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찬의 두루두루 조선 후기사]
제35화 왈짜와 불한당
예전에는 ‘불한당(不汗黨) 같은 놈’이라는 말을 많이 썼습니다. 불한당은 풀이 그대로 땀을 흘리지 않고 편히 살려는 무리를 말합니다. 이들은 요즘 볼 수 있는 조폭처럼 성품이 포악하고 완력으로 돈을 갈취하며 호색하는 무리로 공동체에 해를 끼쳤습니다. 이들의 존재는 각종 야담이나 기록 속에 생생히 살아있는데 기생방, 시장, 포구에서 활동하는 무리와 거지, 땅꾼 그리고 검계 같은 비밀조직의 일원이었습니다.
먼저 기생에게 붙어사는 기둥서방들은 궁궐의 잡다한 일을 도맡아 하는 액정서의 별감이었습니다. 이들은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옷차림과 장식품으로 위세를 뽐내면서 유행을 선도했습니다. 거문고나 노래를 좋아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주먹을 휘두르며 협객을 자처하기도 했습니다. 약자를 돕기도 했지만, 구역을 두고 패싸움도 하는 조폭들이기도 했습니다. 사치와 유흥을 즐기는 이들은 중간에 개과천선하지 않으면 부모가 물려준 재산을 도박이나 기생에게 탕진하다가 비참한 노년을 보냈습니다.
물건매매가 왕성한 마포나 종로의 시전에 기생하는 무리도 있었는데 이들은 물건을 중매하는 거간꾼이나 손님을 호객하는 여리꾼도 하지만 도박장을 열거나 몸을 파는 은근짜들을 고용해 매춘을 알선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들보다 더 밑의 자들은 청계천 다리 밑에 살고있는
땅꾼이었습니다. 이들은 전과자들로 풀숲의 뱀을 잡아 팔거나 미꾸라지를 추어탕으로 만들어 파는 일을 했습니다. 빌어먹는 거지들에게는 두목이 있으니 이들을 꼭지딴이라고 부르며 서열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이들은 장례를 치르는 집에 가서 심부름과 청소들을 해주고 대가로 밥을 얻어먹었는데 규율을 어긴 거지는 죽여서 다리 밑에 버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춤과 노래를 잘해 거리를 떠돌며 자신의 재주를 뽐내는 자가 있는가 하면 검계나 살주계처럼 반사회적 활동을 하는 범죄조직도 있었습니다. 살주계(殺主契)는 성질 사나운 노비들이 자신의 주인을 친구로 하여금 죽이게 하고 자신은 친구 주인을 맞바꿔 죽이는 일을 했습니다. 포도청에서 이들을 잡아 행동강령을 보니 양반 살육, 부녀자 겁탈, 재물 탈취 등 흉악한 내용이 있었다 하며 잡히지 않은 자들이 남대문과 사간원, 사헌부 대문에 “우리가 모두 잡히지 않으면 너희의 배에다 칼을 꽂겠다.”고 벽보를 붙여 협박까지 했습니다.
검계(劍契)는 살략계, 홍동계라고도 불렀는데 장례를 치르기 위해 만든 향도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들이 위험한 것은 반사회적 행위와 함께 죄를 지어 도망치는 자들을 숨겨주어 세력을 불렸기 때문입니다. 숙종 때 난리 났다는 헛소문에 넘어가 동대문 밖으로 피난가는 사람들에게 강도질했으며 한밤중에 남산에 올라가 창포검을 차고 나발을 불며 군사훈련을 할 정도로 위협적인 존재였습니다. 이들은 앞에 말한 무리와 달리 양반가나 부호의 자식들이 끼어 있어 왈짜(曰牌)라고 불렀으며 난폭한 짓을 많이 저질렀습니다. 이들은 낮에는 실컷 자고 밤에는 나돌아다니는데 안에는 비단옷을 입고 겉에는 낡은 옷을 입으며 맑은 날에는 나막신을 신고, 비 오는 날에는 가죽신을 신는 등 상식을 파괴하는 행동을 했습니다.
이들은 기생방과 도박장을 드나들었는데 쓰는 돈은 모두 남에게 빼앗은 돈으로 했고 양가의 부녀자들을 겁탈하는 짓도 많이 했으나 집안 배경 때문에 건들지 못하다가 영조 때 포도대장 장붕익이 이들을 완전히 소탕했습니다. 검계 일당은 몸에 칼자국을 내 보통 사람과 구별하는 것에 착안해 이들을 잡아들였습니다. 그리곤 붙잡은 검계의 발뒤꿈치를 칼로 도려내 절름발이를 만든 다음에 조리를 돌리는 등 강력한 진압책을 썼습니다. 이에 붙잡힌 자들이 단도로 자신의 가슴을 그으며 반항했고 포도대장 장붕익의 집에 자객이 들어 포도대장이 칼로 대적하기도 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때 형벌을 살고 나온 왈짜들이 몹시 두려워했다는 기록만 있을 뿐 그 이후에 검계가 어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