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석의 고전 여행] 작은 성의로 큰일을 이루다

부채가 전쟁요청의 수단

 

 

이순신은 전쟁 중 조정의 고관들에게 안부를 묻거나 인사를 할 때 반드시 부채를 만들어 선물로 보냈다. 평소에 그들과 친분을 쌓아 유사시애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난중일기를 보면, 부채에 관한 내용들이 종종 보인다. 갑오년 710일 순변사에게 별선(別扇) 15자루와 기름 먹인 부채(油扇) 10자루, 옻칠한 부채(漆扇) 5자루를 보냈고, 병신년 79일에는 서울 가는 사람이 가지고 갈 부채를 만들 대나무를 채벌할 일로 박자방(朴自邦)을 남해로 보냈다.

 

<부채를 보낸 목록>


백첩선(白貼扇, 큰부채) 358 자루

별선(別扇) 453 자루에서 710일 순변사에게 15자루를 보냄.

기름 먹인 부채[油扇] 590자루에서 710일 순변사에게 10자루를 보냄.

옻칠한 부채[漆扇] 58자루에서 5자루를 순변사에게 보냄.

부채 50자루에서 10자루를 순변사에게 보냄.


-난중일기갑오년 1128일 이후 기록

 

정유년 어느 날 전라도 절도사 황신(黃愼)이 통제사 이순신을 한산도에서 만났는데, 이순신이 천막집(棚家) 수십 칸을 짓고 공인(工人)들을 불러 모아 기구들을 만들고 있었다. 황신이 어디에 쓰려고 그렇게 만듭니까?”라고 하자, 이순신이 웃으며 말하기를, “인사를 하려는 것뿐입니다.”라고 하였다. 황신은 남쪽의 일본군을 정벌할 때에 중앙관료들에게 선물하려는 뜻을 알고서 한바탕 웃었다. 이순신은 항상 이러한 노력으로 조정 대신들과 친분을 유지함으로써 전쟁대비와 함께 자신을 음해할 것을 대비해 나갔다. 윤휴는 이에 대해 이것이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해치려는 자가 나라에까지 미치게 할 것을 염려해서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중국 서진(西晋)시대 때 병법가 두예(杜預)는 자신을 방해하는 세력에 대비하기 위해 항상 대신들에게 선물을 보냈다. 그 후 진남대장군(鎭南大將軍)에 임명된 뒤 형주(荊州)의 군사들을 지휘하여 큰 어려움 없이 오()나라를 평정할 수 있었다. 이순신도 두예처럼 작은 선물로 나라를 위한 큰일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통제영에서 수군을 지휘하면서 조정 대신들에게 부채를 선물함으로써 전쟁 때마다 급한 업무를 원만히 수행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 다산 정약용은 이순신이 권문 귀족에게 선물한 것은 지위를 보전하여 왜적을 평정하는 공을 이루고자 한 것이고, 그 뜻은 결코 아첨하는데 있지 않았다.(목민심서》〈장작(匠作))”고 평가했다. 이순신은 통제사의 직위를 보전하여 왜적을 평정하고자 했을 뿐이며, 그 목적은 오직 국사를 위한 일이었기에 오히려 감동할 일이다. 성호 이익(李瀷)공인들을 모아 부채 등을 만들어 두루 경()과 재상에게 선물하고, 마침내 중흥의 공을 이루니, 이는 천고토록 지사(志士)들에게 눈물을 흘리게 한다.”고 하였다.(성호사설<경사문>) 이순신의 이러한 행위가 간혹 사익을 위한 일이라는 오해를 받았겠지만, 그에게 있어서 부채란 오직 상대에게 예를 표하는 수단이자 전쟁의 요청을 알리는 홍보수단이었던 것이다.

 

 

노승석

이순신 연구가(교감완역 난중일기 저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18.10.16 15:15 수정 2018.10.16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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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