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세계 각국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가운데 앞으로는 ‘백신 여권(vaccine passport)’이 있어야 해외여행이 가능한 시대가 올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에서는 제주도의 경우 코로나19 진단검사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는 향후 국내 여행에서도 백신 예방접종을 해야 원하는 여행지를 방문할 수 있는 상황으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업종 중 대표적인 곳이 여행업이다. 그래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여행은 새로운 방향을 모색 중이다. 그렇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여행은 어떻게 진행될까?
일단 해외여행은 당분간 막막할 것이다. 해외여행은 이제 목숨을 걸어야 하는 모험일 수 있다. 그렇다면 당장 어디로 가야하는 것인가? 일단 지금은 국내가 유일하다. 단체로 구성된 가이드 관광은 대폭 줄어들고, 자유 여행이나 개인 니즈(needs) 맞춤형 상품들이 다양하게 개발되는 추세다. 개인 맞춤 여행 서비스는 사회적 거리 두기에 호응하면서 자유여행의 낭만은 그대로 누릴 수 있으며,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의 번거로움과 불편은 줄여주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러한 트렌드는 해외여행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높고 이에 따라 여행경비는 지금보다 훨씬 비싸질 전망이다.
영종도 마시안 해변 송림 아래 주차된 SUV 차량 지붕에서 텐트를 내린다. 버튼을 누르고 기둥 몇 개를 고정하자 금방 아담한 숙소가 완성된다. 어둠이 내리는 호젓한 바닷가의 초저녁, 소나무 숲속에 자리한 차는 이내 스며든 어둠에 파묻혀 숲과 하나가 되고 텐트에서 새어나온 랜턴 불빛은 등대마냥 사위를 밝힌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면서 호젓한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차박(車泊)’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따로 예약할 필요도 없고, 숙박비도 따로 없다. 마음에 드는 곳에 주차한 후 자동차의 뒷자리를 눕히고, 그 위에 에어매트를 깔면 잠자리가 만들어진다. 차량과 잇는 도킹텐트를 펴서 차에서 자고 텐트에서 쉴 수도 있다. 조금 번거롭거나 불편할 수 있지만 오히려 아늑하고 달콤한 낭만까지 선사한다. 차박의 인기가 폭발하는 바람에 코로나19 불경기에도 SUV 자동차와 차량 튜닝업체, 캠핑 관련 업계는 나 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코로나 시대'는 생태여행, 나아가 생명관광이 당면 과제다. 이런 여행의 최적지는 바로 숲이다. 코로나로 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 하면서 활력으로 재충전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비가 내리는 날 우산 쓰고 걸어도 좋다. 싱그러운 숲속 산림욕장에서 '숲캉스'를 즐길 수 있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속까지 탁 트인다.
국내 곳곳에 산재해 있는 자연휴양림은 번잡하지 않고 아늑하다. 숲이 울창해 그늘이 넓다. 맑은 바람에 실려 오는 나무 냄새가 온몸 구석구석을 활력의 음이온으로 채워준다. 숲에서 서성거리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보약 같은 곳이다. 귓전에 들리는 풀벌레 소리, 새 소리도 감미롭다. 편의시설과 숙박 시설도 단연 으뜸이다. 콘도식 산림휴양관과 통나무로 지은 원룸형 숲속의 집, 아름다운 소나무 숲에 복층 구조의 캐빈하우스와 카라반도 있으며, 오토캠핑도 가능하다. 텐트를 칠 수 있는 야영데크도 넉넉하다. 숲속 도서관과 애완견 동반이 가능한 휴양림도 있으며 금상첨화로 가격조차 저렴하다.
영국 BBC 방송의 최근 기사에 의하면 미래의 휴가는 집에서 보내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영국 비영리 여행사 프레시아이즈의 창업자 앤디 러더포드는 "앞으로는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덜 다니게 될 가능성이 높다. 소위 '스테이케이션(staycation, 집이나 집 근처에서 보내는 휴가)'이 새로운 기준이 될 수도 있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전 세계적인 전염병이 창궐한데다가 그린 테크놀로지와 기후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향후 크루즈선이나 스키 여행, 장거리 비행 등은 그 매력을 상실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집콕’, ‘방콕’에서의 여행은 ‘랜선투어(LAN線tour)’가 대표적이다. 비대면 여행이자 대안 여행인 랜선투어는 가이드가 화상회의 방식으로 소비자에게 여행상품을 제공한다. 해외 여행지 또는 국내 실내 스튜디오에서 실시간으로 진행되는데, 그랜드 캐년 새해 일출부터 스페인 피카소미술관 투어, 생활미술 드로잉까지 여행지와 테마도 다양하며, 인원수에 구애받지 않고 동시 참여가 가능하다. 최근 국내 여행사가 이 상품을 론칭했는데 현재까지 소비자 반응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여행을 뜻하는 영어 ‘travel’은 라틴어로 고통, 고난을 뜻하는 ‘travail’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여행의 정의는 즐거움과 여유로움으로 표현할 수 있지만 고대의 여행은 힘들고 괴로웠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고대인들은 한층 더 성숙된 삶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pandemic)은 여행의 개념을 ‘travel’에서 ‘travail’로 회귀시켰지만, 이로 인해 일상의 삶이 얼마나 절실했던가를 깨닫게 되고 낯설고 새로운 환경에서 우리 자신을 더욱 성숙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