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간세설] 우주 삼라만상 아니 나 자신과 대화하는 것이어라

이태상

 



요즘 전 세계 온 인류 거의 모든 사람이 실업자로 전락했거나 재택근무 또는 자가격리로 독방 감옥신세가 된 처지에 우리 모두 깊이 되새겨 음미해볼 만한 말 한두 마디 인용해보리라.

 

혼자 있을 때 외롭다면 너는 벗을 잘못 사귄 거다.

(If you’re lonely when you’re alone, you’re in bad company.)”

-프랑스의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 (Jean-Paul Sartre 1905-1980

 

혼자이거든 게으름 피우지 마라.

(If you are solitary, be not idle.)”

-영국 작가 새뮤엘 존슨(Samuel Johnson 1709-1784)

 

사랑은 아프다(Love hurts)’라고 한다. 누구든 뭣이든 사랑해 본 사람은 다 동의하리라. ‘아름다움은 슬픔이다(Beauty is sorrow)’란 말과 같은 뜻이리라. 더 좀 사랑할 수 없기에 가슴 아프고, 사라질 수밖에 없기에 너무도 슬프지 않을 수 없다.

 

몇 년 전 한국에서 징비록이 시청자들의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징계할 징(),’ ‘삼갈 비(),’ ‘기록할 록()’은 시경(詩經) 소비편(小毖篇)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 (豫基懲而毖役患)’는 구절에서 따온 책 이름이다. 이 책은 1592(선조25)에서 1598년까지 7년에 걸쳤던 임진왜란의 원인과 전황을 도체찰사 겸 임진 지휘자였던 서애(西厓) 유성룡이 전쟁의 수난사를 생생하게 기록한 사료다. 그는 난() 후 파직된 뒤 국난 극복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자기반성의 지침서로 이 글을 집필했다고 한다.

 

사초(史草)란 역사 편찬을 위해 기록해 놓은 자료들로 왕과 신하들의 선악을 낱낱이 기록하고 시비를 적은 것이기 때문에 필화(筆禍)의 위험이 따랐으리라.

 

2015년 중국 전한시대 역사가이자 사기(史記)’의 저자인 사마천(司馬遷)의 눈으로 본 우리 한국 사회를 그린 사마천 한국견문록을 펴낸 이석연 전() 법제처장은 722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사마천에 주목한 이유로 사마천은 바른말을 한 죄로 궁형(宮刑)에 처해지는 기구한 자신의 처지에 빗대어서 올바른 사람이 승리하고 대접받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하면서도 노력하며 좌절하지 않은 사회적 약자, 민중들을 역사의 전면에 내세운 최초의 학자라고 평가하고 사기는 3,000년 간 중국 역사를 다뤘지만 인간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며 사기의 예가 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여러 문제점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했다.

 

불교에서 인생은 고해(苦海)’라고 한다. 세상살이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이 고해의 파도를 타는 사람이다. 하지만 비유가 아니고 문자 그대로 1970년대부터 평생토록 파도 타는 삶을 살아온 사람이 2015년 펴낸 책 미개한 야만적인 나날들: 파도 타는 삶(Barbarian Days: A Surfing Life)’이 있다. 이 퓰리처상 (Pulitzer Prize) 수상의 개인적인 메뫄(memoir) 실록(實錄)의 저자 윌리엄 피네간(William Finnegan, 1952 - )은 그의 가족이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살 때 어린 시절부터 파도타기 서핑(surfing)을 시작했고, 타기 신나는 큰 파도를 찾아 오스트레일리아, 아시아, 아프리카, 남태평양 등 세계 각지로 파도 타러 다녔다. 그에게는 평생에 걸친 휴가가 아닌 순례 여정이었다.

 

닥치는 대로 아무 일이나 해가면서 숙식을 해결하고, 여가엔 어느 한 고물상에서 권당 1(cent)씩 주고 구입한 수백 권의 지성 교양 잡지 뉴요커(The New Yorker)’를 탐독하면서 여행을 계속했다. 이 잡지 뉴요커에 실린 글들을 읽으면서 다 잘 쓴 글들이지만 많은 글들이 글을 위한 글,’ 다시 말해 글 장난 같이 느껴졌다며, 필자가 직접 체험하고 경험한 삶에서 우러난 것들이 아니고 수박 겉핥기식으로 그냥 아는체하는 것들이었다고 한다.

 

그 자신도 청소년 시절부터 글을 쓰고 싶었지만 이런 아는체하는 글을 쓴 사람들이 그의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어 출간된 그의 책 주인공은 세계 각지에서 그가 직접 타본 파도들(waves)’ 이고 이 파도들을 그가 수백 개의 다른 앵글 각도의 시각으로 본대로, 온몸으로 부닥쳐 본대로 정확히 기록했을 뿐이란다. 그러자니 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으나 그 짜릿짜릿한 스릴과 쾌감은 무엇하고도 비할 데가 없단다. 현재 68세인 그는 뉴요커 필진의 일원이면서 아직도 세계 각지로 서핑 다닌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미개하다는 어떤 야만인들은 개명했다는 자본주의자들보다 훨씬 더 인정(人情)이 많고 나눌 줄 안다, 단언컨대. (Some barbarians are excellent at sharing better than capitalists, certainly.)”

 

이와는 달리 바다가 아닌 육지에서 서핑보드(surfing board) 대신 두 발로 파도가 아닌 바람을 타는 사람이 있다. 2015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부터 뉴욕까지 5200km의 나 홀로 대륙횡단 마라톤 일기를 당시 미주판 중앙일보에 연재해온 강명구(당시 58) 씨는 723일자 23회를 끝으로 연재를 마치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순간순간 밀려오는 외로움과 후회를 물리치면서 달리며 때론 육신의 영역을 넘어, 정신의 영역을 넘어, ()의 영역 언저리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다. 가는 곳마다 풍광이 다르고 사람 사는 인심이 다르고 대지에 흐르는 기()가 다른 3,150마일 길을 달리면서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졌고 사색하고 자신을 위로하는 시간도 충분한 시간을 가졌다. 지금까지 달려온 길은 최고의 속력으로 다른 사람들을 앞질러가야만 생존이 가능한 선착순의 길, 오로지 일등만이 모든 것을 차지하는 승자독식(勝者獨食)의 길이 아니다. 천천히 달리면서 주위의 많은 것들을 마음에 담는 수확의 길이었고, 나 자신을 위로하고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를 위로하는 길이었다. 그 길에는 편협한 이데올로기나 종교는 결코 없었다. 평화롭고 풍요로운 환경에서 끝없이 세상을 달리고픈 꿈이 피어났고 환경에 대한 뚜렷한 인식이 새겨졌다.

 

나 자신을 위해 처음으로 온전히 바쳐진 4개월의 고귀한 시간이었다. 새로운 자신과 떨리는 맞선자리였다. 나와 교제를 하면서 나는 결코 나약하지도 않고, 상상도 하지 못한 폭발적인 에너지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 육체적으로 완벽하게 통제력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이모작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탯줄이 필요했다. 하늘과 대지에 연결하는 탯줄을 스스로의 배꼽에 연결하여 모든 낡은 에너지를 방전시킨 자리를 채우고 싶었다. 그래서 꿈꾸고 상상하고 한 발짝 한 발짝 묵묵히 내디디면서 실행에 옮겼고 이제 드디어 대장정의 끝자락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대기의 냄새도 뭔가 친숙하다. 비록 몸은 난파선에서 구조된 사람처럼 야위었지만 강인한 생명의 의지로 충만하게 되었다.”

 

다음은 지난 2018121일 연합뉴스 최재훈 기자가 파주에서 보도한 기사다.

 

1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는 평화통일을 기원하며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한 평화 마라토너 강명구(62) 씨 환영행사가 있었다. 강 씨는 지난해 91일부터 남북평화통일을 염원하며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출발해 중앙아시아와 중국 등 16개국을 12개월 동안 매일 40km씩 달렸다. 당초 북한을 통과해 귀국하려 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1115일 강원도 동해항으로 입국한 강씨는 DMZ를 따라 달려 이날 목적지인 임진각에 도착했다. 강 씨는 행사에서 여러분과 함께 신의주를 넘어가서 다시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달리기를 하며 평양시민들과 손을 마주 잡고 달릴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를 염원한다고 말했다.

 

강명구 씨에게 큰 박수를 보내면서, 파도를 타든 바람을 타든 구름을 타든 또는 무지개를 타든 우리 모두는 각자 대로 각자의 순례 여정에서 우주 삼라만상(森羅萬象), 아니 대우주(大宇宙)의 축소본(縮小本)인 소우주(小宇宙) 나 자신과 영원(永遠)의 축소본인 순간(瞬間)순간 대화(對話)하는 것이어라.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4.23 11:21 수정 2020.04.23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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