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재의 연당일기] 코로나로 인한 텃밭 가꾸기

위선재


위선재

 

곱고 맑은 초여름 날이다. 이번 주부터 우리 가게도 정상 영업을 시작한다. 출근하기 전 밭에 나가서 토마토들을 솎아 주었다. 토마토들이 자라나면서 자리가 비좁아져서 한 줄에 두 개씩만 남겨 두고 솎아 낸 것들은 한쪽 공터에 구덩이들을 파고 옮겨 주었다.


처음부터 띄엄띄엄 심었더라면 나중에 옮겨 주어야 하는 수고를 덜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냉동실의 얼음판 크기의 묘판 위의 담겨 있던 모종이었을 때에는 손가락만큼 가늘어서 한 줄에 서너 개씩을 심어도 여유 있어 보였던 것이다.


지난 삼월 하순의 어느 날, 뉴욕 주정부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고 식료품과 약국 등의 에션샬 업종을 뺀 모든 상점과 비즈니스와 학교와 사무실들의 문을 닫으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처음엔 두세 주로 예상했고 많아야 한달 일 것이라고 예상했던 뉴욕의 셧다운은 뉴욕시와 웨체스타에서 확진자들과 사망자들이 엄청나게 생겨나고 사체들을 처리할 길이 없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악화하였다.

 

코로나로 사망한 무연고자들을 임시로 묻기 위한 장소로 브롱스의 시티 아일랜 등에서 가까운 한 무인도가 선정되었을 때에는 그 섬은 죽음의 섬으로 불리게 되었다. 전엔 있는지조차 몰랐던 뉴욕 주지사, 앤듀류 코모가 제코비 센터에서 매일 저녁 생방송으로 진행하던 브리핑은 모든 뉴욕 시민이 챙겨보는 방송이 되게 되었다.

 

전 세계의 여행자들과 이민자들이 모여들고 인종의 전시회장이라고 불릴 만큼 여러 민족들이 모여 살던 뉴욕의 관문인 JFK 공항은 셧다운 되었고 국내선이 주로 뜨고 내리는 라고디아 공항이 뒤따라서 멈춰서다시피 하게 되었다.

 

일이 이렇게 되어가면서 뉴욕주의 셧다운은 언제 끝날 것인지 분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알 수 없는 일이 되어 갔다.

 

나나 남편이나 그처럼 오랫동안 집에만 있어 본 적이 없었다. 처음 한두 주는 갑갑하기는 해도 집에서 잘 쉰다는 심정일 수가 있었다. 사실은 우리 동네에서도 확진자가 생겼단 말도 있고 우리가 한 다리나, 두 다리 건너 알고 있던 한인들 중에도 사망자가 있다는 소식이 들려와서 집 밖을 나가기도 꺼려지고 전염병이 창궐한 듯한 위기감과 공포감조차 느끼곤 했었다.

 

이렇게 갑자기 집안에 갇혀 시간을 보내게 되고, 무엇을 하면 하루를 보내야 할지 모르게 되자 처음 시작 한 일은 집안의 대청소였다. 사회적 거리의 두기로 집에 와서 청소를 도와주시는 분이 오지 못하게 된 것을 계기로 내 손으로 직접 청소를 하게 되면서 평소에는 손대지 않던 옷장들과 서랍까지 모두 뒤집어엎고 다시 정돈했다. 덕분에 오랫동안 잊고 잇던 옛날 사진들을 찾기도 했다.

 

몇 주가 더 지나면서 바깥 기온도 점점 더 올라가고 나무들은 모두 깨어나 초롱초롱한 이파리들을 달고, 햇살도 점점 더 따사해지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집에서 격리생활을 더 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이번엔 아침마다 텃밭으로 나가 미친 듯이 땅을 파기 시작했다.

 

옆집이 이사 가면서 주고 간 삽이 있었던 것도 그때야 기억해냈고 그것으로 묘목을 심을 구덩이를 몇 개나 팠다. 그렇게 몇 년 동안이나 묵혀 두었던 땅을 다 골라 놨는데도 묘목상과 홈디포는 아직도 문을 닫고 있어서 묘목과 야채 모종을 구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가 사월 말이 되어서 묘목상들이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때 심었던 토마토들이 이제 내 무릎 높이로 자라났다. 풋고추는 아직 작지만 자세히 보면 꽃망울들이 달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오이 모종들은 떡잎 위로 본잎을 서너 개씩 달고 있다.

유기농 야채들을 직접 길러 먹으려는 그런 야망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야채밭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맘이 편했었다. 그나마 뭔가 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는 듯 했다. 누군가 지난 두 달 반 동안의 사회적 거리두기 중 가장 좋았던 일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야채밭을 가꾸던 일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길을 지나는 이웃들도 흙범벅이 되어 야채밭에서 일하는 나에게 부러운 눈빛을 보내곤 했다. 잘 관찰해보면 인생의 코너 코너에서는 뜻밖의 즐거움과 새로운 세계가 발견되기도 하는 것 같다.




[위선재]

뉴욕주 웨체스터 거주

위선재 parkchester2h@gmail.com



전명희 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6.10 12:37 수정 2020.09.1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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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