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한 해를 보내며 한니발과 스키피오 그리고 티투스를 생각한다

여계봉 선임기자


포에니 전쟁은 기원전 264~146년에 이탈리아반도를 통일한 공화정 치하의 로마와 당시 지중해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북아프리카 페니키아인들의 도시국가 카르타고 간에 모두 세 차례에 걸쳐서 120년 동안 벌어진 전쟁을 말한다. 고대 지중해 세계의 세계 대전이었던 포에니 전쟁의 하이라이트는 '한니발 전쟁'이라고 하는 2차 전쟁(기원전 218~기원전 201)이다.

 

한니발의 아버지 하밀카르는 제1차 포에니전쟁에서 로마에게 대패한 바 있는 카르타고의 장군이었다. 한니발은 이후 스페인에 주둔한 아버지를 따라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아버지와 매형의 뒤를 이어 청년 시절에 식민지 스페인의 총독이 되었다. 한니발은 기원전 218년에 암살된 아버지의 복수를 위한 로마 출정에 나서는데, 보병 4, 기병 8천 명에 전투 코끼리 37마리를 이끌고 갈리아를 가로질러 피레네산맥과 알프스산맥을 넘어 이탈리아로 침공하였다. 2차 포에니 전쟁이 드디어 발발한 것이다.

 

나폴레옹은 여름 알프스를 넘었으나, 한니발은 무려 2천 년 전에 겨울 알프스를 넘었다. 로마의 예측을 뛰어넘는 과감한 전술이었으나 험준한 행군으로 반 이상의 병력이 죽거나 도망쳐서 병력은 보병 2만여 명, 기병 6천 명 정도만 남았다. 자신 또한 눈병으로 한쪽 눈을 잃었으나, 남은 병사들을 독려하며 88만의 로마군과 싸우며 이탈리아로 나아갔다. 한니발은 칸나이를 비롯한 이탈리아 중부에서 연승을 거듭하여 로마의 6개 군단을 불과 며칠 사이에 궤멸시키고 만다.


독일 화가 하인리히 로이테만 作 "알프스를 넘는 한니발" (출처:Wikipedia)

한니발이 이탈리아에 미친 영향은 너무나 컸다. 15년간 약 400여 개의 도시가 황폐해졌고, 거의 30만 명에 달하는 로마인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이탈리아 전체 농장의 절반이 파괴되었다. 로마인들에게 '한니발이 문 앞에 있다'는 말은 '위험이 닥쳤다'로 통할 정도로 로마 최강의 적장 '한니발'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치가 떨리는 이름으로 각인된다.

 

그러나 로마 동맹국들이 끝까지 로마 편에 잔류하여 힘이 되어준 데다 로마의 명장 스키피오가 카르타고를 급습하는 바람에 한니발은 귀환 명령을 받고 본국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한니발은 카르타고 정부의 제대로 된 지원조차 받지 못한 채 기원전 204년 아프리카 자마 전투에서 31살의 젊은 로마 장군 스키피오를 맞아 결전을 벌였으나 패하고 만다. 이 전쟁에서 자기 아내 시밀케와 아들, 그리고 동생까지 죽게 되고 카르타고는 아프리카 이외의 모든 영토의 포기, 거액의 전쟁 배상금, 카르타고 해군의 해체라는 치욕적인 강화조약을 받아들여야했고, 로마는 지중해 서부의 지배권을 차지하게 된다.

 

전쟁에서 패한 한니발은 지방으로 도피하여 은둔생활에 들어간다. 패한 카르타고의 정치를 맡게 된 과두 정부는 너무도 무능했다. 결국 흉흉한 정국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영웅'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카르타고는 은신해 있던 한니발을 불러낸다. 자마전투가 끝난 8년 후 카르타고의 집정관에 선출된 한니발은 새로운 개혁전쟁을 시작한다. 특히 부패, 범죄, 재정정책에 심혈을 기울여 기원전 188년에 가서는 로마에 대한 모든 전쟁배상금을 앞당겨 갚는 데 성공하고, 카르타고는 다시 부활하게 된다.


로마를 패배 일보 직전까지 몰고 갔던 카르타고의 장군이자 정치가 한니발 바르카스(B.C.247~B.C.183)(출처:wikipedia)


예나 지금이나 권력 주변에는 사리사욕만 탐하며 아첨하는 간신 모리배들이 모여들기 마련이다. 한니발에 대해 적대적이던 카르타고의 일부 정치인들이 59세의 한니발을 로마에 넘기기로 작정하고 한니발을 거의 잊고 있던 로마 원로원에 한니발이 남몰래 전쟁 준비를 하고 있다는 음해성 투서를 보낸다. 이 투서로 로마는 발칵 뒤집어진다. 이 말을 전해들은 로마의 전쟁영웅 스키피오는 원로원을 방문해서 한니발 장군은 그런 인물이 아님을 간곡하게 설득한다.

 

기록에는 한니발과 스키피오가 두 차례 만난 것으로 되어있다. 첫 만남은 카르타고의 자마에서 전투에 격돌하기 직전의 협상장이었다. 한니발의 노련함과 스키피오의 패기는 서로를 설득시키고자 노력하였으나 실패하였고, 결국 전투에 돌입하게 된다. 이후 소아시아 에베소에 망명하고 있던 한니발은 시리아의 전쟁 중에 다시 로마의 스키피오를 만난다. 이때 스키피오가 12세 연상인 한니발에게 정중하게 묻는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장수는 누구인가요?” 한니발은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드로스요.”라고 대답하자 스키피오가 다시 묻는다. “그러면 두 번째로 뛰어난 장수는 누구요?” “에페이로스의 왕 피로스요.” “그렇다면 세 번째로 뛰어난 장수는 누구요?” “그건 물론 나요.” 그러자 전투의 승리로 '아프리카누스'라는 존칭을 받았던 스키피오는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만약 장군이 자마에서 나한테 이겼다면 그 답은 어떻게 될 것이요?” 한니발은 그렇다면 내가 첫 번째 장군이 되었을 것이오."

 

스키피오가 몇 번이나 원로원에 나가 한니발의 결백을 주장했지만 과거 한니발에 대한 공포심에 질린 로마 원로원은 카르타고 측에 정식으로 한니발을 로마로 인도해 줄 것을 요청한다.

 

나폴리 국립고고학박물관의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흉상(B.C.235~B.C.183) (출처: 나무위키)


고립무원인 한니발이 할 수 있는 일은 '야반도주'외에는 없었다. 카르타고를 벗어나 말을 타고 수백 km 달아난 후 안티오크 지역까지 배를 타고 갔지만 다시 로마군들을 피해 크레타섬으로, 이어서 다시 비티니아의 왕인 푸르시아스에게 도움을 요청한 끝에 한동안 그의 궁전에서 지내게 된다.

 

로마 원로원은 한니발이 전쟁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은 낭설이었고 이미 한니발이 홀로 타국으로 잠적해버린 상황에서 60세가 넘은 한니발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라는 판단 아래 더 이상 한니발을 추적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한니발은 비티니아의 한적한 해변가에 집을 짓고 모처럼 조용히 만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비티니아에 '티투스'라는 로마 관리가 출장을 왔다가 비티니아 사람들로부터 한니발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러자 그는 한니발에 대한 개인적인 증오심보다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한니발을 잡아서 로마로 데려가기로 한다. 그래서 잊혀진 명장 한니발을 체포하는데 협조하도록 비티니아왕에게 압력을 가하여 한니발의 해변의 집을 포위하게 된다.

 

한니발은 집 내부에서 외부로 탈출하는 비상지하 통로를 7개 군데나 마련해 두고 있었지만 이미 외부 모든 통로가 추격하는 군인들에게 막혀있다는 것을 알고 탈출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그래. 너희들이 그토록 늙은이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으니 내가 너희들 시름을 하나 덜어주도록 하마. 그러나 내 죽음이 결코 티투스의 자랑이 될 수 없을 거야." 이런 말을 남기고 결국 한니발은 지하 통로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한니발을 잡았다고 의기양양하게 로마로 귀환한 티투스에게 돌아온 것은 한니발의 예언대로 로마 원로원 의원들의 비난뿐이었다. “아무리 적이지만 역사적으로 존경을 받았고, 이제는 이빨 빠진 늙은 호랑이 신세가 된 한니발이 조용히 여생을 보내게 두어도 될 텐데 막다른 골목까지 몰아가 자결하게 만든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지 않은가?”

 

결국 적이었던 한니발조차 포용한 스키피오 장군과 대조되면서 티투스는 마치 한니발을 무덤까지 쫓아가 욕을 보인 파렴치한 인물로 평가받으면서 계속되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이 일로 인해 로마 역사에서 티투스의 흔적은 결국 사라지게 된다.

 

올바른 과거 청산에는 참다운 화해가 동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과거 청산'에만 급급하여 그 명분이 우리로 하여금 과거에 묶여 미래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족쇄'가 된다면 우리는 또 다른 '티투스'가 되는 것이 아닐까?

 

2020년은 코로나 19로 인한 팬데믹(Pandemic)으로 전 세계가 악전고투하는 가운데 우리는 보수와 진보의 대립 구도 속에서 전체주의적인 '적과 동지'로 양분되는 망국적 보혁(保革)갈등을 겪으면서 선()과 악()의 대립으로 가는 극한적인 상황마저 경험하는 한 해를 보냈다.

 

이 같은 보혁갈등은 이미 정상 범위를 벗어났으며 이로 인한 위기의식이 적지 않다. 보수와 진보가 각기 자기주장이 절대적이고 만능이라는 편견은 버리고, 보수와 진보의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때로는 선의의 경쟁자로, 때로는 거국적인 협력의 동반자로 인식을 바꿔야 한다.

 

정말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도 이제 세밑으로 접어든다. 2021년 신축(辛丑)년은 적장이었지만 상대를 배려한 스키피오 장군과 로마 원로원처럼 우리도 사회, 경제 및 정치세력 간의 타협과 화합, 포용과 관용에 기초한 상생 분위기 속에서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계봉 선임기자

yeogb@naver.com

 


편집부 기자
작성 2020.12.11 12:32 수정 2020.12.11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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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