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찬의 두루두루 조선 후기사]
제28화 장기, 바둑, 윷 등
그네뛰기나 씨름이 몸 단련 놀이라면 머리 쓰는 것을 도와주는 놀이가 있습니다. 장기, 바둑, 윷 등은 여름철에는 야외에서 겨울에는 방 안에서 여러 사람이 모여 앉아 즐겁게 놀 수 있습니다. 우선 장기는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여러 가지 말을 엇바꾸어 쓰면서 상대방의 말을 잡거나 움직이지 못하게 하여 승부를 가리는 놀이입니다. 장기는 왕을 의미하는 한(漢) 초(楚)를 비롯해 마, 상, 포, 졸 등의 말을 통해 판 위에서 전쟁을 벌이는 것으로 재미있으면서도 사고력을 키워주는 놀이입니다. 또 인간 본성의 호전성을 순화시키기 때문에 사찰에서 젊은 스님들이 많이 두었다고 합니다. 장기에 얽힌 이야기는 많은데 몇 가지 소개하면 영의정을 지낸 노사신이라는 분은 차(車)를 매우 귀하게 여겨 장기를 두다가 차를 잃으면 애걸복걸해서 되돌려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노정승의 차만큼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는 우스갯말이 떠돌았다고 합니다. 또 조선 중기에 어느 왕족이 장기를 잘 두어 천하제일을 자랑했는데 군대에 가게 된 농부가 찾아와 말 한 필을 걸고 내기를 청했다고 합니다. 내기에서 진 농부가 말을 내주고 제대한 다음에 다시 겨루자고 했습니다. 왕족은 코웃음을 치고는 말을 잘 길렀는데 몇 년 뒤 제대한 농부가 다시 와서 장기를 두어 이번에는 왕족이 완패했습니다. 농부가“군대를 가게 되어 말을 기를 수 없었는데 이리 잘 길러주셔서 고맙습니다.”하고 가버리니 교만한 왕족의 콧대를 납작하게 눌러버린 것입니다.
주로 지식인 계층이 좋아한 바둑은 두 사람이 흰 바둑돌과 검은 바둑돌을 나누어 가지고 바둑판의 줄금 교차점에 한 점씩 놓아가며 차지한 밭의 넓이로써 승부를 겨루는 놀이입니다. 고구려, 백제인들도 즐겼던 놀이로 가로세로 각각 19줄의 먹선을 그어 교차점이 361개가 되게 했는데 줄의 교차점을 ‘로’라고 합니다.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을 국수(國手)라고 하며실력에 차이가 있을 때는 몇 점씩 미리 깔아놓아 재미를 더하는데 바둑은 사고력과 집중력을 키워주므로 지금도 인기 있는 여가 놀이로 이어집니다. 바둑놀이에서 수준이 낮은 사람은 ‘오목’이라고 하여보다 쉬운 놀이를 했습니다. 바둑판에 번갈아 바둑돌을 놓아 다섯 개를 나란히 놓으면 이기는 것인데 아이들이 즐겨 놀았습니다.
윷놀이는 네 개의 가락을 던져 엎어지거나 젖혀지는 결과를 가지고 말판에 말을 쓰면서 겨루는 놀이입니다. 윷놀이의 유래가 부여의 관직명을 딴 것이라 해서 부여 때부터 있었다고 하는데, 시베리아에서 건너간 북아메리카 인디언들도 윷을 놀았기에 그 역사는 만년 이상 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산가지나 콩으로 윷놀이하기도 했는데 윷은 놀이를 넘어서 이순신 장군이 했던 것처럼 운세를 살피는 척자점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남자들은 남승도도 즐겨 했는데 유람명승도의 약어입니다. 도표에 명승지의 이름을 적어놓고 주사위를 던져 나오는 숫자를 따라 자리를 옮기면서 노는 것입니다. 남승도표는 사방 1미터 정도의 종이에 네모 칸을 가득 그어 표의 한복판에 한양(서울)이라고 쓰고 그 둘레에 서울에서 가까운 지역부터 시작해서 8도의 명승지명들을 써넣습니다. 놀이를 하면서 자연히 나라의 자연과 명승지, 이름 높은 물산지를 익힐 수 있습니다. 이 남승도를 변형해서 만든 것이 승경도로 명승지 대신 벼슬을 적어 넣어 아이들이 출세하려는 마음을 품게 합니다. 성불도도 있는데 중들이 노는 놀이로 그 내용이 지옥으로부터 부처가 사는 극락에 이르기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식자층에서는 시를 쉽게 외우려는 시패와 가투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시패는 시구 한 글자씩 써넣은 패쪽을 하나씩 집고 내놓으며 필요한 글자를 골라 맞추는 것이고 가투는 한 편의 시나 가사를 써넣고 노는 놀이입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그 패쪽들에 쓰인 시나 가사들을 저절로 외우게 되는 것입니다. 글을 배우는 사람들에게 정서교양과 지능 향상에 좋은 놀이가 되는 셈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