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연강의 인문으로 바라보는 세상] 여름과 가을

신연강



오랜만에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 섰다. 한여름이 이별을 고하고 가을이 그 자리를 이어받을 즈음, 여름이 남은 힘을 마저 쏟듯 오후의 햇살이 강렬하기만 하다. 부채를 손에 들고 내가 기다리는 것은, 또 나를 기다리는 것은 무엇인가. 바람이 분다. 나뭇잎이 출렁이고, 지역축제를 알리던 자리엔 코로나를 경계하는 현수막이 나부낀다. 이름 모를 것들이 바람을 맞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67번은 언제 올까. 버스는 먼 외곽에서 시작하여 시내를 통과하면서 목적지에 나를 내려놓고, 이후 남은 다해 차고지에 가면 그때야 긴 호흡을 가다듬을 것이다. 얼마간의 달콤한 휴식을 취할 것이다. “기다리자” “기다리자”. 차분하고 끈기 있게 기다리자. 기다리면 보일 것이다. 걸으면 보일 것이다. 빠름이 미덕인 시대라지만 좀 더 느려지자. 그럼으로써 보고 느끼고 생각하자.

 

자전거도 타보자. ‘자전거를 타면 행복이 온다고 했던 이반 일리히Ivan Illich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볼 것이다. 먼지 쌓인 자전거를 꺼내 프레임의 먼지를 닦아내고, 기름칠을 하곤 안장에 올라본다. 삼십 년 이상 자전거 수리를 해 온 자전거 장인의 점포에 가서 기어도 조율해본다. 울퉁불퉁한 인도 위를 지나며 순간순간 입에 가시 돋친 말이 올라오지만 그냥 넘기기로 한다.

 

인간은 원래 직립 보행함으로써 세상을 정복하고 문명을 구축하게 되었으니, 걷는 것은 건강에 좋고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 아니겠는가. 걸으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큰 위안이며 행복인가. ‘버스를 타고 내릴 힘만 있어도 아직 행복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노인들이 버스를 탈 기력이 없음을 생각하면, 시간의 흐름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두 발로 거동한다는 것은 정말로 고맙고 행복한 일임에 틀림없다.

 

가을은 서늘하지 않아도 좋다. 조금만 더 알곡이 여물도록 강렬한 햇볕을 허락하고, 나무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이따금 바람을 불어주고, 보고픈 사람이 생각날 수 있도록 간간이 마음에 그리움을 실어주면 좋겠다. 가는 여름과 오는 가을이 정답게 손잡고 아름다운 회동과 이별을 했으면 좋겠다. 사람 사는 세상의 아름답고 애틋하고, 그리운 이야기를 써가도록.

 

 

 


[신연강]

인문학 작가

문학박사















전명희 기자

전명희 기자
작성 2020.09.11 13:07 수정 2020.09.11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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