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떠 있어야만 섬이냐
나도 외로우면 섬인 것을
영종도와 강화도를 마주보고 누워서 쉬고 있는 서해의 섬, 신도, 시도, 모도는 두 개의 연륙교를 넘나들면 삼도삼색(三島三色)의 섬을 하나의 섬처럼 여행할 수 있다. 삼형제 섬이라고 불리는 이 3개의 섬은 크기에 따라 신도, 시도, 모도의 순서대로 서해바다에 누워있다. 그리움은 섬과 섬을 잇는 다리가 되어 사람을 반긴다.
영종도 삼목항에서 신도선착장으로 가는 페리에서 바다와 섬을 바라본다. 바다가 아니라면 섬은 이름 없는 하나의 산자락일 뿐이다. 바다는 섬을 낳고, 섬은 단조로운 수평선의 바다에 리듬을 준다.
삼형제섬은 승용차나 버스로 돌아볼 수도 있고, 신도선착장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해안가를 달릴 수도 있다. 그러나 두 발로 걸으면 볼 수 있는 섬 풍경이 더욱 많아진다.
삼형제섬의 둘레길은 신도선착장에서 시작된다. 신도선착장에서 해안누리길 안내판을 따라 해당화 방죽길을 따라가면 맨 먼저 구봉산(179m)으로 오르는 임도가 나오고 그 길은 신시도 연도교, 시도염전과 수기해변, 시모도 연도교, 모도 배미꾸미 해변으로 이어지면서 약 15km의 섬길을 걷게 된다. 평탄하고 유순한 산길과 해안길 그리고 다리 두 개 건너면서 3개 섬을 걷기에는 별로 어려움이 없다. 트레킹이 끝나면 버스 종점인 모도리 소공원에서 공영 버스를 타고 원래 출발지인 신도선착장으로 돌아오면 된다.
해당화 뚝방길을 따라 걷다가 구봉산 등산로로 접어든다. 참나무와 소나무가 간간이 섞여 있는 호젓한 나무숲길이 가슴속을 아릿하게 만든다. 신도의 묘미는 하늘을 향해 겸손하게 손을 든 구봉산이다. 입을 다물고 산길을 걸으면 자연은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 산길 중간에 갑자기 산새들이 합창하는 소리가 들려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드니 감나무에 달린 까치밥을 놓고 새들이 즐거이 식사하는 정경이 비친다.
편안한 임도를 따라 구봉정을 지나 돌탑이 있는 정상에 오르면 남쪽으로 인천국제공항이, 동쪽으로 신도의 아기자기한 마을이 보인다. 착하고 신의가 넘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신도(信島)는 부드러운 곡선미까지 가지고 있어 더없이 사랑스럽다.
신시도 연도교로 내려서는 산길은 선명해졌다가 흐려지기를 반복한다. 자연 그대로의 길, 해송 아래 평탄한 산길이라 가슴에 솔내음도 켜켜이 잰다. 낙엽이 많아 미끄럽기는 하지만 위험한 곳은 없다. 오히려 새소리와 파도소리가 가득한 짙은 해솔길이 묘한 안도감을 주고 낙엽 때문에 발디딤 마저 푹신해 마치 허공 속을 둥실 떠올라서 걷는 기분이다.
섬과 섬 사이에 다리 하나가 놓였을 뿐인데 풍경은 몇 곱절 넘게 늘어난다. 걸음만 분주하면 일대의 풍경들이 주렁주렁 매달린다. 외로우니 섬인데 그 느낌이 덜해져 아쉬움도 있다. 동전에 양면이 있듯, 세상에 다 좋은 것은 없는 모양이다.
연도교를 지나면 만나는 시도(矢島)는 옛날 강화도 마니산 궁도 연습장에서 활을 쏠 때 이 섬을 향해 시위를 당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다리 오른쪽으로 난 해당화 방죽길을 따라 가면 시도염전이 나온다. 시도에는 아직도 소금을 생산하는 염전이 있다. 인천국제공항이 들어서기 전 삼목도 전체가 염전이었다는 사실에 비하면 시도염전은 규모도 작고 따라서 생산량도 형편없지만 이제는 수도권에서 볼 수 있는 몇 개 안되는 귀한 염밭이다. 이 일대는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과 통하고 있어 영양염류가 풍부한 근처 바다에서 나오는 수많은 해산물은 질이 고급인데 그러한 물로 만드는 소금 또한 맛이 좋기로 정평이 나있다.
시도염전을 지나 도로로 나오면 해변으로 가는 오솔길을 따라 산자락을 오른다. 공사 중인 ‘슬픈연가’ 세트장을 지나 숲속으로 들어선다. 이윽고 수기해변으로 내려선다. 시도의 볼거리는 활처럼 휘어 있는 수기해변이다. 짙고 넓은 서해바다가 눈앞에 펼쳐지자 각진 마음은 이내 말랑말랑해진다. 완만하고 넓은 수기해변은 강화도를 마주보고 있어 멀리 동검도와 강천산, 가까이에 마니산과 동막해변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변에서 다시 산속으로 이어지는 둘레길을 따라가면 수기전망대가 나온다. 강화도 마니산 봉우리가 눈앞에 보이고, 일몰이 장관인 장화리 해변이 앞마당처럼 펼쳐져 있다. 안온한 숲길 끝에 만나는 전망대에 서니 바라보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그러니 뭍에서 가져온 욕망이 번다한 도시의 상념이 툭툭 떨어져나갈 수밖에. 섬이 주는 풍경을 머리에 베고 여기서 쭉 머물고 싶다. 그래서 이곳은 백패킹(back packing)의 명소다.
후미진 산길의 임자는 나무들이다. 멈춰서 생각에 잠기기 적격이다. 그래서 내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 볼 수 있다. 이정표가 있는 숲속 삼거리에서 한전 방향으로 길을 잡으면 면소재지가 있는 마을로 내려선다. 한전사무소와 폐교된 시도초등학교을 지나 당싯당싯 고개마루를 넘어서면 모도로 들어가는 노루메기 마을이 나오고 이어서 시모도 연도교를 지나게 된다.
바람 부는 초겨울의 바다에는 그리움이 흐른다. 이즈음에는 가슴속에 간절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자들만이 섬과 섬 사이를 오갈 수 있다. 모도의 첫 인상은 담백하다. 다리를 지나면 보이는 작은 포구에는 까마귀와 갈매기들만 배 위를 나르고 있다. 마을 뒤로 자그마한 야산들이 편안하게 누워있는 인적 끓긴 무채색 섬은 평범하기 그지없다. 풍경이 낯설지 않아 그동안 잃어버린 어릴 때 고향마을의 서정 한 자락이 떠오른다.
모도(茅島)는 그물에 고기는 올라오지 않고 풀 종류인 띠(茅)만 걸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섬 이름 속에 섬 생활의 고난이 짙게 배어 있다. 연도교를 지나 왼쪽으로 길을 잡으면 모도리 소공원이 나오는데 마을 중심부에 해당하는 자연부락이 있는 곳이다. 여기서 남쪽으로 가면 배미꾸미해변이 있다. 해변의 생김새가 배 밑구멍처럼 생겼다고 해서 배미꾸미라고 불리는데 이곳에 해수욕장과 이 섬의 명물인 배미꾸미 조각공원이 있다.
섬은 섬이다.
섬은 기다림이다.
멈춰 설 줄 아는 사람만이 아니 멈춰 서야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제대로 섬을 여행할 수 있다. 물이 밀고 써는 것이 하루에 두 번. 그 물길을 무심하게 바라보고 기다려야 진정 섬과 벗할 수 있다.
하오의 햇살이 나뒹군다. 눈부시게 투명한 초겨울 섬에 온기를 나눠준다.
삼목항으로 돌아오는 뱃머리에 서서 빈자리를 채우러 달려오는 파도와 작별을 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