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열전 靑年 列傳] 자유로운 영혼, 신유진

이유 있는 삶


재미나게 살자

 

이유 없이 해야 하는 게 싫었다. 학창시절부터 그랬다. 초등학교 때 부모님 몰래 용돈 모아 서울로 오디션을 보러갔다. 그냥 노래 부르는 게 재밌어서였다. 중학교 3학년 때 춤추는 것이 굉장히 신나 보여 춤을 배워 학교 축제에서 춤 공연을 했다. 고등학교 1학년, 첫 수업을 듣고 국사가 좋아졌다. 국사 수업은 아주 매력적이어서 다른 수업보다 선생님께 유독 질문을 많이 했다.

 

하루는 반 친구에게 편지를 받았다. “네가 궁금한 건 알겠는데 너 때문에 진도가 안 나가니 조용히 좀 해그래도 난 쉬는 시간에 찾아가 끊임없이 질문했다. 짝꿍과 쉬는 시간에 영어 노래 가사가 이해가 안 된다며 선생님께 여쭈니 진지하게 설명해주셨다. 별거 아닌 가사로 영어시간에도 재미를 느꼈다. 가장 처음 배웠던 단어까지 기억난다. positive, negative 재밌는 건 하고 싶고, 재미없는 건 하기 싫었다. 예를 들면 수학 공식을 왜 외워야하는지 아무도 답해주지 않았다.

 

다시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그냥 외워야 한다고. 싫어했기에 싫어하는 이유를 만들어 끝까지 하지 않았다. 3이 되어 대학교를 결정해야 하는데, 참 난감했다. 어른들은 학교가 중요하다 늘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아직도 찾지 못했는데, 성적에 맞춰 최대한 좋은 곳으로 가란다. 아무 과를 가서 공부하라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러 대학에 가는 거 아닌가? 반 친구들 대부분이 대학진학의 이유가 단순히 다들 가니까 나도 가야지.’였다.

 

그 당시 난 배움을 갈망하고 있지도 않았고,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찾지도 못했다. 남들처럼 그저 성적에 맞춰 가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다들 가니까 라는 이유는 타당하지 못했다. 부모님 손에 못 이겨 원서를 넣었다. 합격은 했다. 합격해도 가기 싫었다. 결국 남들 다 가는 대학, 가지 않았다.

 

20살이 되었다. 더 이상 용돈을 받지 않겠노라 선언했다. 용돈을 받지 않아야 진정한 어른이 되는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난 고작 한낱 어린애였다. 그래도 뱉은 말이 있으니 책임은 지고 싶었다. 우선 먹고살 돈이 필요했다. 아르바이트를 찾는 중에 월급을 보니 280이 적혀 있었다. 인터넷 강의 영업사원이었다. 당장에 금전적인 상황이 급했으니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일을 시작했다.

 

다달이 통장에 200만 원 이상 들어왔다. ‘돈 버는 거 어렵지 않은데?’ 생각했다. 돈을 벌어보니 쓰고 싶었다. 열심히 벌었지만 또 열심히 썼다. 쇼핑을 즐겼고, 술을 사랑했다. 신나게 놀았다. 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기억이 안 나는 친구가 있을 정도로. 그렇게 지나다 보니 재미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똑같은 날들이 지루해져 일을 그만두었다.

 

이젠 뭘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우연히 블로그를 하는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친구의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자신이 쓴 글을 하루에 몇 천 명이 본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글을 쓴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게 되는 게 아닌가. 호기심이 생겨 집으로 돌아와 곧장 블로그를 시작했다. 블로그에 글을 차곡차곡 쌓아 나갔다. 친구 말이 맞았다.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보러 왔다. 잠자고 밥 먹는 시간보다 블로그 할 때가 더 재밌었다. 그렇게 적어 가다보니 방문자수 그래프는 1만 명을 훌쩍 넘었다. 내 블로그에 들어오는 협찬들이 감당 못할 정도로 많이 들어왔다.

 

나의 시간을 모조리 쏟아 부었다. 그러다 문득 내 시간이 사라지고 있었다. 내가 아닌 블로그 속 가상의 나만 존재하는 듯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답답했다. 하지만 지금 포기하기에는 여태 해왔던 것들이 아까웠다. ‘내가 이거 말고 뭘 잘할 수 있을까?’ 계속해서 내게 물었고 그 물음의 답을 내렸다. 내가 직접 마케팅이란 걸 해보자고.

 

부산보다는 서울로 가야했다. 서울 간다고 다 잘되는 거 아니라며 다들 말렸다. 부모님 또한 말리셨지만 난 그래도 가야한다며 무작정 상경을 했다. 용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후, 인생에서 가장 큰 결정이었다. 첫 독립을 했다. 혼자 사는 건 막막했다. 자금도 별로 없는 상태였다. 자존심 때문에 금전적으로 힘들다 말하지 않았다. 그동안 벌어놓은 돈 까먹는 날이 늘어만 갔다. 하루를 이렇게 지나 보내게 될 줄 몰랐다. 막막했다. 내가 벌려 놓은 일을 해결해야 했다. 내 나름대로의 플랜은 이랬다.

 

첫째, 어떻게든 클라이언트와 미팅을 잡을 것. 사실 첫째만 있는 이상한 계획이지만 무작정 뛰었다. 내 기준 에 그 동안 블로그와 SNS를 해온 시간이면 충분하리라 믿었다. 그냥 어떻게든 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그렇게 뛰고 뛰었다. 처음으로 나에게 의뢰가 들어왔다. 그날 넘치던 자신감은 모조리 사라졌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문서를 만드는 법부터, 어떤 아이디어를 내놓아야 할지, 의뢰받은 금액 기준은 얼마로 정할 것인지 기본적인 게 하나도 되어있지 않은 것이다.

 

기초 지식이 필요했다. 여기 저기 물어보기도 하고, 하루 종일 마케팅 책들을 읽어도 보면서 더 알아야 할 게 정말 많다는 것을 깨닫고 내가 부족하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게 되었다. 내가 태어난 이래 가장 바쁘게 살았다.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즐겁고 재미나게 살자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그렇게 재밌는 것에 집중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그렇게 재미난 것을 찾다보니 하고 싶은 게 생겼다. 이유를 찾다보니 지금의 내가 되었다. 혹시라도 지금 나의 꿈이 뭘까, 미래에 뭘 해야 할까, 왜 삶이 재미가 없을까.’ 등의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큰일이 아니어도 괜찮으니 자신이 좋아하는 작은 무언가라도 시작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좀 더 파고들어가게 되며, 서서히 목표가 생기고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미세하게 터득하다

 

요즘은 도와줘도 욕먹는 세상이다. 네게 불합리한 일이 있어도 참으라고 하는 세상이다. 본인에게 피해가 생길 수도 있으니 최대한 나서지 말라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을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은 단소를 늘 손에 쥐고 계셨다. 잘못을 했을 때는 물론 잘못을 하지 않았을 때도 말보다는 매가 먼저였다. 언제나 가차 없이 손과 엉덩이를 때리시곤 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아무리 맞아도 익숙해지기는커녕 부당함에 화가 났다. 담임 선생님의 수업이 되면 교실을 벗어나고 싶었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반 친구들에게 담임 선생님 수업 전 밖으로 나가자 이야기하니 다들 나와 같은 불만이 있었는지 따라 나왔다. 딱히 갈 곳은 없었다.

 

조회대 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잘못도 안했는데 왜 맞고 있어야 하냐며 열심히 토론 아닌 토론을 했다. 마침 교감 선생님이 지나가셨다. “수업시간인데 왜 여기 나와 있니?”라 물으셨고 우리는 그동안 말도 안 되는 체벌을 받아왔다고 말했다. 그 후로 교내 체벌은 사라졌다. 이유 없이 매 맞는 것에 반박하지 않았다면, 일 년 내내 같은 상황은 반복되었을 것이다. 무언가 잘못 되었구나 느낀다면 생각을 넘어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이 같은 노력의 시작이 없었다면 어두운 밤을 밝힌 촛불집회는 없었을 것이며, 임기가 남은 대통령이 내려오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 몸소 내뱉고 움직였기에 오랜 시간 찌들대로 찌들어버린 어둠을 마침내 걷어낼 수 있었다. 일을 하다 보니 빈번히 왜 내가 이렇게 밖에 못할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며 가슴이 답답해졌다. 내가 부족한 게 무엇인지 알면서도 자꾸 미루고 미루어 왔던 것은 바로 공부였다. 대학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공부도 하지 않았던 나에게는 거래 회사들에게 증명해 보여줄 내가 없는 것이다.

 

나를 찾기 위해서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20대 초반 좋지 못한 일 하나를 겪었다. 처음 겪는 일이였기에 도저히 답을 알 수 없었다. 그 와중에 우연히 한 사람을 만났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만난 그 사람에게 아무에게도 말 못했던 속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았다. 문제해결의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자도 아닌, 그저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필요했었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나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연락. 정말 해결해 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구나 하고 깨달았다.

 

나보다 지혜와 지식이 가득한 사람이었기에 그렇지 않을까. 그렇게 내가 이제껏 대학을 왜 다녀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점이 사라졌다. 그래서 난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할지라도 난 그러기 위해 더욱 노력중이다. 친구들은 다 졸업하고 취직하는 마당에 다시 공부를 하려니 사실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내 나이 이제 겨우 이십대 중반, 뭐든 해낼 수 있는 나이기에 두렵지 않다. 지금부터 쭉 공부하며, 내가 하는 일에 더욱 당당한 사람이 되고자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그렇게 달려가다 이르게 될 미래의 나를 그려본다.


나에게 삶이 무료하다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행복하지 않다는 말도 덧붙여서 한다. 하지만 언제나 행복하게만 살아간다면 진짜 행복은 모르게 되지 않을까. 그러니 지금 서 있는 자신의 위치를 불안해하지 마라. 그 장소에 왜 있게 되었는지, 그래서 왜 이렇게 가고 있는지, 그 날 왜 힘들었으며 이 날은 왜 행복했는지 조각처럼 하나하나 맞춰지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라고 느끼는 때가. 평범하게 흘러가는 삶이 재미없다 느낀다면 재밌는 것을 찾아보자.

 

사람들 모두 각자 좋아하는 것 하나쯤은 꼭 있다. 그게 마냥 노는 거여도 상관없다. 뭔가 하고 싶은 게 생기면 그게 무엇이 되었든 시작해보자. 생각만 하면서 허송세월 흘려보내기엔 일생은 짧다. 우리는 지금은 살아 있지만 언젠가 싸늘한 관속에 들어가 죽음을 맞닥뜨리는 날을 맞이한다. 죽기 전까지 덜 후회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그나마 덜 후회하고 죽지 않겠는가. ‘열심히 잘 놀다 갑니다.’ 이 말 한 마디는 꼭 하고 눈을 감고 싶다.

 

20, 정말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티가 나지 않는 시기이다. 그 동안은 꾸준히 내공을 쌓아 언젠가 터뜨릴 날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준비과정 중 난관에 봉착해 한계에 달했다 느끼더라도 깊은 좌절감과 자괴감에 빠지지 말자. 그 한계를 극복하면 참 좋겠지만 멈춰도 상관없다. 끝점은 못 찍었을지언정 새로운 경험이 하나 더 늘었으니 그거면 된 거다. 20대는 그런 시기가 아닐까. 인간은 완벽하지 못하다.

 

그러니 너무 완벽해질 필요는 없다. 누구나 시행착오는 겪는다. 사자성어도 시행착오를 겪으며 나오는 말들이 더 많지 않은가. 처음부터 다 잘 할 수는 없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에 이유 없는 삶은 없으며, 그 이유를 만들고자 한다면 무언가라도 시작하면 된다. 언젠가는 의미를 부여할 만큼 갖추어져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미세하게 터득했다.




전명희 기자
작성 2018.08.14 00:55 수정 2020.07.05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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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