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산정천리] 당신의 가을을 찾아 최북단 고대산으로

여계봉 선임기자

 

가을은 어쩔 수 없이 행복한 계절이다. 가을빛이 내려앉은 10월에는 언제 어디로 떠나든 당신은 가을남자, 가을여자가 된다.

 

가을 길목으로 성큼 들어선 10월 초, 도심을 벗어나 자유로를 달리자 가을은 싱그러운 설레임 되어 다가온다. 맑고 푸른 하늘 아래 따스한 햇볕을 가득 담은 행주 들녘은 황금빛으로 물들어가고, 바람에 일렁이는 임진강 은빛물결의 율동에 맞추어 철책 안 갈대숲에서는 가을이 춤춘다. 당동IC를 벗어나 지난 6월 파주에서 가평까지 동서로 연결하여 새로 개통한 37번 국도에 들어서서 연천을 향해 달린다. 임진강 대신 한탄강 강바람이 야생화 향을 담아 시나브로 코끝을 건드린다. 가을이 내려앉은 연천의 산하는 올 여름 장마와 홍수가 남긴 생채기를 가을 옷 속에 감추고 있다. 경원선 전철화 공사로 내년까지 기차가 운행하지 않는 대광리역과 신탄리역을 지나서 이윽고 고대산 자연휴양림 주차장에 도착한다.


고대산 정상에서 바라본 북녘땅. 등산이 허용된 산 중 민통선에서 제일 가까운 산이다.


경기도 연천과 강원도 철원의 경계에 솟아 있는 고대산은 파주-가평을 잇는 37번 도로와 구리-포천을 잇는 고속도로의 잇단 개통으로 수도권에서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기존에 운행하던 경원선은 전철화 공사로 임시 중단된 상태지만, 도봉산역 광역환승센터와 신탄리역을 오가는 대체운송버스(G2001)가 운행을 시작해 대중교통으로도 찾기가 수월해졌다.

 

고대산 오름길은 3개가 있다. 1코스는 큰골과 문바위를 거쳐 정상으로 이어지며, 2코스는 말등바위와 칼바위를 따라 정상으로 향한다. 3코스는 표범폭포를 지나 정상으로 연결된다. 3개 코스 모두 군데군데 이정표와 나무데크, 철제계단, 로프 등이 설치돼 있어 길 찾기도 어렵지 않고 위험한 곳도 적다. 오늘 산행은 휴양림 옆으로 난 2코스를 따라 정상에 오른 후 3코스로 하산하기로 하는데, 6km3시간 정도 걸린다.

 

산 들머리 고대산자연휴양림. 접경지역 특유의 원시적인 자연환경을 즐길 수 있다.


휴양림에서 2코스 입구까지 따갑게 내리쬐던 심술궂은 초가을 햇살도 무성한 숲 속에 들어서니 그저 힘을 잃는다. 빽빽한 신갈나무숲 사이로 시원하게 불어오는 산바람이 싱그럽다. 비교적 완만하던 숲길은 이내 급한 나무계단로 이어지면서 초반부터 만만찮은 산행이 시작된다. 거친 호흡이 제 자리를 잡을 즈음에 말의 등걸을 닮았다는 말등바위가 나타난다. 노송과 어우러진 말등바위 위에 올라타서 잠시 발아래 풍경을 감상한다. 말등바위부터 능선이 있는 대광봉까지는 빠듯한 오르막을 계속 올라야 한다. 약 한 시간 정도 묵언의 산 오름을 계속하면 나무데크로 된 칼바위전망대가 나온다. 위로는 산등성이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고대산 정상과 정상의 봉우리를 있는 능선이 모습을 드러내고, 아래로는 드넓은 철원평야가 펼쳐진다. 신탄리 뒤쪽으로 휴전선이 보이고 그 너머로 개성 송악산까지 아스라이 보인다.


 

칼바위전망대 뒤로 정상인 고대봉과 정상 부근 능선이 보인다.

전망대의 안내판에 고대산(高臺山)은 큰고래(방고래)에서 유래되었다고 적혀있다. 방고래란 온돌 구들장 밑으로 불길과 연기가 통하는 고랑을 일컫는 말로, 고대산의 골이 이만큼 깊고 높다는 뜻이다. 또한 일부 옛 지도에는 높은 별자리와 같다는 의미가 담긴 고태(高台)’라고도 표기했다고 한다.


칼바위전망대에서 바라본 북녘땅. 왼쪽의 백악이 김일성고지가 있는 고암산이다.

 

전망대를 지나면서 암릉이 많아지고 오르막은 계속된다. 신갈나무 대신 소나무로 바뀐 등로 주위의 나무들이 한껏 고개를 숙여준 덕분으로 정상의 능선에 오를 때 까지 사위가 터진 멋진 풍경들이 연출된다.


칼바위. 2코스에서 가장 아찔하면서도 환상적인 경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발아래로 산 들머리인 신탄리와 원시림에 덮인 휴양림이 보인다.


드디어 산정 능선에 올라선다. 첫 번째로 만난 대광봉(810m)에는 고대정현판을 단 정자가 서있다. 정자에 올라서 잠시 숨을 돌리며 정상부를 바라보자 정상이 있는 헬기장의 모서리 부분이 보인다. 능선에는 정상에 있는 참호와 군 시설에 군사용 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만든 모노레일이 등로와 나란히 붙어있다.


대광봉. 2코스로 오르면 첫 번째로 만나는 봉우리이다.


대광봉에서 삼각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아주 편안한 능선 길이다.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 주는 정상 능선에서는 장쾌한 조망이 펼쳐진다. 남쪽으로는 지장봉과 한탄강 기슭의 종자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동쪽으로는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금학산(947m)이 솟아 있다. 후삼국 태봉의 궁예가 철원에 도읍을 정할 때 도선국사가 금학산을 진산으로 정하면 300, 고암산으로 정하면 국운이 25년 밖에 못 갈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궁예의 고집으로 고암산으로 정하는 바람에 결국 18년 통치 끝에 멸망하고 말았다고 한다. 그 후 금학산의 수목들은 죽지 않았음에도 3년 동안 나무에 잎이 나지 않았고, 곰취는 써서 못 먹었다 한다. 지금도 봄이면 지천으로 나는 금학산 곰취는 맛이 쓴 것으로 유명하다.

 

금학산, 보개봉을 거쳐 고대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한 눈에 들어온다.
대광봉, 삼각봉, 고대봉을 잇는 정상의 능선. 멀리 정자 고대정이 보인다.

 

 

삼각봉(815m)을 지나 산책하듯 걷다 보면 널찍한 데크가 들어서 있는 고대산 정상 고대봉과 만난다. 거칠 것 없이 드러난 하늘 아래 고대봉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막힘이 없다. 북으로는 바라보기만 해도 넉넉한 황금 들판 철원평야가 끝없이 펼쳐진다. 철원평야 너머로 김일성고지가 있는 고암산과 피의능선이 보인다. 실처럼 지나가는 3번국도 옆으로 해발 395에 불과한 작은 야산 백마고지가 손에 잡힐 듯 아련하다. 6.25전쟁 당시 고지의 주인이 24회나 바뀔 정도로 혈전을 벌였다는 백마고지는 이런 사실을 아는지 아니면 알고도 가슴에 묻었는지 드넓은 황금빛 철원평야는 그저 평화롭기만 하다.

 

고대산 정상 고대봉. 표지석 뒤로 지장산, 주라이등으로 이어지는 보개지맥이 보인다.

 

휴전선으로 가로 막혔지만 남과 북은 같은 가을 하늘 아래에 있다.

시선 아래로 고대산 입구에서 시작하는 구불구불한 군사용 도로가 보이고 그 사이로 고대산 계곡 고대골이 모습을 드러낸다. 휴전선과 인접해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고대산이 지닌 큰 매력이다. 고대봉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겹겹이 이어지는 산군, 넓게 펼쳐진 평야와 호수, 깊은 골짜기에 간간히 들어선 산촌마을은 자연이 만든 한 편의 파노라마다.


전망대에 서서 소슬한 가을바람에 통일의 염원을 담아 북녘 땅으로 날려 보낸다.


3코스 하산 길 곳곳에는 군사용 벙커가 많이 설치되어 있어 이곳이 전방지역임을 실감케 한다. 경사가 급한 낙엽송 우거진 산길에 폐타이어 계단으로 등산로를 만들어준 군인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 한참을 내려오면 표범 폭포로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철 계단을 따라 가면 왼쪽으로 거대한 표범 바위가 보이고, 길이 끝나는 곳에 너럭바위를 깔고 비스듬히 누운 폭포가 보인다. 장고한 세월동안 흐르는 물이 치성 올리듯 깎아내고 닦아낸 바위틈에는 작은 도랑들이 생겼다.


표범바위. 표범이 바위를 할퀴고 올라간 자국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표범폭포. 갈수기라 오늘은 실 폭으로 흐른다.

 

 

폭포에서 다시 올라와 완급과 오르내림이 반복되는 몇 구비의 고갯길을 돌자 숲속에 잠긴 카라반 휴양촌이 나오면서 오늘 산행은 방점을 찍는다.

 

가을 속에 있어도 가을을 모르는 이에게는 실로 가을은 내내 오지 않는 계절일 뿐이다.

어떤가? 당신의 가을은 아직 살아있는가?



 



여계봉 선임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20.10.10 13:14 수정 2020.10.10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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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