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철원에 강추위가 찾아와서 한탄강이 얼어붙으면, 협곡에서 얼음길을 걸으며 대자연의 신비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스릴 넘치는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 정책으로 몇 번이나 개방이 연기되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1월 말 비로소 얼음길이 열렸다.
한탄강(漢灘江)은 은하수 한(漢)자에 여울 탄(灘)자를 쓴다. ‘은하수처럼 밝고 큰 여울’이란 뜻이다. 겨울 한파가 아닌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었지만 ‘은하수처럼 밝고 큰 여울’에서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려고 철원으로 달려간다.
길이 136㎞의 한탄강은 철원과 포천, 연천을 지나 전곡에서 임진강과 만나 서해로 흘러든다. 한탄강의 발원지는 휴전선 너머 북한 평강군 장암산이다. 27만 년 전 평강고원의 화산폭발로 분출된 용암이 강을 따라 흐르다가 철원 땅을 덮었는데, 거대한 용암대지 위를 흐르던 강물은 오랜 세월 동안 침식을 거치며 무너져 내려 좁고 긴 협곡을 만들게 된다. 한탄강 지질공원은 우리나라 최초로 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현무암절벽, 주상절리, 폭포 등 다채롭고 아름다운 지형과 경관과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해 7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한탄강 얼음트레킹 축제는 한탄강 얼음 위를 걸으며 철원의 겨울 추위와 한탄강의 깊은 협곡, 현무암 주상절리, 화강암 기암괴석 등 차별화 된 자연자원을 체험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트레킹 축제인데, 매년 1월 한탄강 태봉대교부터 순담계곡까지 7.5km 구간에서 열리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각종 부대행사는 진행하지 않고 단순히 트레킹 코스만을 개방하고 있다. 사전 예약을 통해 참여할 수 있으며, 탐방객들의 접촉을 최대한 막기 위해 교행이 아닌 일방통행으로만 코스를 운영한다.
한탄강 얼음트레킹은 태봉대교 주차장 아래에서 출발하여 얼어붙은 강물 위를 걷거나 부교를 통해 이동하면서 순담계곡까지 이어진다. 따뜻한 날씨로 얼음이 덜 얼 것에 대비, 전 구간에 부교를 이용한 물 윗길이 설치되어 있고 코스 중간 중간에 안전요원들이 배치되어 있어 탐방객들은 안전하게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아이스링크 같은 얼음 위를 걸어 송대소 깊은 협곡 안으로 들어간다. 태봉대교에서 1km 하류에서 만나게 되는 송대소에서는 신비한 주상절리대와 30m 높이의 거대한 현무암 적벽을 만날 수 있다. 수많은 돌기둥을 한데 모아 부챗살처럼 펼쳐놓은 방사선 주상절리대는 한탄강의 비경으로 손꼽힌다. 제주도 대포동 주상절리와 많이 닮은 이곳은 무명실 한 타래가 들어갈 정도로 수심이 깊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한탄강이 펼쳐내는 풍광은 무척이나 이채롭다. 수직으로 뻗은 주상절리대와 깎아지른 거대한 협곡은 한국의 ‘그랜드 캐니언’으로 불린다.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구멍 숭숭 뚫린 현무암은 마치 제주도 같은 느낌을 들게 한다.
한탄강의 절경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얼음 트레킹은 추운 겨울에만 누릴 수 있는 호사다. 국내 유일의 콘텐츠인 한탄강 얼음트레킹은 철원의 겨울이 아니면 감상할 수 없는 천혜의 비경이 즐비하다. 그래서 2020년 대한민국축제콘텐츠대상 관광축제 분야에서 대상으로 선정되기도 했는데, 작년과 올해는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했던 장애물을 만나 그 명성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송대소를 지나면 마당처럼 넓게 펼쳐진 마당바위가 나타난다. 한탄강 일대에서 가장 크고 넓은 화강암 바위다. 마당바위에서 승일교까지 구간은 크고 작은 바위와 돌과 모래가 뒤섞인 너덜지대가 이어진다. 고석정 근처에는 수많은 작은 돌들이 넓은 강가에 가득하다. 인간의 삶이 아무리 길다 해도 여기 강바닥에 떨어져 있는 작은 돌들에 비하면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이 작은 돌 앞에서도 어찌 겸허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이윽고 철원팔경 중 1경인 고석정에 도착한다.
고석정(孤石亭)은 의적 임꺽정의 설화가 깃든 곳이다. 강 한가운데 우뚝 솟은 20m 높이 거대한 고석(孤石)이 분위기를 압도한다. 이 바위는 마치 거대한 수석에 분재를 올린 듯 그 모습이 독특하다. 바위 꼭대기에는 임꺽정이 은둔했다는 동굴이 있는데, 동굴 안은 장정 서너 명이 너끈히 들어갈 수 있다. 바위 아래에는 작지만 기다란 모래톱이 이어진다.
고석정은 교통이 편하고 먹거리와 볼거리가 많아 여기서 트레킹을 종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한탄강 트레킹의 최고 비경은 고석정에서 순담계곡까지 이어지는 1.5㎞ 구간이다. 순담계곡(蓴潭溪谷)은 조선시대 정조 때 김관주(金觀柱)가 이곳에 연못을 파고 순약초(蓴藥草)를 재배하여 복용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고석정에서 순담계곡까지는 부교 구간으로 부교와 너덜지대가 반복된다. 부교에 올라 걷다 보면 협곡 좌우로 기암괴석들이 도열해서 반긴다.
부교는 대교천이 흘러드는 합수부까지 이어진다. 강변을 따라 걷다보면 보는 방향에 따라 돌고래나 새같이 보이는 하얀 너럭바위가 나타난다. 현무암과 화강암이 뒤섞인 크고 작은 바위와 돌들을 지나면 다시 부교가 놓여있다. 순담계곡까지 이어지는 길은 송대소에서 봤던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송대소에서 보았던 주상절리가 이어지는 수직 현무암 석벽과는 달리 순담계곡에서는 퍼즐처럼 이어지는 동물 그림 같은 풍경들이 펼쳐진다. 순담계곡 일대에는 국내 최초로 높이 10m가 넘는 깎아지른 협곡에 3km 구간의 잔교가 벽에 선반을 매달아 놓은 듯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잔도가 개설되면 기암괴석과 절벽 등 천혜의 경관을 하늘에서 조망할 수 있어 한탄강 일대가 새로운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마침내 트레킹 종점인 래프팅 선착장에 도착한다. 겨울답지 않게 날씨가 포근해서 아쉬움이 크지만 인적 드문 깊은 협곡을 걸으며 신비로운 대자연의 감동을 유유자적 즐길 수 있었던 하루였다.
동장군 기세가 위력을 떨치는 추운 겨울날, 꽁꽁 얼어붙은 한탄강을 다시 찾기로 기약하면서 한탄강에서 건져 올린 맛을 즐기기 위해 고석정 식당으로 이동한다.
여계봉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