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트로트 가수 김수희가 불러 히트한 노래다. 이 가사를 노벨상을 비롯한 모든 상에 적용해보자.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트럼프 대통령이 거론되고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선정하지 않기로 했다는 비보(?)에 수많은 작가와 출판사들이 비명을 질렀다는데 도대체 '상'이란 게 뭐기에 이렇게 야단법석일까.
어떤 '선물'이나 '상'은 받을 때보다 줄 때가 더 즐겁고 흐뭇하며 행복하지 않던가. 그래서 선물이나 상은 언제나 남에게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기 자신에게 주는 것이다.
애인이든 배우자든 자식이든 손자손녀든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해 본 사람이면 다 느끼는 일이다. 궂은일은 차라리 내가 겪고 좋은 일만 네가 누리기를 빌면서 아무리 주고 또 줘도 부족해 더 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우리가 어느 누구의 추천으로 상을 받아 남의 인정과 평가를 받아야만 자신의 존재이유와 존재가치가 비로소 생기는 게 결코 아니다.
'예술 작품'이란 것도 굳이 말하자면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라도 자연과 삶의 '모조품'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실물'보다 그 '그림자'를 더 애지중지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있는지도 없는지도, 설혹 있다 해도, 어떤 분인지, 남성인지 여성인지, 중성인지 무성인지 모를 '신(神)'이란 존재에 대해 누구도 절대적으로 알 수가 없는데 감히 주제넘게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있으랴.
자신을 포함해 우주만물을 제대로 순간순간 사랑하고 섬기지도 못하면서 '허깨비' 같은 독선 독단적인 존재를 모시고 경배한다는 게 말이 될 법이나 한 일인가.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온갖 '허깨비 굿타령'을 졸업하고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의 '인생 학업'에 매진하는 일이 이 우주에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재미작가 이태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