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산정천리] 눈 오는 날, 아차산과 용마산에 올라 역사의 숨결을 느끼다

여계봉 선임기자


이렇게 눈 내리는 날의 도심 근교 산행은 올겨울 들어서 처음이다. 하얗게 떨어지는 눈송이를 맞으며 미답인 채 얼지 않은 눈을 뽀드득뽀드득 밟으며 호젓한 산길을 걷는 즐거움은 누구나 쉽게 누릴 수 있는 행운이 아니다.

 

서울과 경기도 구리시의 경계를 이루며 동쪽에 둘러쳐진 성벽 같은 산, 높지 않고 나지막하여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 가벼운 등산과 산책코스로도 인기가 높은 산, 아마 이 정도 설명하면 금방 떠오르는 산이 있을 것이다. 바로 광진구와 중랑구에 잇대어 있는 아차산과 용마산, 망우산이다. 산 이름이 세 개나 되지만 실제로 올라보면 고만고만한 산이 이어져 있어서, 조선시대에는 모두 아차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오늘은 아차산역 2번 출구에서 출발해서 영화사를 들린 뒤 고구려정을 거쳐 아차산성 보루를 탐방하고 용마산에 오른 후 용마산역으로 하산하기로 한다.

 

산행 출발점인 영화사. 통일신라 때 의상이 창건한 천년사찰이다.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의상대사는 당시 서울에서 해돋이를 가장 먼저 만끽할 수 있는 아차산에 두 개의 절을 두었는데, 산 중턱에는 화양사(華陽寺), 산 정상 바로 아래에는 범굴사(梵窟寺)를 지었다. 화양사에 뿌리를 둔 절이 지금의 영화사인데, 이 두 사찰을 탐방하는 것은 아차산 산행이 주는 보너스다.


미륵전의 미륵석불입상. 높이 3.5m의 고려시대 석불이다.


영화사 옆 등산로 입구의 계단을 올라가면 고구려 역사길이 나오고, 완만한 등산로 주위로 가지런히 도열한 소나무들이 흰 입김을 뿜고 있는 순백의 숲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시리게 선 나무들에게서는 알싸한 박하향이 풍겨 나오는 숲길이 끝나는 곳에 넓은 암릉이 펼쳐지는데 그 곳에 고구려정이 서 있다. 고구려정 아래 암릉에 서서 바라보는 롯데타워와 한강권 조망이 가히 백미인데, 오늘은 눈 때문에 시계가 완전히 가려져 조망에 대한 기대는 아예 접어야 한다.


팔각정자인 고구려정. 코로나로 통제하고 있어 정자에 오를 수 없다.


아차산(峨嵯山) 이름의 유래를 살펴보면 가장 앞선 기록은 광개토왕대왕비(414)에 표기된 아단성(阿且山)이다. ‘아단(阿旦)’은 한자의 소리를 빌려 표기한 것인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태조 이성계의 휘가 ()’이기 때문에 ()’을 다른 글자로 바꾸면서 모양이 비슷한 ()’로 고쳤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아단성(阿旦城)이 아차성(阿且城)으로, 다시 아차성(峨嵯城)으로 표기가 변화되어 오늘날의 지명으로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고구려정을 지나 범굴사 방향으로 길을 잡았으나 눈이 많이 와서 길이 미끄러워 온달샘은 포기한다. 범굴사도 코로나로 절문을 닫아 2보루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한강과 서울 광진구, 성동구 및 강남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해맞이 전망대는 눈 때문에 조망이 막혀 아무도 없다. 2, 5, 6보루를 지나자 고구려 옛 석성으로 잘 정비된 제3보루가 나타난다. 이곳 앞뒤로 펼쳐지는 조망 또한 압권이지만 오늘은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이 산에는 지금의 초소라 할 수 있는 보루(堡壘)’가 유독 많다. 삼국시대에는 한강을 차지한 나라가 패권국가였다. 고구려 장수왕 재위 초기 때만 해도 한강과 아차산을 경계로 북쪽은 고구려, 남쪽은 백제 땅이었다. 고구려는 아차산을 전초기지로 보를 설치했다. 주둔군 대부분은 기마병이었다. 보와 보를 잇는 산길이었지만 말 한 마리가 뛰어다니기에 충분한 지형이었다. 백제는 고구려의 남침을 의식해 풍납토성을 쌓고는 몽촌토성과 연결한 산성을 쌓아 방어진을 구축하였다.

 

제3보루. 말이 다닐 정도로 너르다.

 

제3보루 표지판(295.7m). 여기가 아차산 정상이다.

 

남진정책을 폈던 고구려 장수왕은 이 산성에 웅거하며 한강 건너 한성(위례성)에 진치고 있던 백제 개로왕을 생포하여 이 산에서 처형하기도 했다. 아차산은 고구려 평원왕 때의 장군 온달(溫達)장군이 전사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백제가 웅진으로 천도한 후 고구려와 신라 간에 한강 유역을 두고 치열한 접전을 벌였는데, 한강 이북을 되찾겠다며 전선에 뛰어 든 온달은 끝내 원을 이루지 못한 채 이 산에서 신라군의 화살을 맞고 전사했다. 고구려군이 장사를 지내려 했으나 온달의 유구는 움직이지 않았다. 낭군의 죽음을 전해들은 평강공주가 한걸음에 달려와 온달의 관을 어루만지자 유구가 움직였다. 그래서 아차산에는 온달장군에 대한 전설이 많이 전해져 오는데 산에는 온달장군이 가지고 놀았다는 둥그런 공깃돌바위와 온달샘이 있다.

 

제4보루. 숙영지와 저수조 터가 남아 있다.

 

날씨가 좋을 때 능선 길을 따라 걸으며 바라보는 풍경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오른편으로 바라보이는 바로 아래 구리시와 한강, 강동구 일대, 그리고 하남시와 멀리 예봉산과 검단산 줄기가 줄기줄기 이어진 모습이 그림처럼 멋지다.

 

4보루에서 내려서면 긴 고랑 입구 고갯길이 나오는데 이곳은 아차산과 용마산의 경계지점이 되기도 한다. 직진하여 데크를 따라 올라가면 2헬기장이 나오는데 이 지점에서 왼쪽으로 가면 용마산 정상으로, 오른쪽으로 가면 망우산으로 가는 길이다. 용마산 방향으로 길을 잡고 약간의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제3헬기장에 이어 전망 좋은 바위지대가 나오고 계속 가면 정상 아래 운동시설이 나오고 데크를 올라서면 용마산 정상이다.

 

용마산을 오르며 뒤돌아본 아차산 주능선과 보루

 

용마산 정상(348m). 일몰과 야경이 멋져 야간 산행지로도 인기가 높다.

정상에서 용마폭포 공원 방향으로 하산을 한다. 급경사의 데크길이 끝없이 이어지면서 돌계단과 암릉지대도 간간이 나온다. 눈이 그치자 발 아래로 탁 트인 풍경이 펼쳐진다. 왼편으로는 남산과 도심 지역은 물론 바로 아래 중랑천과 그 너머로 북한산, 도봉산이 마주 바라보이고, 불암산과 수락산도 아스라하다.

용마산에서 용마폭포로 내려서는 하산 길은 암릉과 소나무의 어울림이 절묘하다.

낙엽을 하얀 이불로 덮은 하산 길은 고요로 출렁인다. 산길에서 줄곧 따라오는 건 바스락거리는 마른 낙엽 위의 발자국 소리 뿐. 나무를 지나가는 바람소리와 새소리가 발자국 소리 위에 간혹 겹쳐지기도 한다.

 

코로나 때문에 절문을 닫는 바람에 들리지 못한 범굴사와 쌀바위 구멍, 범굴사 아래 3층석탑, 그리고 석탑 아래 도도히 굽이치는 한강을 만나러 다시 이곳을 찾기로 기약한다 


 

 


여계봉 선임기자

yeogb@naver.com







여계봉 기자
작성 2021.02.18 13:07 수정 2021.02.18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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