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를 떠난 현대 인류가 5만 년 전에 한반도의 서쪽 해안지역에 도착하며 사계절 기후를 만났다. 북위 44도 위에는 죽음의 계절인 겨울철이 막아서 더 이상 진출할 수 없었다. 한반도 서해는 인류진출의 덫(함정)이었다. 한반도 남단의 호남지역은 계속해서 이주해 모여드는 인구로 농사짓는 마을이 나타났다. 인류가 구석기 생활에서 신석기 생활로 발전하는 단계가 한반도에서 시작하였다.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길러서 가을에 열매를 거두고 말린 고기와 생선, 항아리에 저장한 발효음식, 김치, 된장, 음식이 호남에서 시작하였다. 드디어 겨울에 생존하는 능력을 얻었다. 초가집 짓고 고인돌 세우고 짚배를 만들어 오대양 각 대륙의 해변으로 이주해갔다. 한반도의 고인돌 종교와 함께 세계 인류의 새로운 유전인자를 만들었다. 백제인의 혈연이 각 대륙 강하구로 분산되었다. 미생아의 몽골리안니즘이나 몽골반점이 동아시아 혈연을 보여 준다.
겨울철을 극복하고 북쪽으로 옮기기 시작하였다. 압록강 유역을 지나며 석탄불에 질그릇 만들기가 쉬워졌다. 석탄불에서 동과 주석이 녹아 흐름을 보게 되었다. 청동 기구와 무기가 나타나며 농사짓는 생활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금속연장으로 농사짓기가 훨씬 쉬워 졌다. 인구가 증가하고 압록강과 요하하구에서 나무배를 타고 나무집을 짓는 인류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신석기시대에서 금속시대로 진화하는 변화가 한반도에서 시작하였다.
사회성장과 변화는 속도를 얻기 시작하였다. 6,500년 전에 요하문명의 전성기를 홍산문화로 일컫는다. 요하의 동쪽 요동지방은 만주평야와 몽골초원으로 이어지는 대륙문화 지역으로 성장하였다. 요하의 서쪽 요서지방은 한반도 남단과 동남아시아 해양문화 지역으로 성장하였다. 손칼로 바위에 그림을 그리는 문화가 요하지역에서 몽골초원으로 유목 생활과 함께 번창하였다. 그림은 문자로 발달하였다. 인류문명에 처음으로 문자가 나타났다. 옥돌을 다듬어 조각물 만들기 시작하였다. 종교, 예술, 과학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산업이 발달하여 국가적 조직이 금속문명과 함께 나타났다. 단군 고조선이 태어나고 동아시아 삼황오제 신화시대가 구전문학으로 나타났다.
백제 해양문화는 4,500년 전 인더스문명과 서남아시아의 수메르(sumer)문명으로 연장되었다. 인도 남부의 토착민, 드라비디언의 언어(타밀어) 산스크리트 가운데 1000단어 내외가 우리 한국어와 유사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호남의 사투리는 산스크리트라고 한다. 고조선 문화에서 금속문화와 함께 요동으로 성장한 문화는 부여와 고구려의 선조가 되었다. 고조선의 요서지방은 이미 형성된 백제국으로 일본과 대만 섬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여러 섬들이 백제의 영토였다. 일만 년 전부터 남중국 지역에서 북쪽으로 이주해온 중화족은 양자강과 황하 중류에 이르러 요서 지역에서 내려온 백제족과 혼합하기 시작하였다. 4만 년 동안 서해 해역의 백제민족과 1만 년 전에 나타난 중화족이 섞이며 동아시아 역사는 겉모양이 중화족, 실체는 동이족의 지배로 꾸려왔다. 사방이 동이족 지역이다. 만리장성을 짓고 세력 다툼으로 지금까지 이어온 역사이다.
요서에 백제의 문화는 남쪽으로 진출하며 황하유역에 하나라(4,070-3,600년 전)와 상나라(3,600-3,050년 전)의 청동문화 전성기를 이루었다. 요동에 고구려의 선조는 몽골초원으로 성장하여 흉노족이 되고 황하 상류를 따라 에베레스트 고원에 티베트까지 확장한다. 3,050년 전에 중화족이 동이족 상나라를 점령하는 무렵에 동아세아 민족의 대이동을 일으킨다. 상나라 북부 동이족이 남중국 성도 지역에 이르러 삼성퇴 문화를 이룬다. 상나라 남부 동이족은 미대륙의 마야와 아스텍 문화로 이어진다. 요하 북쪽으로 부여훈족이 한반도 동남부에 남하하여 가야와 신라국이 나타난다. 요하의 금속문화와 기마문명이 가야와 신라국에 전해졌다.
몽골초원에 바위 그림 상형문자를 정리한 한자의 모습이 중화족의 주나라 때 정리된다. 춘추전국시대 동아시아의 문예부흥을 맞는다. 동이족의 음양오행 도교는 논어로 정리되며 유학이 발달하였다. 공자와 맹자를 비롯한 석학들이 나타난다. 3,220년 전에 황하의 상류 장안에 서울을 둔 동이족 진시황제는 흉노의 기마문명과 금속바퀴의 전차를 몰고 황하 중류에 주나라를 쳐부수고 분서갱유 독재 정치를 하며 인류 역사의 첫 제국을 세운다.
동이문명의 음양오행 사상과 바퀴문화의 윤회사상은 백제의 바닷길을 따라 인도의 갠지스강에 전해진다. 2,600년 전에 석가가 태어나 불교가 나타난다. 석가가 인도에서 설법하는 동안 그의 친구 문수보살은 중국 오대산에서 설법하였다. 인도의 아소카 대왕(2,268~2,232년 전)은 인도 역사를 통하여 가장 큰 통일제국을 설립하고 불교국가로 통일했다.
동아시아의 인구팽창은 동유럽에 이르러 지중해 지역에 나타난다. 금속 도구를 가진 도리언 민족이 나타나 그리스 국가를 세운다. 그리스 도시국가 전성기에 도시국가 왕들이 인도와 중국의 불교사찰을 찾아와서 삭발 수련하여 아세아의 문화를 배워 가서 유럽의 문명이 시작하였다. 그리스의 신화와 함께 나타나 아테네의 도릭양식 건축, 파르테논은 동아시아 목조건축 양식이다. 석가의 뒤를 따라 600년 후에 기독교의 예수가 태어난다.
한(漢, 2,202 ~ 2,220년 전)은 진시황제의 장수 유방(劉邦)이 건국하였다. 백제 동이족 영역과 주나라 영역을 통합하여 약 400년 지속하였으며, 중국의 역사상 가장 강대했던 나라이다. 서울을 동이족의 장안과 중화족의 안양을 오가며 중화족과 동이족이 혼합하여 오늘날에 중국의 인구의 약 92%를 차지하는 한족(漢族)을 이루었다. 기원전 111년에는 백제 동이족인 베트남을 정복하였다. 고조선과 한나라 사이에 벌어진 전쟁(2,109 년 전)에서 한나라가 승리해서 고조선은 종말을 맞는다.
진시황제의 통일제국에 밀려난 몽골초원의 훈족은 한나라 때 비단길을 열어 지중해 지역을 정복하며 유럽의 민족 대이동을 초래한다. 435년에 이들은 서로마 이태리 반도를 정복하여 서로마를 멸망시켰다. 아틸라는 훈족의 단독 통치자로 동로마를 4년 동안 다스리게 되었다. 아틸라의 아들과 함께 동아시아 문화를 전해주어 로마제국의 기틀을 만들었다.
탁발선비(拓跋鲜卑: 304~439)는 부여 선비의 한 지파이다. 돌궐어로는 탑가치(고대 튀르크어: Tabgač)라고 한다. 당나라의 공격으로 지금의 서아시아 터키국으로 이주해갔다. 남북조시대 (386~589)에 백제의 동성왕이 중국의 동이지역 영토를 다스렸다. 수(隋, 581 ~ 619)나라는 2천600여 만 명의 인구로 경항 대운하를 건설하였다. 수양제는 125만 대군을 거느리고 고구려 침략을 시도 했지만 을지문덕 장군의 계략에 무너져서 수나라는 멸망하고 만다.
부여 이씨 왕족의 당나라는 진시황제의 서울 장안(618 ~ 904)에서 흉노의 비단길로 로마와 교역하며 세계의 문화와 정치적 중심을 이루었다. 당 태종 이세민은 645년에 고구려를 침공하였다. 안시성에서 발이 묶여 몇 개월 후에 퇴각하였다. 고구려와 백제의 침입을 받은 신라는 위기를 느끼고 김춘추(金春秋)를 고구려에 보내 화친을 요청하지만 연개소문은 이를 거절하였다. 이에 신라는 당나라로 사신을 보내 고구려를 견제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중재에 나선 당나라는 고구려를 협박하였다. 연개소문은 거절하였다.
648년(진덕대왕 2년), 신라와 당나라는 연합군을 결성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정복한 후에 대동강을 양국의 경계로 할 군사동맹을 맺었다. 660년에 백제가 패망하고 668년 고구려가 멸망하였다. 신라와 당나라는 전쟁에 돌입하게 되었다. 고구려 땅을 얻은 당나라는 서울을 낙양 (904 ~ 907)으로 옮기며 국력은 쇠약해졌다. 통일신라(676-935)는 신라인의 왕래가 빈번한 산둥반도와 장쑤성에 신라방(新羅坊)을 만들고, 장보고가 세운 법화원(法花院)처럼 중국의 동이지역은 중국 안에 항상 유지되었다.
진시황제를 비롯하여 한, 당, 원, 청, 등의 제국은 동이족의 국가들이다. 주, 송, 명, 등의 나라들을 중화족 국가로 보아도 동이족이 다스린 중국 역사가 훨씬 크고 길다. 이집트, 그리스, 로마를 보아도 동아시아에 뿌리를 두었다. 이제는 중국 역사와 세계역사를 다시 보는 계기가 왔다.
[최용완]
건축가·시인·수필가
서울공대 건축과 졸업
미네소타 주립대 대학원 졸업
오하이오주 건축회사 대표
미주문협 신인상 수상
자유문학 신인상 수상
에세이포레 신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