난잡하게 꽂아 사람들의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었습니다."

 

장암창지

 

선진리성은 해발고도가 30미터 정도 밖에 안되는 구릉이며 바다와 접한 정면이 불과 400미터 정도로 겨우 1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장암창지 일대는 높은 산이 약 3km 정도 길게 이어져 이순신 장군이 말한 구불구불한 7~8리와 일치한다.

 

선진리 선진 마을 일대 지도 (자료 출처: 국토지리정보원 국토정보맵)

 

필자는 1년 이상 사료를 수집하고 현장답사를 했다. 그 결과 선진리성은 사천해전지가 아니라고 확신했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사료 하나를 발견했다. 이순신 장군이 언급한 사천선창이 장암창지라는 것을 녹도만호 정운 장군의 일대기인 '증병조참판정공전 (贈兵曹參判鄭公傳)'에서 찾아냈다. 이 기록은 사천해전지가 '사천의 장암(泗川之塲巖)'이라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

 

『증병조참판정공전』에 기록된 사천해전지 ‘사천의 장암(泗川之塲巖)’(자료 출처: 『전남의 서원·사우 -사액서원·사우편-』, 1988, 목포대학박물관)

 

사천시 축동면 구호리 장암창지 일대는 사천공항 건설과 인근의 공단 조성사업 등으로 대규모 매립이 이루어져 지형이 많이 변했다. 심지어 남해고속도로가 장암창지 앞으로 지나가고 있다. 그러나 1910년도 지도만 봐도 장암창지가 이순신 장군의 장계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지형임을 알 수 있다. 조수 간만의 차이가 심하여 썰물 때는 판옥선 같은 대선이 들어가기 어렵다는 것도, 이순신 장군의 장계 내용과 일치한다.

 

선진리성 앞바다는 일제강점기 때 여객선이 기항할 정도로 수심이 깊어, 썰물 때에도 흘수선이 낮은 판옥선은 언제든지 출입이 가능한 곳이다. 그러나 1960년대에 노산 이은상은, 조선 후기에 선진리에 선소가 있었다는 것 하나만 갖고 선진리성 일대를 사천선창으로 보고 사천해전지라고 주장하는 오류를 범했다.

 

필자가 새롭게 밝힌 사천해전지에 대해서는 경남신문에 기사로 났었고, 인터넷신문에도 수차례 칼럼을 게재한 바 있다. 그러나 사천시 담당 공무원들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물론 그동안 선진리성 일대에 조성한 조형물이나 안내 입간판 등을 변경하자면 대단히 번거로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역사를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는 없지 않은가.

 

필자가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긴 했으나, 사천해전지에 대한 다른 학자들의 고견도 들어보고 싶다. 그래서 사천시가 주도하여 사천해전지가 어디인지에 대한 학술대회를 개최할 것을 제안한다. 사천시 공무원, 시의원, 향토사학자, 관광해설사들이 참여하여 꼭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이봉수 논설주간] 

시인

이순신전략연구소 소장

https://myisoonsinxsz.zaemit.com/

 

작성 2026.07.08 11:41 수정 2026.07.08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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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