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우린 모두 코스미안으로서 우화(宇話)를 써보리라

이태상

 

진실(眞實)이란 없다. 감각(感覺)의 인지(認知)만 있을 뿐이다. There is no truth. There is only perception.”

프랑스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 1821-1880)가 남긴 말이다. 코로나로 시작해 코로나로 저무는 2020년에도 지난 201710월 미국 할리우드 유명 영화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 (Harvey Weinstein, 1952 - )의 성추문 폭로로 촉발된 전 세계적인 미투 운동(Me Too movement - #Me Too) 여파(餘波)에 한국에서도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한국영화계를 떠나 해외로 떠돌던 김기덕 영화감독이 코로나 팬데믹으로 숨을 거두었다.

 

2018년엔 명망 높던 고은(高銀: 본명은 高銀泰, 1933 - )시인이 성추문에 휩싸여 그의 인격과 명예가 추락하고 말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 역사 유사 이래, 수많은 성인(聖人) 성자(聖者) 위인(偉人)으로 존경받아 온 인물들도 그들의 어두운 이면(裏面)이 후세에 밝혀져 오지 않았는가. 그 대표적인 인물 두 사람의 예를 들어보리라.

 

영어로 성상파괴자를 아이코너클래스트(iconoclast)라 한다. 이런 성상파괴자의 시각으로 보는 것도 좋지만 안데르센 동화 황제의 새 옷에 나오는 어린애나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의 시각으로 세상에서 성인(聖人)’으로 추앙(推仰)받는 인물들 중 한 명인 톨스토이(Leo Tolstoy1828-1910)의 삶을 한번 살펴보자.

1862년 그는 서른네 살 때 18세 소녀 소피아(Sophia)에게 청혼한다. 수백 명의 농노가 딸린 엄청나게 큰 농토의 상속자이지 만, 톨스토이는 노름으로 그 유산 대부분을 탕진한다. 노름하기에 바빠 치과에도 가지 않아 치아도 거의 다 빠져버린 상태였다. 결혼식을 앞두고 그가 창녀들과 농노들 심지어는 장모 될 사람의 친구들과 성관계한 일들을 기록한 그의 일기장을 신부가 꼭 읽어 보라고 고집한다. 부부 사이에는 어떤 비밀도 있어서는 안 된다며 두 사람은 앞으로 서로의 일기장을 봐야 한다면서 말이다.

따라서 가정불화로 언쟁이 계속되는 결혼생활이었지만 톨스토이는 문인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고 소피아는 애를 열셋이나 낳으면서도 남편의 모든 원고를 전부 다 손으로 필사해 낸다. 1877년경부터 톨스토이는 예수의 가르침을 엄격히 따른다고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이후 블라디미르 체르트코프(Vladimir Grigoryevich Chertkov 1854-1936)를 만나면서 소피아를 저버리고 이 젊은 사기꾼 제자의 노예가 되어 가출한다. 191082세로 레오 톨스토이는 한 시골역의 초라한 농가에서 폐렴으로 사망한다.

소피아(Sophia Tolstaya1844-1919)는 온 인류를 위한 톨스토이의 사랑이 그의 처와 자식들에게는 미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소피아의 말이 어디 톨스토이에게만 해당하는 것일까. 석가모니도 처자식 버리고 가출하지 않았나. 예수나 소크라테스도 비슷하다. 온갖 사상이나, 종교, 그리고 가문의 영광이나 문학과 예술을 핑계로 사랑하는 가족을 버리고 알콜이나 마약 중독자가 되는가 하면 자살하는 테러리스트까지 있지 않은가.

소우주인 나 자신, 내 가족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면서 어찌 인류와 우주 만물을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눈에 안 보이는 신()을 섬기기 전에 눈에 보이는 사람부터 사랑해야 한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가 큰일에도 충성할 수 있다 하지 않나. ‘추일사 가지(推一事可知)’라고, 하나를 보면 전부를 다 알 수 있다. 그래서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이고 수기치인(修己治人)’이라 하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간디(Mahatma Gandhi 1869-1948)는 성인이었나? 우리가 성인으로 떠받드는 간디의 비서 마하데브 데사이(Mahadev Desai 1892-1942)가 남겼다는 시() 한 구절을 음미해보자.

하늘에 있는 성인들과 같이 산다는 건
더할 수 없는 영광이요 지복천국이나
한 성인과 지상에 함께 사는 일이란
전혀 다른 이야기이어라

인류사에 남긴 간디의 위대한 족적에도 불구하고 한 인간으로서의 처신에는 약점도 많았던 것 같다. 인도의 불가촉 천민에 대한 그의 고답적인 고정관념과 피상적인 편견은 물론, 그의 조카 손녀들 아바와 마누에게 가한 성추행은 오늘날의 '미투(MeToo)' 관점에서 볼 땐 천하의 만행으로 고발당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내가 전에 런던대에서 잠시 법학을 공부할 때 인도에서 온 한 법학도로부터 간디의 두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들 중 한 명은 자살했고 다른 하나는 알콜중독자였다는 말을 듣고 간디가 정말 훌륭한 인물이었을까 하는 회의가 생겼었다. 또 내가 젊었을 때 어느 잡지에 실린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 1878-1938) 선생의 글을 읽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 平天下)란 말을 되새겼었다. 그가 아내에게 쓴 옥중 편지에서 자신이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는 대의명분(大義名分)을 내세우지만 한 남편, 한 아빠로서 인격(人格) 실격자(失格者)요 인생(人生) 낙오자(落伍者)라고 실토(實吐)하면서 극심(極甚)한 자괴지심(自愧之心)에서 쓴 글이었다.

예로부터 농사 중에 '자식 농사' 이상 없다 하지 않았나. 미국 독립 때부터 최근까지 수백 가문을 추적 조사한 한 보고서에 따르면 가난해도 사랑과 헌신의 지극정성으로 키운 자손들이 대성하고 큰 재산만 물려준 자손들은 잘못되더란 사실을 통계로 증명한 연구 보고서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장단점은 있는 법이고 약점 또한 있다. 그래서 누구나 성인도 될 수 있고 동시에 속인 또는 죄인도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자고로 외화내빈(外華內貧)이라고 겉이 화려할수록 속이 빈약(貧弱)한 법이다. 외화에 연연(戀戀)하지 말고 내실(內實)을 기할 일이다. 그래서 서양 속담에서도 '네 삶이 바로 네 인생 (Life is what you make it to be)'이라고 하는 것이리라.

 

Great or Crazy?

 

In English, an iconoclast means (sacred) image-breaker. We may look at people, especially great ones, with such an iconoclastic eye. But let’s look at some, whom we are told to worship, with the eye of the eye of the fictional child in The Emperor’s New Clothes, a short tale written by Danish author Hans Christian Andersen(1805-1875), or The Little Prince, a novella, the most famous work of French writer, poet, and pioneering aviator Antoine de Saint-Exupery(1900-1944), voted the best book of the 20th century (it should be, in all centuries and not only) in France (but in the whole world), for a totally different perspective.

 

In 1862 at the age of 34, Tolstoy (Leo Tolstoy 1828-1910) proposed to the 18-year-old Sophia. Although he inherited a huge farmland with hundreds of serfs, he squandered most of his inheritance. Too busy gambling to go to a dentist, he lost most of his teeth.

 

Just before their wedding, he insisted that his bride read his diary about his sex life with prostitues and serfs and even with some friends of his mother-in-law-to-be, arguing that there shouldn’t be any secret between husband and wife, and that therefore they should read each other’s diaries.

 

And consequently, there were frictions between them; still Tolstoy went on to become a world-famous writer while Sophia gave birth to 13 children and hand-wrote all his manuscripts.

 

From around 1877, Tolstoy became a vegetarian, claiming that he was strictly following the teachings of Jesus. Thereafter, captivated by his “false” disciple Vladimir Chertkov (1854-1936), Tolstoy left home and died from pneumonia, aged 82, at the railway station of Astapovo, a remote Russian village.

 

It’s no wonder, then, if his great love for the whole humanity didn’t reach his wife and children. Would this be a case of Tolstoy alone? Didn’t Buddha and Jesus leave their family home, too? Wasn’t it a bit like that with Socrates? Aren’t there even today people who abandon their families and their own lives for irrational ideologies or in the name of Allah/God? Aren’t there so many artists becoming alcoholics or drug addicts? What’s the point, one has to wonder” Isn’t it?

 

Let’s muse over this verse written by Mahadev Desai(1892- 1942), Mahatma Gandhi(1869-1948)’s personal secretary:

 

To live with saints in heaven

Is a bliss and a glory

But to live with a saint on earth

Is a different story

 

Mohandas Gandhi took a celibacy vow, which he famously and publicly held for years, but privately his close associates documented that he conducted regular “celibacy tests,” especially with two teenage grandnieces under his guardianship.

Reports from sources such as his personal secretary, who quit in protest over the issue, tell how he nightly requested his 17-year-old grandniece Abha and his 18-year-old grandniece Manu to sleep with him-simultaneously and naked nightly. The story is a tragic one of psychological and physical molestation perpetrated against vulnerable young girls with no option for escape. Articles in The Wall Street Journal and The Independent published in 2011 and 2010 respectively, and an article from 2013 by Indian feminist Rita Banerji, detailed Gandhi’s bizarre experiments with sex.

 

The key point they contain is that the Hindu preacher and religious idol sexually abused his young relatives for years and, additionally, forbade the followers in his ashram to sleep with their wives but required the wives to sleep with him-again, naked.

 

Roberts, Andrew. “Book Review: Great Soul.” The Wall Street Journal, March 26, 2011.

 

How on earth could one really and truly love and respect anyone or anything, in the world before one does love and respect oneself, first, as a Cosmian, that is, the very micro-cosmos of the macro-cosmos, the Cosmos itself?

 

인생예술이 뭐냐고 누가 묻는다면 이 물음에 나는 ()를 닦는 것이라고 답하고 싶다. 그 실례 하나 들어보리라. 나에게는 괴짜 형님이 한 분 있었다. 나보다 열 살 위인이 명상(明相) 형님은 일정시대 평안북도 신의주고보를 다니다가 말고 스스로 도 닦는 길에 나서 팔도강산 방방곡곡으로 여러 스승을 찾아다녔다.

 

깊은 산 속 굴에 들어가 단식 아니면 생식을 하면서 여러 날 여러 밤 묵상에 잠기기도 하고 방랑하는 옛날 김삿갓처럼 떠돌아다니면서 병든 사람들 고쳐주기도 했다. 그가 처방하는 약이래야 별것도 아니었다. 폐병 결핵 또는 해수병 환자에게는 솔잎은 뜯어다 항아리 꿀물에 담가 보름쯤 뒀다가 그 쩌르르한 사이다 같은 물을 공복에 마시게 했다.

 

이런 약을 써서 병이 낫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는 언제나 그가 병을 고쳐주는 게 아니고 환자 자신이 고치는 것이라 했다. 그가 처방해 주는 약재의 효험을 믿는 사람에겐 약효가 있고 믿지 않는 사람에 겐 없다고 했다.

 

그리고 사람 몸은 자연치유가 가능한 자구력(自救力)을 갖고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손가락을 베면 피가 좀 나다 저절로 아물지 않느냐며 그 어떤 의사도 어느 누구의 병을 고쳐주는 것이 아니고 환자 스스로 고치도록 좀 도와줄 수 있을 뿐이라 했다. 다른 사람들한테서는 도사님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홀어머님 이하 우리 형제들 눈에는 집안 망신이나 시키는 미친놈일 뿐이었다. 장발에다 거지처럼 누더기옷을 걸치고 가끔 집에 들르면 동네가 창피하다고 어머니는 야단이셨다.

 

정신 좀 차리고 농사나 지으면서 제발 사람처럼 살아보라고 집안 논밭전지 다 주고 장가까지 보냈으나 농사일은 색시에게 맡기고 여전히 떠돌이 신세였다. 그야말로 예수가 말한 것 같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않고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삶이었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형이 게으르고 일하기 싫어 도 닦는다는 핑계로 그렇게 산다는 거였다. 하기는 신부, 목사, 중들도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만. 왜냐하면 남들은 다 애써 일하며 땀흘려 먹고 사는데 그들은 쉽게 입으로 하느님, 예수, 석가모니 이름이나 부르면서 기도 팔아먹고 사는 셈이니까.

 

어머님 말씀에 철저히 세뇌되어서였는지 나도 도 닦는 형님을 사람 취급하지 않으면서도 간혹 만나는 기회에 그의 도깨비 같은 소리에 흥미를 조금은 갖게 되었다. 내가 국민학교(초등학교) 다닐 때 하루는 이 도깨비 같은 형님 보고 축지법(縮地法)이란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형님은 나를 조그만 시냇가로 데리고 갔다. 냇물 폭이 2미터도 넘어 보였다.

 

태상아, 너 이 냇물 건너뛸 수 있겠니?” 형님이 물으셨다. 못한다고 대답하자 형님이 나를 데리고 같이 냇가로부터 뒷걸음 하다 보니 냇물 폭이 시각적으로 점점 좁혀져 갔다. 그러다 그 폭이 완전히 없어진 듯 물줄기가 하나의 은빛 흰 선처럼 보이는 지짐까지 가서 너 저 선()은 뛰어넘을 수 있지?” 형님이 또 물으셨다. 물론이라고 대답하자 그럼 됐다. 네 머릿속에 저 하얀 선을 고정시키고 그 선만 보면서 물가로 달려가다 뛰어넘거라. 물가에 가까이 갈 때 네 눈에 냇물 폭이 점점 다시 넓어지는 걸 보지 말고 네 머릿속에 박힌 그 선만 보거라.”

 

이렇게 일러주셨지만, 그 당시에는 형님의 말씀이 엉터리 같아 나는 형님이 시키는 대로 해보지도 않았다. 훗날에 와서 생각해 보니 형님이 하신 말씀을 수긍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도 한 가지 정말 이상한 것은 한국동란이 나기 꼭 일 년 전에 형님이 집에 들러 일 년 후 큰 난리가 날 테니 양식을 좀 미리 땅속에 묻어두라고 했다. 어머니는 미친놈 미친 소리한다고 형을 나무라신 끝에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 양식을 준비했다가 전쟁 때 양식 걱정을 안 할 수 있었다.

 

전쟁 때는 산속 굴에 있다가 북한 인민군에게는 남한의 첩자로, 남한 국군에게는 북한의 빨치산으로 오해받아 이가 다 빠지도록 매를 맞기도 하고 누가 뭐라 조롱하고 욕을 해도 그 아무도 나무라거나 탓하지 않으셨다. 형님도 마치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생활신조대로 아무에게도 악의(惡意)를 품지 않고 모두에게 자비심(慈悲心)’으로 대하셨던 것 같다.

 

또 한 가지 불가사의(不可思議)한 것은 우리 가족이 1972년 초 한국을 떠나 영국에 가 살다가 어느 날 밤 꿈에 나는 형님을 봤다. 꿈에서도 생시 때처럼 온다 간다는 말 없이 형님은 왔다 가셨다. 그런 꿈을 꾼 다음날 나는 형님의 부고를 받았다. 나에게 작별인사하러 꿈에 형님이 나타나셨나 보다. 언젠가 형님이 조계사에 들러 청담 스님과 더불어 여러 가지 토론을 하셨다고 한다.


한참 열띤 토론 끝에 더 이상 말로 이야기가 될 수 없자 형님이 한 스님보고 수고스럽겠지만 뒷간에 가서 똥물 한 바가지만 퍼갖다 달라 하시고는 바가지에 담긴 똥물을 천천히 쭈욱 다 들이키셨단다. 모르긴 해도 그 자리에 있던 스님들은 하나같이 옛날에 원효 대사(617-686)께서 해골바가지에 고인 빗물을 마시고 크게 깨달음을 얻으셨다는 일화를 생각하게 되었으리라.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도 악()도 없다. 사람의 생각이 선도 악도 만든다. There is nothing either good or bad but thinking makes it so.’라고 했다는 것처럼 형님도 세상에 깨끗한 것도 더러운 것도 없다는 것을 말 대신 행동으로 역설하신 모양이다.

 

The Artist of Life

 

While we were living in England in 1972, in my dream one night, My brother Myung-Sang, who was ten years older than me, came and went without saying much as usual. The next day I got the news that he passed away. It must have been a ‘goodbye’ from him in my dream.

 

Myung-Sang dropped out of school in his adolescence and went on a life-long journey, seeking after ‘the way’ or ‘the truth,’ whatever it might mean.

 

From then on, he was never concerned what to wear, what to eat, or how to make a living. He wandered around the country, always on foot, visiting different spiritual teachers and reading books about different philosophies and religions of the world.

 

He stayed in caves of the mountains, for days, meditating and nibbling uncooked grains and pine nuts. Like a tramp, he was dressed in rags with his hair grown long, a disgrace to his family. To his widowed mother, he was simply a crazy and lazy bum, irresponsible to no end but not quite irredeemable. So she got him married so he could have a family and wake up to reality on earth, off from his highfalutin mumbo jumbo, once and for all. But it was to no avail, and he was vagabond all the same, spreading words of love and peace.

 

Although he was written off as good-for-nothing by his family, he was regarded by some people as a guru and a healer. He was even credited for having cured some incurable, by prescribing herbal medicine, such as pine needles brewed in honeyed water for coughing, asthma, pneumonia, and tuberculosis. But he was saying that whatever he suggested worked only for those who believed in its efficacy, and that our body has the built-in self-healing mechanism.

 

Although he was deemed and dismissed as insane, I was curious about what he was saying about many things, especially about ’chukjipob-축지법 in Korean alphabet and 縮地法 in Chinese characters, ‘a method of making a long distance close in by the magic of contracting space.’

 

One day, I asked him how I could do it. He took me to a small brook. Holding his hand as I walked backward from the water, the width of the stream grew narrower to the point of appearing to be a silvery line. Then I was told to run toward the edge of the water, and then to jump. He forewarned me that as I came to closer to the water, its width would look wider again.

 

“Don’t look at the widening stream of water. If you just fix the image of that silvery line in your head and focus on it, you can easily jump over the brook.”

 

At that time, I didn’t believe him and I didn’t even try.

 

Once he was debating metaphysical issues with top-ranking Buddhist monks at Jogyesa, the head temple of Korea. When they got to the point beyond which they couldn’t discuss further with words, he politely asked one of the monks to fetch a gourd-full of night soil from the outhouses. When his request was obliged, he swallowed it to the last drop. All those Buddhists were reminded of the well-known episode of Wonhyo, I was told later by one of the monks who had participated in the debate.

 

The story ‘Water in a Skull’ goes like this:

 

About fourteen hundred years ago, there was a famous monk named Wonhyo(617 AD-686 AD) in Korea. He thought he would become a better monk if he went to China to attain more knowledge about Buddhism. He embarked on a long journey to China with his fellow Seeker/Student, Euisang(625 AD-702 AD).

 

He continued his journey on foot and, one day, he was passing through one region in Baekje (one of the three kingdoms: Koguryo in the north, Baekje in the middle and Silla in the south of the peninsula). They faced heavy rain, so they sought some shelter. They found a very safe looking cave and decided to stay the night inside the cave.

 

While he was sleeping, Wonhyo woke up and felt extremely thirsty. He was searching in the darkness for something to drink. He found water in a gourd and drank it without hesitation. The water was cool and refreshing, and quenched his thirst. He fell asleep again.

 

Next morning, Wonhyo and Euisang woke up and were frightened by the skulls scattered around them. The shelter they had spent one night in was not a cave but an old grave. Also Wonhyo realized that the fresh water in the gourd that quenched his thirst was actually some stagnant water in a skull. The moment he realized this, he threw up.

 

Through this experience, Wonhyo attained a big enlightenment about how important one’s mind was. He then reflected and realized that he had been trying to become a good monk by attaining more knowledge about Buddhism. Wonhyo then cancelled his plan to study in China and abandoned his position as a monk. He became a laity again and reverentially devoted himself to meditation throughout his entire life. He gave inspiration to many laity.

 

My brother Myung-Sang must have paraphrased by his action, not in words, what William Shakespeare (1564-1616) said:

 

“There is nothing either clean (good) or dirty (bad) but thinking makes it so.”

 

I should add that no matter how ill-treated by some people, I have never seen my brother Myung-Sang speak ill of anybody. I believe that he literally practiced all his life this famous phrase: “With malice toward none, with charity for all,” as quoted from Abraham Lincoln’s second inaugural address.

 

One thing I still cannot comprehend by any sense and wits is how he could have predicted the outbreak of the Korean War exactly one year ahead of time. One day he came to our mother to tell her to stock up some extra supply of provisions in preparation for the hard times to face. After dismissing his warning as a ‘madman talk,’ she nevertheless prepared just in case. We were surprised that it indeed did happen as he had pre-warned. What would anyone say about this? Was it a kind of prophecy, or a case of clairvoyance?

 

Perhaps one must understand, stand under, or underlook, look under, to realize that there are much more than what’s audible, tangible, and visible to our senses. We may call them supernatural phenomena, but they must be really and truly extra, or rather ultra-scheme of things.

 

그러고 보면 세상에 절대 적인 선도 악도 없는데 사람이 제멋대로, 편리한 대로, 형편 따라 선이니 악이니 하며 아전인수식(我田 引水式)으로 억지 부리고 우겨온 것 같다. 특히 서양의 기독교에서 악마니 천사니, 흑이니 백이니, 선민이니 이방인이니, 기독교 신자가 아니면 죄다 구원받지 못하고 영원히 저주받을 이교도로 낙인찍는가 하면 하나님이 인간을 위한 제물로 다른 동식물 자연 만물을 창조하셨다느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천하의 얌체 같은 소리를 벌써 몇천 년째 해 오고 있지 않은가?


기독교인들이 식탁에 앉아 일용할 양식을 주셨다고 하나님이나 주님께 감사 기도할 때 식탁에 오른 제물들 입장에서 보면 이 얼마나 가증스러울까. 이는 마치 해적이나 강도, 강간범들이 실컷 노략질, 강도질, 계집질해 놓고, 저희들 운수 좋았다고 저희들이 섬기는 귀신한테 고사 지내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어디 그뿐이랴. 서양 사람들이 예수의 상징이라는 양고기를 즐겨 먹으면서 동양 사람들이 개고기 먹는다고 야만이니 동물학대니 떠들어 대는 것이나, 저희들이 믿는 것은 종교요 신앙이고, 다른 사람들이 믿는 것은 사교(邪敎)나 미신(迷信)이라 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프랑스의 작가 빅토르 위고(Victor Hugo1802-1885)가 쓴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1862)’의 주인공 장발장(Jean Valjean) 같이 배고파 빵 한 쪽 훔쳐 먹어도 평생토록 벌 받는 세상에 전 세계 땅덩이를 거의 다 훔치고 약탈하며 천하의 못된 짓은 다 해온 자들이 대속(代贖)한다는 예수의 피로 속죄(贖罪)받아 지옥에 안 가고 천당 가겠다는 발상부터가 너무너무 뻔뻔하고 가소로운 서양사람 기독교인들의 육갑아닌가?


그보다는 우리 동양의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의 이치가 훨씬 더 자연스럽고 무리가 없는 것 같다. 어두운 밤은 밤이고, 밝은 낮은 낮이지, 어떻게 어둠은 악이고 빛은 선이라 할 수 있으며, 산은 좋고 계곡은 나쁘다 할 수 있나? 그래서 하늘 천() (), 천국(天國)이니, 땅지 지() 자 지옥(地獄)이란 말이 생겼는지 몰라도 남자는 선이고 여자는 악이란 말인가? 세상에 어둠이 없으면 빛도 있을 수 없고, 여자가 없으면 남자도 있을 수 없지 않은가?

둘이 서로 보완하고 서로에게 절대불가결인 동전의 양면 격인데 어쩌자고 이쪽 아니면 저쪽, 나 아니면 남, 백이 아니면 흑이라 하는가? 이런 유치한 억지놀음인 서양육갑골빈당처럼 맞장구치지 말고 우리 동양 고유의 음양육갑떠는 것이 천만 배 낫지 않을까? 그리고 고양이가 쥐 사랑하듯 이웃사랑하는 대신 이웃을 존중해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이 창조되었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인간 특히 서양의 백인, 그 중에도 유태인들이 저희들 형상대로 저희들 하나님 여호와를 만든 것임이 분명하다. 저희들의 단군신화를…….


어디 또 그뿐이랴. 우리 가운데 가장 천대받는 사람으로 창녀가 있다. 하지만 그런 창녀조차 예수의 처(?)가 아니면 벗이 아니었나. 신약성서 누가복음에 나오는 막달라 마리아(Mary Magdalene) 말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저지른 이후 필설로 다 형언할 수 없는 잔악무도(殘惡無道)하고 천인공노(天人共怒)할 남성들의 만행(蠻行)이 정복이니, 승리니 하는 영광된 훈장으로 장식돼 왔다. 창녀는 몸을 판다기보다 서비스를 제공한다. 창녀의 서비스는 다른 많은 직업적인 서비스보다 솔직하다. 눈가리고 야옹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선적(慈善的)이고 자비(慈悲)롭기까지 하다. 예를 들어 직업적인 날강도, 날도둑, 날사기꾼이라 할 수 있는 일부 정치인, 실업인, 종교인이 부리는 농간에 비하면....

파는 것으로 말할 것 같으면 창녀나 장사꾼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좋든 싫든 뭔가를 팔아먹고 산다. 육체노동이든 정신노동이든 감정노동이든 노동을 파는 것이 노동자라면 예술을 파는 것이 예술인이고, 법률 지식이나 의료기술을 파는 것이 변호사나 의사라면 하느님이나 귀신 또는 성인, 성자, 예수, 석가모니 등의 이름을 파는 기도 장사꾼이 종교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독교와 천주교에서 성찬식(聖餐式)으로 예수의 살과 피를 상징한다는 빵과 포도주를 나누지 않는가? 그렇다면 예수야말로 인류의 대속(代贖)을 위해서이건 아니면 그의 과대망상증 (誇大 妄想症)에서였건, 또는 예수 자신의 꿈보다는 기독교인들의 이기적인 해몽(解夢)이든 간에 어떻든 제 몸을 그 누구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오래도록 팔아 온 남창 중의 남창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 단군할아버지와 곰할머니의 후손이든 아니면 아담과 이브의 자손이든 또는 닭의 알에서 태어났다는 신라태조 박혁거세의 후예이든 숫처녀 동정녀(童貞女)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는 예수의 제자들이든, 그 어떻든 간에, 우리 모두 따져보면 다 일종의 창녀나 남창들이 아닐까?

다만 보통 사람들은 그 속살과 피(붉은 피든 흰 피든 간에)만 즐기는데 성인(聖人 아닌 性人)들은 그 껍데기 털까지 좋아하는가 보다. 예수는 눈물로 그의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은 막달라 마리아의 죄()를 사()하여 주었다 했고, 한때 우리 사회에 물의를 빚었던 용화교 교주(敎主) 서백일(본명 한춘 1888-1966)은 수많은 여신도들을 농락(籠絡) 겁탈(劫奪)하고 그들로부터 뽑은 음모(陰毛)로 만든 음모방석을 즐겨 깔고 앉았었다 하지 않는가?

우리는 모두 우주 나그네 코스미안으로서 신화(神話)도 인화(人話)도 아닌 우리의 우화(宇話)를 써보리라.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1230ts@gmail.com

 

전명희 기자
 


전명희 기자
작성 2020.12.25 10:47 수정 2020.12.2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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