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cora imparo(안코라 임파로)!
이태리어로 '나는 아직 배우고 있다’는 뜻이다. 근래 우리의 모든 시간은 정지되고 일상이 사라진 느낌이다.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만나도 경계부터 해야 한다.
친구들과 마주앉아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우정을 나누던 날이 또 다시 올 수 있을까?
지금 우리는 배우고 있다.
‘일상’이 기적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기도한다. 속히 일상의 기적과 함께 기적의 주인공으로 사는 일상을 달라고.
우리는 배우고 있다.
지난날 우리의 언어가 소란스러웠음을. 너무나 쉽게 말하고, 너무 쉽게 비판하고, 너무도 쉽게 조언했음을. 생각은 짧았고, 행동은 경박했음을.
우리는 배우고 있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정치인도 성직자도 아니라는 사실을. 대구로 달려간 신혼 1년 차 간호천사가 가슴을 울린다. 잠들 곳이 없어 장례식장에서 잠든다는 겁없는 그들의 이야기에 한없이 부끄러웠다.
따뜻한 더치커피를 캔에 담아 전달하는 손길들을 보며 살맛나는 세상을 느꼈다. 이마에 깊이 팬 고글 자국 위에 밴드를 붙이며 싱긋 웃는 웃음이 희망 백신이었다.
우리는 배우고 있다.
죽음이 영원히 3인칭이 아니라 언젠가 내게도 닥칠 수 있는, 그래서 언제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만물의 영장 인간도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미생물의 침투에 너무도 쉽게 쓰러질 수 있는 존재임을.
인간이 쌓은 거대한 도성도 바벨탑 무너지듯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배우고 있다.
인생의 허들 경기에서 장애물은 ‘넘어지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서라’고 있는 것임을. 닥친 불행과 시련을 운명이 아닌 삶의 한 조각으로 편입시켜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우리는 배워야 한다.
어떤 기생충보다 무섭고 무서운 기생충은 ‘대충’이라는 것을. 손 씻기도 대충, 사회적 거리 유지도 대충, 생각도 대충으로 해서도 안된다는 사실을.
까뮈의 ‘페스트’에 등장하는 북아프리카의 항구 오랑, 서로를 향한 불신과 배척,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 그곳이 바로 지옥이었다는 사실을.
이제 우리는 희망의 불씨를 살려내야 한다. 아파도 웃어야만 한다. 마지막에 웃는 자가 되가 위해 우리는 기도하며 배워야 한다.
“안코라 임파로! (Ancora impa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