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라고 하면 계란 값이 어떻게 되는지 죽이 끓는지 밥이 타는지 깜깜하고, 정치에 관하여 물으면 아는 것은 정치인, 좀 더 솔직히 말하면 경찰과 검찰이다. 그들은 할 일이 없어 낮잠만 퍼질러 잘 테고 그렇게 몇 번 하다 보면 자연히 밥그릇 잃을 판인데 검찰개혁이니 뭐니 하면서 시끄럽다.
한국은 법 없이도 사는 천국이라고 생각하는데 높으신 분들은 거짓말을 하고 정치는 진보는커녕 후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너나 잘하세요"라고 말하는 습관이 내 철학이고 나의 철저한 인생관이다.
기계치라는 말처럼 나는 중증의 기계치로 전기제품을 사서 한 번도 설명서를 읽어본 적이 없다. 그냥 멋대로 여기저기 눌러봐서 작동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니까 뒷걸음치다 쥐 잡았다는 소가 바로 나인 거다.
소의 인생관으로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인생은 뭐 하나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것에 소는 물론 쥐도 놀랄 일인 줄 안다. 자신만의 유난스러운 버릇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길은 있다. 나를 위해 수필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는 것이 편하고 가치 있는 일이지만 그게 전부라고 무조건 억지를 쓰면 모두가 불편하다.
그렇게 사는 나에게 누군가 내가 지니고 사는 재산이 얼마가 되는지 궁금하다면서 물어오면 난처해진다. 그 동네 땅값이 얼마나 되는지 빌딩 시세는 어떻게 되는지 운동장 만한 오지랖을 부린 어떤 사람이 물어올 때가 있다. 그렇게 알고 싶으면 나는 그 동네 터줏대감인 맥도널드, 맥카페를 찾아가면 견적이 쉽게 나온다고 말해준다. 왜냐하면, 내가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 가치도 맥카페에서 솔직하게 그 시세를 말해주기 때문이다.
살기 좋은 동네에 위치한 맥도널드와 거기에 몰리는 사람들이 부동산 가격을 말해준다. 보통 동네 사람에 따라 시끄럽고 다소 깔끔하지 않은 맥도널드도 있지만 내가 사는 맥카페는 사무실로 둘러싸인 곳이라 사무적인 사람들이 그에 걸맞은 옷차림으로 시간마다 몰려왔다 몰려간다.
바닥에 떨어진 음식에도 A 점수를 주고 싶을 만큼 청결함이 있고 잠시 눈을 감고 명상에 빠지기에도 훌륭한 곳이다. 흠이 있다면 딱하나, 음악만 클래식으로 바꾸어 준다면 바람 스쳐 지나가는 깊은 산속 암자 수준이다. 이쯤이면 이 동네 부동산 가격은 천정에 확실하게 올라앉아 제자리를 잡은 곳이 된다.
그런 환경 속에 있는 내 부동산은 크기가 쥐 볼가심만하여 아쉬운 생각이 들지 모르겠지만 괜찮다. "좀 있다는 소리, 그거 들어 뭐해"라는 만사태평으로 사는 것이 나의 낙이다. 그건 내가 평생 뿌리고 일구고 가꾸며 살아온 그 즐거움을 누리는 당연한 일이다.
멋지고 아름답고 거대한 맥카페가 있는 동네에 사는 그 부러움을 지닌 내가 부자다. 거기다가 마음마저 풍요로우니 막 퍼주는 감정이 일 년 내내 충만하다. 정성 들여 그린 예쁜 카드에 이십 불짜리 한 장씩 넣어 친절한 종업원들에게 명절 때 선물을 하면 받아 들고 좋아서 뒤집히는 그들의 모습에 그만 내가 더 크게 뒤로 넘어갈 듯 기쁘다. 내가 지닌 풍요로움이 나의 총재산이다. 그 행복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있겠는가. 그냥 모두 싸잡아 내려쳐도 나의 작은 부동산은 꽤 흥미롭다. 하지만 이제는 무리한 욕심을 숨겨야 추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 이 세상조차도 잠시 전세로 빌려 사는 게 우리 인생 아닌가.
다음 사람을 위해 그대로 비워주고 떠나야 한다. 괜스레 욕심내면 중 뿔난 격으로 망신스러운 일이 되기 쉽다. 하나둘 내려놓고 되돌려 줄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접시 하나, 밥그릇 하나, 국그릇 하나 정도의 부엌살림이 보기 편하다. 뭔가 더 있으면 불편해서 당장 치워 버리지 않으면 꿈자리에서조차 괴롭기만 하다. 그런 깐깐했던 젊은 시절의 성미야말로 제일 먼저 버렸어야 했던 것도 잘 안다. 불을 보듯 뻔한 것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온 후회스러운 마음도 맥카페에 앉아 반성을 한다.
그렇게 맥도널드 카페는 인간적이다. 사는 공간이 크면 그만큼 번뇌의 폭도 크다. 두 팔을 벌리고 살풀이춤을 추는 무용수처럼 몸 한 바퀴 돌려쓸 만한 공간이면 족하다. 그럼 넘어지기 쉬운 노인성 질환에도 크게 힘들지 않을 것 같다.
최고의 분위기를 갖춘 곳, 연주회장으로 써도 부족함이 없는 도도하게 높은 천장, 몇 점의 그림이라도 걸어 넣는다면 그대로 화랑임에 손색없을 실내 공간은 누가 찾아오면 데려가 잔잔함을 나눌 수 있는 여느 고급 레스토랑 못지않은 곳이다.
그 누가 보아도 늘 평화로운 맥카페는 이만하면 부동산 가격을 판가름하는 최대의 조건을 모두 갖추었다. 다소곳이 앉아 있으면 절에 간 색시가 되는 나의 모습도 부동산 가치가 된다. 그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걸어 나올 때도 마음의 가치는 자존감 그대로 따라나선다. 남을 배려해야 하는 마음도 알게 해주는 곳이다.
그와 함께 점심식사를 하려면 이십오만 불이 필요하다는 인물, 워런 버핏도 매일 들러 가장 싼 가격의 식사를 가장 행복하게 즐긴다는 곳이다. 버핏이 사람들에게 그의 행복을 전해주는 곳도 맥도널드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가 요구하는 이십오만 불의 점심 비용도 그리 센 것만은 아니다.
버핏이라는 존재가 나의 부동산 가치를 노골적으로 대놓고 올려준다고 생각하니 버핏이 멋져 보인다. 옹고집뿐이라는 늙은이 소리 듣지 않게 해주는 맥도널드가 있는 나의 동네는 오늘도 평화롭다. 우리 동네 집값을 올려준다는 그 공간에서 버핏과 함께 열정의 탱고 춤을 추고 싶다. 나와 춤을 추려면 버핏의 점심값으로는 어림없는 소리다. 그 억만장자 버핏도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과 뭐가 다르겠는가.
[문경구]
미주한인크리스찬문학협회공모 수필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