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프로젝트] 여행의 절반은 가이드다

황재혁

사진=코스미안뉴스 DB



유럽의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에 비해 한국인들에게는 조금 생소한 지역이다. 그래서 대다수 한국인들은 잉글랜드를 여행한다고 하면 영화에서 본 런던의 이미지가 있어서 잉글랜드가 상상이 되지만, 스코틀랜드를 여행한다고 하면 특별하게 생각나는 이미지가 없을 수 있다. 물론 스코틀랜드가 스카치위스키와 골프의 본고장으로 유명하지만, 위스키와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나 스코틀랜드가 유명할 것이다. 스코틀랜드는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 미지의 땅이며, 특별한 기대가 없는 무관심의 땅일 수 있다.

 

필자는 2017년 여름에 20여명의 동문들과 함께 유럽으로 종교개혁지 답사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종교개혁지 답사는 약 2주간 진행되었고 스위스와 프랑스를 거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방문하는 것이 주된 답사 일정이었다. 필자는 종교개혁지 답사를 떠나며 개인적으로 스위스와 프랑스 일정보다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일정에 큰 기대를 가졌다. 400만원 가량 되는 여비를 12개월 할부로 납부할 정도로 조금 무리해서 종교개혁지 답사를 신청한 이유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직접 내 발로 밟고 내 눈으로 보고 싶어서였다. 만약 종교개혁지 답사 일정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면, 아마도 필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종교개혁지 답사에 동참하지 않았을 것이다. 필자가 유독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가보고 싶었던 이유는 그 당시 영국유학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영국유학이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영국대학의 공부환경은 어떤지 너무나 알고 싶었기에 종교개혁지 답사를 2월에 신청하고 답사를 떠나는 6월까지 계속 설레었다.

 

드디어 2017619일 월요일에 인천국제공항에서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는 먼저 런던 히스로 공항으로 향했고, 우리는 히스로 공항에서 몇 시간을 기다려, 스위스 취리히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를 바꿔 탈 수 있었다. 우리는 스위스 취리히에 도착해 여러 유적지를 살펴보고 인터라켄을 오른 이후, 제네바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반나절 제네바의 일정을 마친 후 TGV를 타고 프랑스 남부로 이동했고, 이틀 동안 프랑스 남부를 둘러본 이후 다시 파리행 TGV를 탔다. 숨 가쁘게 달려온 파리에서 우리는 토요일 일정을 자유롭게 보내고 드디어 626일 일요일에 파리에서 유로스타를 타고 잉글랜드로 가게 되었다. 답사팀의 몇몇 일원은 파리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잉글랜드로 가는 것에 아쉬움을 표했지만 필자는 파리를 떠나는 것이 전혀 아쉽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스위스와 프랑스 일정은 예고편이었고, 앞으로의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일정이 본편이라 생각했다.

 

파리에서 출발한 유로스타가 두 시간 만에 런던역에 멈췄다. 유로스타에서 내리니 어떤 덩치 큰 사내가 우리를 플랫폼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덩치 큰 사내는 잉글랜드 일정 동안 우리를 안내할 여행 가이드였다. 그런데 여행 가이드의 얼굴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다. 처음부터 우리 팀원들은 가이드로부터 환영받는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하고 가이드의 어두운 얼굴 표정을 보고 가이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필자는 그 당시 가이드의 표정이 왜 그리 어두웠는지 잘 모른다. 다만 가이드의 표정에는 가이드로서의 기쁨이 전혀 묻어나지 않았다. 그저 어쩔 수 없이 이 일을 하는 느낌이었다.

 

잉글랜드의 첫 일정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캠브리지를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원래는 잉글랜드의 수도인 런던을 투어하는 일정이었지만 가이드가 캠브리지를 처음 방문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 일정을 조금 바꾸었다. 캠브리지로 가는 버스 안에서 가이드가 마이크를 잡고 잉글랜드의 역사와 캠브리지의 역사에 대해 말을 시작했다. 그러나 가이드가 너무나 건조하게 말해서 버스에 탄 팀원들은 대다수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리고 버스가 캠브리지에 도착할 때까지 팀원들과 가이드 사이의 어색함은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대다수가 잉글랜드에 처음 방문한 초행객으로서 우리는 가이드를 통해서 잉글랜드를 접할 수밖에 없었다. 여행자에게 가이드는 창문이자 통로라 할 수 있다. 여행지에서는 가이드를 통하지 않고서는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것이 부지기수다. 그러나 우리 답사팀은 약 이틀간의 잉글랜드 일정 동안 가이드와 너무나 불편한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성의 없이 여행지를 안내하는 가이드에게 실망감을 느꼈고, 가이드 역시 우리와 함께 하는 시간이 그리 의미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이드와의 관계가 어그러지니 런던에서 봤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빅벤, 런던아이, 타워브릿지 그리고 윈저성도 그리 인상 깊지 않았다. 필자가 가장 기대했던 잉글랜드 일정이 예상치 못하게 만족도가 가장 낮은 일정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서로에게 불편했던 잉글랜드 일정을 뒤로하고 우리 답사팀은 마지막 일정이 예정된 스코틀랜드를 향해 비행기를 탔다.

 

스코틀랜드의 수도인 에든버러에 도착하니 런던과는 달리 비가 주적주적 내렸다. 무엇인가 스산하고 음산한 분위기까지 느껴져 스코틀랜드 일정이 잘 마무리될 수 있을까 조금 우려되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수하물 찾는 곳으로 가니 거기에 스코틀랜드 일정을 안내할 여성 가이드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 여성 가이드는 한국인이었지만 자신을 리디아라는 이름으로 불러 달라고 했다. 리디아는 40대 정도의 여성이었는데, 만나는 사람으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하는 행복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다. 리디아를 만나자 우리 팀원들이 잉글랜드 가이드로부터 받았던 여러 상처와 아쉬움이 서서히 새로운 기대와 소망으로 바뀌는 것이 느껴졌다. 어두웠던 팀원들의 얼굴에 밝은 빛이 비추이고, 잉글랜드에서는 일절 가이드와 대화를 하지 않았던 팀원들이 리디아에게는 먼저 말을 걸기 시작했다. 사실 스코틀랜드에서 보낸 이틀 동안의 일정은 날씨가 썩 좋지 않았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거나 어두운 날씨가 계속 되어 어찌 보면 우리 팀원들은 이 어두운 날씨에 심리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을씨년스러운 스코틀랜드의 날씨와 별개로 모든 팀원들은 리디아와 함께 스코틀랜드를 여행하는 것을 너무나 행복해했다. 필자 역시도 잉글랜드 일정은 아쉬움이 많았지만 스코틀랜드 일정은 기대 이상으로 의미 있었다.

 

2주간 진행된 유럽의 종교개혁지 답사를 다 마치고 8월 즈음에 한국에서 후기모임을 가졌다. 후기모임에서 팀원들은 하나 같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유럽에 갈 때 스코틀랜드는 전혀 기대도 안 했는데, 막상 가보니깐 스코틀랜드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또 가고 싶다.” 왜 우리는 기대도 안 한 스코틀랜드의 만족도가 가장 높았을까? 왜 날씨도 흐리고 스산했던 스코틀랜드를 사람들은 또 가고 싶어 할까? 아마도 그 이유는 스코틀랜드에 리디아가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우리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어느 여행지를 선택할까 많은 고민을 하지만, 정작 여행의 질을 좌우하는 가이드를 직접 선택하기는 어렵다. 여행은 시작이 절반이고, 가이드가 나머지 절반을 차지한다. 인생이란 여행길에서 나는 장차 어떤 가이드를 만나게 될까?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의 눈에 어떤 가이드로 인식될까? 긴 시간을 함께하지 않더라도 짧은 시간 나를 스치고 가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인생여정에서 나를 통해 조금이나마 삶의 행복을 느끼길 소망한다. [글=황재혁]

 

 

 

 


기자
작성 2021.02.28 13:06 수정 2021.02.28 13:22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horts 동영상 더보기
여름은 춤
2025년 8월 1일
전통의상
2025년 8월 1일
군인제기차기
홍천강 맥주축제
암환자의 체중관리. 유활도/유활의학
사슴벌레
2025년 7월 31일
구름 이름은?
무궁화
2025년 7월 28일
2025년 7월 17일 꿈꾸는씨앗결손아동후원하기
라이브커머스 전성시대 케이미디어스튜디오와 함께하세요 #ai영상
여름하늘
아기고양이가 세상을 배워가는 방법
장마가 만든 탁류
2025년 7월 26일
새의 영토
대구변호사 | 성매매 장부 적발! 처벌 피할 수 있을까? #shorts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