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누구나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세상에 실망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내 생각만큼 빨리 올라주지 않는 성적, 다들 내 마음처럼 진심 같지만은 않은 미운 사람들, 누군가에게 순수한 마음으로 다가갔기에 그 역시 같은 마음이길 원했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하는 순간들…… 그 많은 시간들은 가끔 아픈 상처가 되어 우리의 마음을 후벼 파지만 그러한 상흔들을 딛고 스스로를 치료해 나가면서 보다 더 성숙한 존재가 되어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이 세상 속을 살아가는 존재가 바로 사람들이고 우리들이 아닌가 한다.
그렇게 ‘힐링’이 필요하고 지친 ‘나’를 토닥여주고자 할 때 사람들은 흔히 여행을 떠나곤 한다. 요새는 해외여행이 많이 보편화되어 산 넘고 바다 넘어 머나먼 나라로 훌쩍 떠나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든 그렇지 않든 간에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멋진 여행지들은 충분히 많다. 설탕같이 하얀 백사장과 에메랄드빛 푸른 바다, 그 주위를 돌아다니는 까마귀의 향연! 생각만으로도 슬퍼질 정도로 낭만적인 그 광경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물론 세계 유일의 휴전국이라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했을 때 국가 안보상으로 절대 빼놓을 수 없기에 꼭 한번은 가보아야 하는 곳이라는 특이점까지 갖춘 섬이 있다면 어떨까? 바로 그 곳. 백령도를 무척이나 날씨가 좋던 5월의 푸르른 봄날에 2박 3일간 다녀왔다.
2. 백령도 이야기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 북포리. 이곳이 바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백령도의 공식 주소이다. 백령도는 인천에서도 배를 타고 3시간을 넘게 들어가야 하는 곳이다. 사실 나는 개인 자격으로 간 것은 아니었고, 감사하게도 학교에서 남북분단 현장체험 성격으로 견학을 가게 되어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 매우 이른 시간인 아침 6시까지 학교로 집결해야 했기 때문에 혹시라도 늦잠을 자서 못 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무리 잠이 와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다행히 학교로 예정된 시간까지 도착할 수 있었고, 미리 기다리고 있던 단체버스를 타고 우리가 탈 배가 있는 인천으로 향했다.
인천 부두와 여객터미널에서 가장 먼저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그곳에 가득한 해병대였다. 사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바다와는 거리가 있는 내륙지역에서만 쭉 자라왔던 사람이고 해군이나 해병을 접할 기회는 별로 없었다. 그런데 바다내음이 가득한 인천과 백령도행 배를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군인들을 보니 내가 지금 백령도를 가기 위한 배표를 갖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냥 예사 섬이 아닌 군사적 목적이 있는 섬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하긴, 나는 그냥 놀러가는 것만은 아니지. 분명히 남북 분단 현장체험으로 그곳에 가게 된 것이다.
인천에서 가까이 살면서도 그전에 인천에 와본 기억도 없거니와 인천 앞바다를 자세히 볼 일도 없었는데 백령도로 가는 배에서 창밖 바다를 바라보니 바다 풍경이 참 멋있고 드넓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백령도는 일반인들에게 북한과 가장 가까운 지역, 정치인들이 선거 때마다 찾는 곳, 인천에서 한참 떨어진 섬 정도로만 알려져 있지만 그렇게 딱딱한 지역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인천과 백령도 사이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효녀 ‘심청’이의 애절한 사연을 품고 있는 인당수가 흐르고 있다. 솔직히 뭘 모르고 철없던 꼬마 시절에는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강조하시면 혹시라도 시험에 나올까 싶어 ‘인당수’ 라는 낯선 이름을 외우기에만 급급했던 기억이 있는데 말로만 듣던 그곳을 직접 눈으로 보니 정말 느낌이 달랐다. 일단 배가 인당수 근처에 접하는 순간부터 물살이 빨라지는 것이 피부로 다가왔고, 만일 내가 아직 20세도 되지 않은 가녀린 소녀였다면 과연 부모님에 대한 효심으로 이 망망대해에 몸을 던질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심청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들었다. 그러한 심청의 아름답고 갸륵한 마음, 그리고 그것을 기리고자 하는 후세 사람들의 경외심을 품고 있는 곳이 바로 이곳 인당수이자 백령도 앞바다인 것이다.
백령도에는 심청의 전설을 품은 장소답게 ‘심청각’ 이라는 심청과 심봉사를 기리는 테마파크가 있다. 우리 역시 일정에 그곳이 포함되어 있어 백령도에 들르자마자 백령도의 명물이라는 사곶냉면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바로 그곳으로 향했다. 심청각에 오르면 평화롭고 아름다운 백령도 시골 마을은 물론, 심청의 깨끗하고 순수한 영혼을 품은 앞바다 그리고 저멀리 인당수와 황해도 땅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백령도는 인천에서도 배를 타고 3시간이 넘게 걸린다. 한참을 들어와야 되는 곳이다. 아직 인간의 손이 미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바다가 바로 가까이에 있는 곳이다.
그래서 바다가 깨끗하고 맑다는 것이 한눈에 바로 느껴진다. 사실 나는 그전까지 에메랄드 같다든지 마치 호수 같다는 표현을 문자로 접할 때마다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데 백령도를 다녀와 보고는 그 말의 뜻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만큼 예쁜 바다이다. 또한 파도가 적고 간격이 좁다. 게다가 조금만 손 내밀면 금세 잡힐 것만 같은 북한 땅…. 지금은 동족상잔의 아픔을 뒤로 하고 휴전 중이라는 상황 때문에 서로에게 총 끝을 겨누고 있지만, 아마도 저곳에서 이제는 나이 들어버린 이북의 누군가는 백령도에 있을 젊은 시절의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천에서 백령도까지의 거리와 백령도에서 중국까지의 거리가 얼추 비슷하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백령도에서 저기 보이는 북녘 땅까지도 금방일 것이다. 여쭤보니 대충 여기서 중국까지가 140km 정도고 북한은 달랑 16km 정도란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너무나도 가까워 놀랐다. 배로 10분이면 간단다. 예전에는 백령도에 뗏목소도 있어서 개성은 물론 평양까지도 닿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멀리서 눈으로만 봐야 하는 멀고도 가까운 땅, 북한. 세월이 지나고 시간이 흐르면서 교통수단은 발달하여 머나먼 유럽이나 아프리카도 금방 다녀올 수 있는데 그 가까운 곳을 이렇게 멀리서만 바라봐야 하다니…… 그리고 그곳을 그래도 남한에선 가장 가깝다는 이름으로 보여주는 섬, 백령도. 언젠가는 빠른 시일 내에 우리 후손들에게는 직접 손잡고 방문해서 보여줄 수 있게 되기를 몇 번이나 빌고 또 빌었다.
심청각에는 볼거리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당시 돈으로 8만 5천 원짜리였다는 미국 탱크와 대포이다. 그때 가치로 그 정도라면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을 텐데, 평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안전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느끼며 살아가지만 전쟁의 위협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해야 할 일인지 깨닫지 않을 수 없다.
백령도를 돌다 보면 곳곳에 빨갛게 핀 해당화가 보인다. 어촌 마을이니 당연한 것이지만 군데군데 얼굴을 내밀고 있는 그 꽃은 내가 섬마을에 와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게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백령도 주민들의 주된 산업은 어업이 아니라 농업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곳곳에 논밭이 무척이나 많다. 백령도는 정말 알면 알수록 놀랍고도 신기한 곳이다. 눈에, 마음에 몇 번이나 담고 싶은 경관은 둘째치고라도 알고 싶고 또 알아가고 싶은 것이 너무나도 많은 섬이다.
백령도를 보면서 놀랐던 것은 군사지역이라는 설명이 무색할 정도로 주변 경관이 빼어나다는 점이다. 나는 백령도에 있었던 2박 3일 동안 몇 번이나 바다 모습을 카메라로 찍고 또 찍었다. 백령도는 북한과 가깝다 보니 두무진 해안을 관광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고 우리 일행도 그곳에 다녀왔다. 두무진으로 가는 길에는 군부대지역임을 선언하는 말뚝이 박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박정희 대통령 시절 이곳이 군사지역임을 선포하기 위해 박아둔 것이라고 한다. 사실 백령도에서는 군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군지역임이 실감난다. 어쨌든 두무진에는 수많은 바위들이 있는데 유람선 안에서 밖의 광경을 구경하다 보면 인간의 손이 전혀 닿지 않은 자연의 힘이 얼마나 위대하며 또 어찌나 훌륭한 조각가인지 깨닫지 않을 수 없다.
바람에 실려 와서 코를 가볍게 간지럽히는 바다 비린내는 뭔가 신선하고 깨끗한 느낌을 더해 준다. 아름다운 두무진과 해금강, 잔잔하고 거울같이 맑기만 하던 바다. 오천 년의 우리 민족 역사와 1950년대 전쟁의 아픔, 그리고 한반도가 둘로 갈라진 후로 60년이 넘는 세월 내내 남북한의 모습은 서로 너무나 달라졌고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그곳의 바다는 그대로였다. 그동안 이 바다에서도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인가. 그러나 위대한 자연은, 이 드넓은 바다는 모든 것을 보아 알고 있겠지만 그저 아무 말도 없다. 그냥 자신들을 보러 온 사람들 앞에서 마치 유리마냥 조용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 바다 위를 유유히 헤엄치는 물범만이 유람선 안의 관광객들을 희롱할 뿐이었다.
우리는 백령도에 있는 해병대 6여단 본부를 방문하고 그곳에서 브리핑을 들었다. 백령도를 방문한 사람이라면, 아니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병대의 영상은 꼭 한번쯤은 보고 해병대의 노고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늠름한 그들의 모습과 설명을 들으면서 군기가 바짝 든 그들을 보며 내가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는 것에 너무나도 감사했고 고생해가면서 국민들을 안전하게 지켜 주는 그분들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들이 있기에 국가가 수호되었고 국권이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꼭 기억해야 한다.
또한 북한에 비해 남한이 매우 불리한 상황에서 국방을 해나가고 있음을 알게 되어 군인들의 노고를 몇 번이나 치하하고 싶었고, 간단한 질문에도 보안상 알려줄 수 없다고 하는 답변에는 마음이 든든해져 내가 이분들과 같은 땅에 살고 있음이 너무나도 기뻤다. 한편으로는 어린 시절 국군의 날이 다가오면 학교에서 주최하는 나라를 지키는 국군 아저씨들께 감사 편지를 쓰는 백일장에 여러 번 참가했던 기억도 나는데, 이제는 군인들의 다수는 나보다도 훨씬 어린 동생들이고 심하면 조카뻘일 거라는 생각을 하고 나니 새삼스레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백령도에 왔다면 꼭 들러봐야 할 곳 중의 하나는 바로 사곶해변이다. 사곶해변은 세계에서도 둘밖에 없는 천연비행장인데, 하나는 이탈리아 남부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가 바로 대한민국 백령도에 있는 이곳 사곶해변인 것이다. 이곳은 천연기념물 제 391호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기도 한데, 자연적으로 활주로가 생겼다니 정말 신기했다. 또한 콩돌 해변에도 들렀는데 이제까지 30년 넘는 시간들을 살아오면 나름대로 이곳저곳 좋다는 곳을 많이 다녀보았다고 자부하지만 그곳의 그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돌들의 예쁜 모양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밖으로 돌을 가져가지 말라고 경고한다고 하고 우리 일행도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도 몰래 가져가는 사람들이 꾸준히 있다니 관광객으로서, 아니 인간으로서, 방문자로서의 예의가 참 아쉽다.
3. 돌아오며
백령도를 떠나 다시 인천으로 돌아오는 내 마음은 무척이나 복잡했다. 백령도에서 가장 놀랐던 것 중의 하나는 군부대에서였다. 사진 촬영이 제한될 수 있다는 경고와 양해를 미리 구한다. 묻진 않았지만 아마도 보안사항 때문에 그럴 것이다. 또한 휴대폰 소지가 금지되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보안이 철두철미하게 요구되는, 아니 그래야 하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아니 솔직히 나만 해도 백령도에 대해 잘 몰랐고 가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사실 학생 신분으로서 감사하게 다녀올 기회가 생겼기에 갈 수 있었지 평소의 나라면 시간을 내서 다녀올 수 있었을지 확신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백령도에 꼭 한번 가보라고 추천하고 다니는 이유는 두 가지다. 일단 그곳의 풍경이 위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너무나도 아름답고 꼭 한번은 가볼 만하다는 확신이 든다. 또 하나는 분단국이라는 우리나라의 현 상황이다. 평소에는 드라마를 보고 학점 걱정, 취업 걱정 때문에 전쟁이 언제라도 날 수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하지는 못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렇게 속 편한 생각을 할 때 누군가는 그런 나 같은 불특정다수를 보다 더 안전한 상황에서 숨 쉬게 하고 생활하게 하기 위해 안보와 국방에 신경 쓴다. 그런 분들이 많은 섬이 바로 백령도이다. 어디 그뿐인가. 심청각, 콩돌해변, 사곶해변 등 많은 명소들이 있고 어딜 가더라도 평화로운 풍경과 바다 내음이 저절로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사곶냉면, 메밀전병 등 맛있는 음식은 저절로 따라온다.
수많은 아름다운 곳들, 관광 명소로 추천받는 멋있는 곳들이 있지만 백령도야말로 꼭 가봐야 할 곳이라고 생각하며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방문해보고 그곳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