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프로젝트] 미지와의 조우

엄지환


세상엔 신비로운 것이 참 많다. 지금 나에겐 이 배를 벗어나 볼 수 있는 사회의 모든 부분이 다 신비로운 존재들로 다가온다. ‘제대라는 단어는 전설 속에서나 볼 법한 비현실을 집대성해놓은 단어나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이 제대라는 것을 눈앞에 둔 사람들을 보면 그저 신기하고 왠지 모를 비범함이 느껴진다. 예사롭지 않은, 나에게는 먼 세상과도 같은 그런 비범함을 지닌 존재는 안타깝게도 약간은 이상한 형태로 자리 잡아 버렸지만 오래 전 내게 비범함을 갖춘 신비한 존재는 따로 있었다. 그리고 그 신비의 존재는 바다에 나를 묶어놓고 매혹시켜 현재의 자리까지 이끈 수 없이 많은 발걸음의 첫 시작이 되었다.


남들은 어떤지 모르겠다. 난 어릴 때부터 철장 속에 갇힌 각양각색의 동물보다는 어두침침한 수족관 속 가까운 듯 가까워질 수 없는 물고기를 보는 것이 더 좋았다. 우리가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 지 도도한 매력을 풍기며 유유자적하게 시선 위를 거니는 그 모습이 이유 없이 좋았다. 그 중에서도 삐죽삐죽 튀어나온 날카로운 이빨과 창백한 듯 예리한 눈빛의 회색 빛 상어는 매번 볼 때마다 전설 속의 동물마냥 신비로웠다. 족히 4m는 될 듯한 물고기들 사이로 부드럽게 유영하는 상어를 보며 그 수족관 안에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실상은 닥터피쉬에게 손가락 몇 개 맡기는 것조차 두려워했지만 바다를 향한 꿈만큼은 거대한 물고기만큼이나 원대했던 철없음이 어릴 적 나의 모습이었다.


학창시절에는 각종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보며 키운 바다에 대한 해결되지 않은 궁금증은 터질 듯 위태로운 풍선처럼 커져만 갔다. 그저 모든 것이 신기했다. 푸른빛이 머물며 온갖 생명의 생동감이 가득한 바다부터 완전한 암흑 속에 갇혀버린 미지의 심해까지. 왠지 지구를 품은 바다 속 어딘가엔 판도라의 상자가 엄청난 비밀을 숨겨둔 채 누군가 깨워주기를 기다리고만 있을 것 같았다. 줄곧 바다의 비범함을 먹고 살아온 난 거친 파도를 헤쳐 나가는 해적이 되어 어딘가 잠들어있을 비밀들을 마구 약탈하는 상상 속 세계에 빠져 살며 로망을 키웠고 먼 훗날 바다라는 미지의 세계와 아무런 가림막없이 마주하고자 다짐했다.

몇 년 뒤 그 다짐은 한국해양대라는 결실을 낳았고 난 그것으로 본격적인 바다와의 만남이 시작된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몰랐다, 진정한 미지와의 조우는 아직 이루어 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저 바다의 향기나 맡으며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 속에 사는 것이 미지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나의 믿음이 오산이었다. 세찬 바닷바람에 방심하며 흔들리지 않는 안락한 잠자리와 흙먼지로 그윽한 발자국을 묻히고 다니던 나날 중에 계획된 것이었지만 갑작스럽게 해양경찰이 찾아왔다. 이 만남은 바다라는 그렇게도 꿈꾸던 새로운 환경 속에 나를 던져 넣었다. 비록 내동댕이쳐지긴 했지만 당혹스럽진 않았다. 어린 시절 꿈꾸던 상상 속 세계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지만 어찌 되었든 미지의 세계 속으로 거침없이 뛰어들어 고대했던 만남을 갖는 것이지 않던가. 하지만 값비싼 장난감을 선물 받은 아이처럼 마냥 해맑을 수도 없었다.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의 스트레스가 가족의 사망을 겪었을 때만큼이나 높다고 하듯, 나 역시 설레는 마음만큼 바다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게 반으로 나뉜 정신을 챙기고 오래 전 꿈꾸었던 상어와의 격렬한 싸움 같은 비현실적인 그림은 뒤로 한 채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를 미지의 비범함 속으로 조심스럽게 첫 발을 내딛었다.

말로만 들었던 뱃사람이 된 나. 그 시작은 험난했다.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안락함과 먼지 휘날리는 흙투성이 신발은 없었다. 대신 쉼 없이 비틀거리는 비좁은 침대와 몇 번을 눈을 씻고 보아도 온통 물투성이인 망망대해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바다가 숨기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미지의 비밀들, 그런 건 없었다. 뒤늦게 진실을 깨달은 뒤 내게 남은 것이라곤 그저 바보 같은 착각과 21살 애늙은이의 노망일 뿐이었던, 참혹하게 짓밟힌 로망뿐이었다.


쉽게만 살아가면 무슨 재미가 잇겠냐는 어느 노래 가사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맞는 말이다. 무려 100톤에 달하는 큰 배를 흔들 정도로 요동치는 바다는 힘겨웠지만 그만큼 흥미롭고 신났다. 배에 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던 때, 이미 출렁이는 침대는 집처럼 편해져 있었고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백파는 심심한 푸른빛을 꾸며주는 장식품에 불과했다. 배의 최상단에 올라서서 안개가 자욱한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며 파도의 춤사위와 하나가 될 땐 해적 선장이라도 된 기분마저 들었다. 바보 같지만 지금 겪는 힘겨움이 곧 다가올 즐거움의 예고인 것 같아 오히려 반갑기도 했었다.


때로는 아무것도 모르고 해맑기만 한 바보가 되는 것이 좋았다. 서서히 경계심을 풀고 수줍은 가면을 벗어 던지는, 잔잔한 부둣가에선 알 수 없었던 바다의 꾸밈없는 본모습은 매일 새로운 경험으로 하여금 날 행복하게 만들었다. 낯선 듯 익숙한 그 행복은 무척이나 짧았지만, 오히려 이것이 미지가 내게 보내는 첫 인사의 악수인 것 같아 반가웠다. 이는 곧 바다와 경계심이 아닌 친근함으로 엮인 관계가 된다는 것이고 오래 전부터 상상으로 만들어온 비밀의 탑을 한 층씩 점령할 수 있는 발판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기에 뭔 지 모를 노력에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곤 예상대로 하나씩 바다로부터 선물을 간직한 사절단을 맞게 되었다. 그 시작엔 자연이 만들어낸 아침의 작은 기적이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기다리지도 않을 문을 열며 밖을 나섰고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리며 숨이 잦아들어 갔다. 누군가 세상엔 없을 광경에 대한 미련으로 하늘을 화폭 삼아 그려놓았다는 비현실적인 설명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게 만드는 광경이 눈앞에 놓여져 있었다. 구름 너머로 살며시 녹아 든 아침 햇살과 그 아래로 너울거리는 바다의 조화로움은 인간이 만들어낸 어떤 조형물이나 인공물보다도 뛰어난 미를 자랑하는 자연의 예술작품이었다. 이를 간직할 수 있는 것이 망각의 한계를 지닌 내 눈과 머리뿐이라는 사실에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 장관과 바로하게 된 날 이후로, 매일 아침 새로운 바다를 만난다는 기대감에 젖은 채 눈을 뜰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기대로부터 오는 행복은 하루를 좋은 예감과 함께 시작할 수 있는 작은 기적을 내게 주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악천후로 인해 자주 피항을 가게 되면서 아침 바다의 부재로 인해 실망하고 하루가 지루해질 때쯤, 민족의 명절인 추석이 다가왔다. 생전 처음으로 차례 상을 준비해보는 값진 경험의 대가로 피곤함을 얻은 채 하루의 막바지로 향하던 그 날,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 본 난 파도의 그림자조차 잘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홀로 빛나는 정월대보름의 달을 보며 붉은 아침 햇살과는 또 다른 매력에 서서히 젖어갔다. 왠지 서글픈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 듯한 달빛아래 검은 물결을 바라보며 바다의 비범함은 점차 삶의 친숙함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시간이 만병통치약이라던가. 큰 기대를 안고 온 배에서 새로운 생활의 시작을 알리게 된 내게 첫 군간은 온갖 걱정들로 가득하였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걱정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그라들고 있었다. 나조차 미처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조용히, 은밀하게. 결국엔 다 그런 것이었다. 바다라는 미지의 세계에는 땅 위와 같은 생명이 살아있고 그 비범함 속에는 똑 같은 사람이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바다의 흔한 돌고래, 아침과 밤의 무한한 반복, 거친 파도와 같은 평범함이 지닌 이면에는 육지에서 흙먼지나 맡으며 느낄 수는 없고 사람의 감정을 폭풍처럼 휩쓸어가는 비범함이 존재하고 있었다.

한 때 나를 지배했던 로망이 한낱 노망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되었지만 결코 아무런 가치 없는 노망은 아니었다. 겉은 해초투성이의 지저분한 조개껍데기였지만 속에 빛나는 진주 하나를 품고 있다는 소중한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배와 바다라는 새 환경에 대한 걱정은 눈 녹듯 사라졌고 그제서야 비로소 오래 묵혀두었던 근심이 잘 숙성된 안심으로 변하는 것을 가벼운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녹는 시간이 백일이나 걸렸다는 함정이 있긴 하지만, 빠져 헤맬만한 가치를 지닌 함정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백 번째 발걸음을 떼기 직전인 지금, 나에게 있어 여전히 바다는 수많은 비밀을 간직한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다. 분명 오래 전 막연한 호기심으로 바다에 빠져있던 그때의 나와 비교하자면 많은 것이 달라졌다. 비밀스럽고 신비해 보이던 바다가 어느새 집 마냥 편해지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렇게 큰 변화를 겪고 난 후에도 여전히 오래 전 간직하고 있던 로망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그 비범함 속에 평소 우리의 일상과 별반 다름이 없는 평범함이 깃들어있고 또 일상 속 익숙한 평범한 익숙함 속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삶의 비범함이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된 덕분이다.

그렇게 비밀들의 신비로움은 무의미함에 힘을 잃어갔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도 점차 줄어들어갔다. 새로움에 힘겨웠지만 또 다른 새로움에 미소 지을 수 있었던 시간들이 지나가고 어느덧 미지의 세상은 나의 소중한 삶의 터전이 되었다. 무지한 상태에서 힘겹게 내딛었던 첫 발걸음에 담긴 수많은 불안과 걱정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 묻혀져 갔고 비범한 아우라를 내뿜던 판도라의 상자는 크리스마스의 푸짐한 선물 상자처럼 다양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선물이 담긴 상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미지와의 조우에 있어서 내가 가졌던 복잡한 생각을 두고 할 수 있는 것은 앞에 그려진 길을 따라 지금의 내가 서 있는 자리까지 차근차근 걸어오는 것뿐이었고, 이것이 나의 몫이자 역할임을 미리 알아야 했던 것이다.

앞으로 또 어떤 새로움이 닥칠 진 알 수 없다. 어느 정도 큰 틀은 예상할 수 있겠지만 그 안에 있는 미세한 구성요소들이 끊임없는 변화를 갈망하며 다가올 삶을 예측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이상한 형태로 변하여 내게 다가온다 한들 더는 걱정거리란 없을 것 같다. 비밀로 가득한 미지의 세계는 그 안에 뛰어들어 하나가 되고자 마음먹었을 때 비로소 가면을 벗은 본모습을 발견할 수 있고 마침내는 그 안에 숨겨진 일상의 평범함이 가진 아름다움과 행복을 즐길 수 있음을 알게 된 덕분이다. 그래서 난 이 시간들을 잊지 않으려 한다.

어린 시절 가졌던 바다에 대한 로망이 지금의 나와 같은 애늙은이의 노망이었다 한들, 이것이 나를 새로움에 즐겁게 해주고 익숙함에 행복하게 만들어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할 일이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계속해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삶이 내게 날아온다 한들, 순수하고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 시절의 로망을 품에 안고 바보마냥 해맑은 애늙은이가 되어 살아갈 테다. 그렇게 하나의 작은 요정처럼, 미지가 가진 비범함을 먹으며 영원한 행복 속에서 신비로운 존재가 되어 삶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살아갈 것이다.[글=엄지환]


이해산 기자



이해산 기자
작성 2020.11.20 10:58 수정 2020.11.20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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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