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통영에 있는 사량도는 경치가 빼어나고 지리망산(智異望山)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산이 있어 관광객들과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지리망산은 일명 사량도지리산이라고도 하는데, 이곳 정상에서 육지의 지리산을 바라볼 수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사량도 지리산 외에도 사량도에는 불모산, 가마봉, 옥녀봉 등의 험준하고 빼어난 봉우리들이 늘어서 있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옥녀봉이다.
통영팔경의 하나인 옥녀봉에는 애절한 전설이 하나 전해 온다. 아주 먼 옛날 사량도 옥녀봉 아래에 작은 마을이 하나 있었다. 이 마을에 가난한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옥녀라는 예쁜 여자 아기가 태어났다. 그러나 가난 때문에 제대로 먹지도 못한 어머니는 옥녀를 낳은 뒤 병으로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아버지마저 슬픔에 잠겨 몸져 눕고 말았다. 그로부터 얼마 후 아버지도 세상을 하직하였다. 기구한 운명의 옥녀는 태어나자마자 고아가 되어버렸다. 그 때 이웃에 홀로 살던 어떤 홀아비가 옥녀를 불쌍히 여겨 자기 집으로 데려가 키웠다. 그는 옥녀를 업고 이집 저집 다니면서 동냥젖을 얻어 먹이며 잘 보살폈다. 옥녀는 이 사람을 친아버지로 알고 성장하였다.
세월은 흘러 옥녀의 나이가 열여섯이 되자 옥녀는 어여쁜 처녀가 되었다. 그 미모가 아주 뛰어나 주변에 소문이 자자하였다. 이 즈음 옥녀를 길렀던 의붓아버지는 마음이 동하여 옥녀를 딸로 보지 않고 이상한 행동을 할 낌새를 보였다. 그때 까지만 해도 옥녀는 그를 친아버지로 알고 있었다. 슬픔에 잠긴 옥녀는 이러한 위기를 벗어날 묘책을 생각했다. 그러고는 의붓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제가 간절한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하라는 대로 행하시면 아버지의 요구를 들어드리겠습니다. 내일 새벽 날이 밝기 전에 상복을 입고 멍석을 뒤집어 쓴 채, 풀을 뜯는 시늉을 하면서 송아지 울음 소리를 내며 저 옥녀봉으로 네발로 기어서 올라오십시오. 그러면 아버지의 요구를 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미련한 의붓아버지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답답한 마음에 눈물로 밤을 새운 옥녀는 다음날 새벽에 옥녀봉으로 올라갔다. 인적이 없는 새벽녘에 옥녀봉에 앉아 있는데, 상복을 입고 짐승의 모습을 한 의붓아버지가 벼랑을 기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순간 옥녀는 치마폭으로 얼굴을 가리고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졌다. 열여섯 피지 못한 꽃봉오리 하나가 산산히 부서졌다.
사량도 옥녀봉 전설은 근친상간 금지와 타락한 동물적 본능을 엄중히 경고하는 교훈으로 오늘날까지 구전으로 전해오고 있다. 옥녀봉 밑에는 사철 붉은 이끼가 끼어있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옥녀의 피라고 믿고 있다. 지금도 결혼식 때면 옥녀봉이 보이는 곳에서는 신랑 신부가 맞절을 하지 않는 풍습이 있으며, 신부가 결혼하여 가마를 타고 가다가도 옥녀봉 아래를 지날 때는 걸어서 가는 풍습이 있었다.
김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