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찬의 두루두루 조선 후기사] 제30화 사관

[최영찬의 두루두루 조선 후기사]

 

제30화 사관

 

조선왕조실록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오백 년에 걸쳐 기록된 이 문서로 한국이 IT 강국이며 수출로 먹고사는 신흥국이 아니라 전통적인 문화민족임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고려 때에도 매일 기록되었는데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자 고려왕조실록은 ‘고려사’라는 책으로 축약 정리되고 방대한 원본은 사라졌습니다.

왜 조선왕조실록이 위대한 것일까요? 우리가 일기를 쓰는 것은 하루의 일을 기록해서 반성하는 데 있듯이 왕조실록이 있기에 임금과 대신들은 자신의 행동거지에 조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왕의 공식업무를 기록하는 벼슬아치를 사관(史官)이라고 하는데 총명하고 지조 있고 강직한 젊은 벼슬아치가 담당했습니다. 왕조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중대한 직책이기 때문입니다. 사관을 거친 사람은 출세가 보장되었기에 많은 사람이 지원했지만 때로 임금을 거슬러 필화를 입어 귀양가기도 했습니다. 찐득이처럼 달라붙어 기록해서 태종 임금 같은 분은 사관을 피해 다녔고 사관은 숨어서 몰래 엿듣기도 했습니다.

임금은 자신을 감시하며 기록했기에 매사에 신중히 행동해야 했습니다. 특히 임금과 신하가 단독으로 만나 국정을 농단하는 일이 없도록 임금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사관이 입시했습니다. 이들의 기록은 중신은 물론이고 임금도 절대 읽어볼 수 없습니다. 세종대왕께서 아버지 태종이 너무나 많은 사람을 죽였기에 마음이 켕겨 아버지 시대의 실록을 읽어보려고 했지만, 신하들의 극렬한 반대로 포기했고 오히려 왕권을 견제하는 사관 입시제도를 정착시켰습니다. 조선조 임금에서 비록 사초이지만 실록을 읽어본 사람은 폭군 연산군뿐이었습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로지 역사뿐이다.”하며 연산군은 사관의 기록을 방해하는 등 온갖 수단을 다 했지만, 후에 그것마저 추가 기록할 정도로 임금에게는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다음과 같은 예도 있습니다. 임금이 가는 곳에는 수행하는 내시와 함께 붓을 든 사관이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 임금께서 갑자기 소변이 마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정원에 들어가 소변을 보자 사관이 이 사실을 기록합니다.

“임금께서 숲에 들어가 소변을 보시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임금이 사관을 향해 핀잔을 줍니다. 그러자 사관이 다시 적습니다.

“임금께서 뭘 이런 걸 다 적느냐, 하셨다.”

이렇게 융통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사관이어야 직책을 다한다는 이름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사관의 임무를 다하는 것은 출세와 관련되기도 했지만, 유교 사회에서 강직한 선비의 명성을 얻을 만한 명예스런 일이기도 했습니다.

빨리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해야 했기에 사관이 쓰는 흘림체는 따로 있었고 이것을 집에 가져가 다시 수정한 다음에 기록하고 다른 사관으로 하여금 확인하게 합니다. 최종적으로 기록이 확정되면 네 부씩 만들어 각각 다른 사고에 보관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당파가 다른 사람에 대해 평가가 냉혹하기도 했습니다. 또 정권이 바뀌면 수정하기도 했지만, 원본은 그대로 있기에 비교해서 정국의 변화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자료가 된 초벌 기록은 모두 가져다가 세검정에서 냇물에 종이를 물에 빨았습니다. 그곳에 종이를 만드는 조지서가 있어 귀한 종이를 재활용하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맑은 물에 씻어냄으로 삿된 마음이 편향된 시선으로 적지 않으려는 일종의 맹세의식이기도 했습니다.

왕의 전횡을 사대부의 일원인 사관이 붓 하나로 막는 이 제도는 조선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장치였습니다. 현대는 어떠할까요? 지금도 매일 대통령의 일상이 기록되고 있지만 공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중대한 결정은 비밀로 하거나 아예 기록하지 않는 폐단도 있으니 우리 선조의 혜안이 뛰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시우 기자
작성 2018.10.03 12:01 수정 2019.12.30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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