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산정천리] 봄의 길목에서 송악산둘레길을 걷다

여계봉 선임기자


바람 부는 언덕이라는 뜻의 송악산 부남코지에 오늘따라 비단결처럼 부드러운 갯바람이 분다. 솜털을 간질이는 듯 몸에 감기는 미미한 감촉은 사람을 바람나게 한다. 봄바람이 부니 송악산도 이제 봄의 문턱에 들어선 듯하다.

 

제주 올레길은 한라산과 오름, 바다와 숲 등 때 묻지 않은 자연이 아름다운 풍광을 빚어낸다. 올레길 전체 코스 중 10코스는 화순 금모래 해변에서 시작해 모슬포까지 이르는 길이다. 제주의 바다를 보러 가는 길은 송악산둘레길에서 시작된다. 해안 절경으로 입소문 난 10코스 구간 중에서도 송악산둘레길은 푸른 바다를 곁에 두고 내내 걷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길이다.


송악산둘레길에서 바라본 산방산과 형제섬. 머리에 하얀 눈을 인 한라산도 보인다.


송악산은 성산일출봉처럼 바다 쪽으로 툭 튀어나온 모습을 하고 있다. 높이가 104m인 작은 오름인데 99개의 작은 봉우리가 모여 있어 일명 ‘99이라고도 불린다. 제주 최고의 해안 경관으로 꼽히는 송악산둘레길은 부남코지의 해안절벽을 따라 너른 바다와 송악산을 조망하면서 산책하는 코스인데, 짧고 평이하여 가족과 함께 걷기 좋은 길이다. 해안가와 둘레길 그리고 평화롭게 노니는 말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경을 즐길 수도 있다.


송악산둘레길은 총길이 2.8m로, 해안 풍경을 즐기며 느긋하게 걸으면 1시간 정도 걸린다.


송악산둘레길은 주차장 옆 송악산 입석이 세워져 있는 곳에서 출발하는데 주로 왼쪽 길로 올라갔다가 오른쪽 길로 내려온다. 산이수동 포구에는 쪽빛인지 청보리빛인지 푸르스름한 방광이 일고, 손을 쭉 뻗으면 닿을 것 같은 형제섬에는 눈꺼풀을 연신 끔벅대는 하얀 파도가 밀려왔다 사라진다. 햇살은 수정처럼 파랗게 투명하다. 햇살의 보시. 이게 무상의 보시가 아닌가.


살갗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갯바람과 따스한 햇살에 담긴 온기는 봄이 어느새 송악산 가까이에 왔음을 알려준다.


송악산 입석. 송악산둘레길의 시작점이다.


순환형으로 이어지는 약 2.8km의 송악산둘레길을 걸으며 만나는 빼어난 해안 경관만으로도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그러나 송악산둘레길은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눈부신 아름다움만 있는 건 아니다. 둘레길 아래 해안절벽에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이 제주도민들을 강제 동원해서 뚫어 놓은 동굴이 여러 개 남아 있어 과거의 아픈 역사를 말해준다.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길은 내리막과 오르막을 반복하며 새로운 풍경을 예고한다. 길을 걷다 보면 방목해서 기르는 말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 내내 아름다운 바다 풍경에 머물렀던 시선이 말 방목장과 승마체험장이 있는 너른 평원으로 옮겨간다.

 

‘바람 부는 언덕’ 부남코지 가는 길. 오늘따라 봄바람이 분다.

 

둘레길에서 고개를 바다쪽으로 돌리면 좌에서 우로 산방산과 그 아래 한적한 해안가 사계 해변, 산방산 용머리 해안, 머리에 하얀 눈을 인 한라산 그리고 형제섬 등 제주의 명소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산방산에서 출발해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들을 품은 사계 해변을 지나 약 5km 떨어진 최남단 해안의 송악산까지 그 아름다운 풍경들이 한 프레임 안에 담긴다.

 

갯바람에 하늘거리는 억새의 춤사위는 계절을 착각하게 만든다.

송악산 정상부는 자연휴식년제로 2021731일까지는 출입이 통제 중이다. 송악산은 먼저 폭발한 큰 분화구 안에 두 번째 폭발한 지금의 주봉이 생기고 거기에 작은 분화구가 생긴 이중화산체다. 다른 화산들과는 달리 크고 작은 수많은 봉우리로 이루어졌는데, 해발 104m의 주봉을 중심으로 서북쪽은 넓고 평평한 초원지대를 이룬다. 송악산은 예전에 그 이름에 맞게 소나무는 물론 동백나무, 후박나무 등이 무성했던 곳인데 일제가 군사기지를 만드느라 불을 지르는 바람에 지금은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풀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송악산 생태계 복원을 위해 자연휴식년제를 시행하고 있어 정상부는 갈 수 없다.


쏟아지는 햇살에 짙푸른 바다는 금빛 물결을 반짝인다. 절벽 위의 둘레길을 걸으며 제주의 바다 바람이 만든 사층리, 거대 연흔을 눈에 담으며 자연의 신비를 즐긴다. 형과 동생이 다정스레 귓속말을 주고받는 형제섬은 손에 닿을 듯 가까이 있고, 그 주변을 낚싯배들이 유영하고 있다. 수직절벽의 산자락이 청보릿빛 해안가에 치마폭을 담그니 잔물결들이 아름다운 파동을 만들어내고 평원의 야자수들은 갯바람에 푸른 머릿결을 살랑거리고 있다.

 

전망대에 서면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는 마라도와 가파도가 보인다. 마라도는 이 길의 출발지에 있었던 산이수동 선착장에서 30분이면 닿고 가파도는 운진항에서 10분이면 도착하는 섬이다. 섬 속의 섬인 셈이다.


전망대에 서면 반짝이는 은빛 바다 너머로 가파도와 마라도가 아스라이 보인다.


데크길을 따라 오르내리면 제1 전망대에서 제3 전망대를 차례로 지나게 된다. 사실 전망대가 따로 필요할까. 이 길은 걷다가 잠시 멈추는 곳이 바로 전망대라 할 정도로 내내 멋진 풍광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흰색 꼬리를 달고 달리는 배들은 제주 바다에 생동감을 불어 넣는다. 어디 그뿐이랴. 딛고 선 해안 절벽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 소리는 귓가를 스치는 바람결에 담겨 절묘한 앙상블을 이룬다.

 

경사진 듯 평탄한 듯 쭉 곧은 듯 구부러진 듯 완만한 데크길을 따라 넉넉한 마음으로 천천히 걷다 보면 바람이 밀고 밀리듯 이마를 스쳐간다. 산허리 한 굽이를 넘어서면 시야는 넓게 펼쳐지면서 서귀포 대정리의 너른 바다와 해안선까지 발을 담근 푸른 초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송악산둘레길은 걷는 내내 바다를 끼고 이어진다.


마지막 제3전망대를 내려오면 데크 오른쪽으로 서너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넓은 초원에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데크길이 끝나면 울창하고 아늑한 소나무숲이 반긴다. 해송산림욕장인 송악산 소나무숲길은 맨발로 걷고 싶을 정도로 푹신푹신한 감촉이 인상적이다. 숲길을 다 내려오면 주차장이 있는 출발점에 도착한다.


올레길을 걸어야만 한가로이 풀을 뜯는 제주 말들을 만날 수 있다.


송악산둘레길은 제주의 푸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지는 망망대해, 화산재가 빚어낸 자연의 신비, 제주의 역사를 품은 슬프도록 아름다운 길이다. 험하지 않은 트레킹 코스에 어디로 시선을 두어도 아름다운 풍경이 이어져 남녀노소 누구라도 제주 여행의 매력에 푹 빠져들게 하는 곳이다. 언제 가도 다양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어서 언제나 가슴 설레게 한다.

 

아직 겨울이지만 송악산 산색은 만화방창(萬化方暢) 봄날처럼 푸르다. 낙엽수들은 나목으로 서 있지만 소나무, 동백나무 같은 상록수들이 산자락을 푸른 보자기처럼 덮고 있다. 자연휴식년제가 끝나면 송악산을 다시 찾으리라 다짐하며 송악산을 내려선다.



 


여계봉 선임기자



여계봉 기자
작성 2021.02.12 06:04 수정 2021.02.12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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