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구 칼럼] 매일 단테를 만나다

문경구

 

단테의 신곡 중에서 유일하게 기억되는 말은 아무런 탐욕에 빠지지 말고 어떤 탐욕도 지나칠 것을 권한다.식탐이나 육욕의 탐함으로 희생되지 말 것을 일러준다. 매일 매일 그 어떤 탐함도 담지 않은 영혼으로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돌아와서는 탐함 없는 하루를 지냈다는 감사의 기도가 있다.

 

이른 햇살은 그 모든 탐함이 없는 세상을 위해 어느 빛줄기 하나 남김없이 비춰주며 아침을 열고 나서게 한다.제일 먼저 만난 이웃집 아저씨, 마티네즈에게 인사를 나눌 때도 햇살은 그의 얼굴에도 나누어 주었고 나도 따라 아침 햇살의 향기를 그에게 전한다. 햇살이 가득한 얼굴로 그도 나도 환상적인 아침 인사를 나누고 나면 곧바로 자카렌다꽃이 길게 늘어진 가로수 길 하늘 아래로 차를 몰아 일터로 가는 날이 내겐 가장 행복함이다.

 

그날 출근하기 위해 차에 시동을 걸려는 순간 나는 그 아침 햇살이 뒤집혀 지니고 있던 모든 환상을 송두리째 날려버렸다. 나의 비명소리에 이웃집 마티네즈가 제일 먼저 달려왔고 그는 곧바로 놀라움에 질린 나를 위해 경찰을 불렀다. 마티네즈는 일 년 전 옆집에 세 들어 살면서 취미생활이라며 낡은 자신의 차 밑에 드러누워 수리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하는 친절함과 친숙함이 있었다.

 

그의 설명대로 밤새도록 나의 차가 도적들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다.마치 수술대 위에 꺼내놓은 장기들처럼 차 안의 부속들이 밖으로 쏟아져 있었다.짐작건대 여러 명의 나쁜 조직들이 차 안의 엔진으로 연결되는 선을 끊고 시동이 걸리면 차를 몰고 가려 한 것 같았다.  그리고는 차를 사막 한가운데 세워놓고 차의 모든 부속들을 떼어다 팔려고 한 것 같았다. 등골만 남은 나의 차는 미라처럼 사막에 버려지는 무시무시한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 일은 날이 새기 전까지였다. 밤새도록 시도해도 차의 시동이 걸리지 않고 날은 훤해지고 곧바로 직장을 향하는 사람들이 나설 테니 대충 그들이 원하는 부품들을 챙겨 뺑소니를 친 것 같았다.요즘은 시동키가 주머니 속에 있어도 시동이 걸리는 차들로 발전했지만, 그 옛날에는 그런 시스템이 없었다.그래서 손으로 시동을 걸었고 만약 키를 잃은 경우엔 엔진으로 가는 두 선을 연결하여 시동을 걸어야 했었다.

 

지금과 같이 몸에 키를 지닌 것만으로 시동이 걸리는 일을 그때 사람들에게는 꾸고 싶은 꿈이었을 거다. 그 뒤 자동차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해 비로소 오늘날과 같은 몸에 지니기만 해도 시동을 걸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다행히 그 키시스템의 가장 중요한 한 부분이 나의 차 안에 내장되어 있어서 일단 나의 키에 붙여진 센서를 댄 다음 삐 소리를 들은 뒤 다시 시동을 걸지 않으면 절대로 걸리지 않는다.

 

그것을 모르던 무지한 도적들은 엉뚱하게 밤을 새웠고 나와 차를 처참하게 망가뜨리고 떠났다. 망연 질색이 된 나를 마티네즈는 자기 차로 출근을 권했고 아니면 자신이 직접 데려다주겠다며 가족처럼 친절함을 보였다. 곧바로 두 대의 경찰차가 도착했고 너덧 명의 경찰들이 어수선한 워키토키 소리를 내어가며 나의 지문과 차에 찍혀진 지문들을 찾아 찍어갔다.

 

평화롭고 고요한 나의 이웃들도 하나둘 밖으로 나와 경악했다.분명 나쁜 지역 악동들이 우리가 사는 동네로 사업 출장을 온 거라며 서로 걱정을 했다. 몇 명이 망을 보았을 거라느니 그렇지 않고는 도저히 가능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나는 하루 직장일 대신 경찰서에서 필요한 일에 동의하고 차를 렌트하고, 보험회사에 연락을 마치고 돌아왔다.

 

참으로 허망했다.사람들 말처럼 그쯤에서 끝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그들은 권총을 소유하고 있을 테니 불행하게 흉악범들과 현장에서 이웃집 마티네즈 만나듯 서로 맞닥뜨렸었다면 불행은 더 클 수밖에 없다.그들이 나의 얼굴을 알고 있다면 언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그런 다행스러운 순리대로 일을 마치는 동안에도 자카랜다꽃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고 가로수 나무들은 누구의 짓인가를 알고는 있지만 말해줄 수 없다는 듯 어제와 같이 길을 호위하고 있었다.

 

한국의 라일락꽃은 보랏빛이다. 그러나 나는 향기가 없는 자카렌다꽃을 해마다 여름이 되면 화두에 올린다. 향기가 없어 홀대받는 꽃, 아름다운 빛깔대로 향기까지 현란하다면 사람들을 탐욕에 빠지게 하고 단테의 말처럼 육욕에 빠지게 되는 것이 두려워 신은 태곳적에 꽃의 자궁을 제거해 버렸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더 애처로운 꽃이라는 생각이 내 차가 찢긴 고통과 함께 여겨졌다.

 

보험회사에서는 새차를 사는 것보다 수리비가 더 크다고 내게 새차를 권했다. 처참하게 뜯겨 나간 내 차를 생각하면 새차를 얻어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게 상처를 남긴 악한을 어떻게 속죄시킬 수 있을지 그 아무것도 제시해 주지 않은 단테를 원망하며 그렇게 시간이 꽤 많이 흘러갔다. 추적추적 겨울비가 떨어진 자리에 자카렌데 꽃잎들이 서로 엉겨 붙고 있던 날이었다.

 

정신없는 날을 겪다 보니 마티네즈가 떠나간 것조차 잊었다. 돌아와 집 전화기에 빨간 불빛이 깜박대고 곧바로 경찰서에서 남겨 놓은 녹음을 알렸다.벌써 언제 일인데 범인도 잡지 못하면서 왜 인제 와서 귀찮게 와라가라 하냐고, 또 잡은들 무슨 특별한 일이냐고 심통을 낼 만큼 빨리 잊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나를 기억하는 범인들이 길에서라도 나를 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지우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다음날 돌아오는 길에 경찰서에 들러 이름을 남긴 경찰관을 찾았다.곧바로 그는 사진 한 장을 보이면서 혹시 아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나는 순간 깨물었던 입술을 펴지 못한 체 서 있었다. 이 사람은 나의 이웃 마티네즈다. 어떻게 그의 사진이 여기 있냐고 묻기 전에 침착하려고 애썼다.마티네즈, 그는 몇 번의 범행으로 지명수배 속에 살면서 그의 지문이 내 차 안에 있던 지문과 확연하게 맞는다고 했다.

 

그와 이웃으로 살며 웃음의 인사를 나눌 때는 햇살마저도 샘을 냈지만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온 세상이 캄캄한 암흑이었다. 한편 속으로는 이 분노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나는 동전의 양면 중 한쪽을 찾기 위해 마음의 동전을 던졌다.모든 것을 흐르는 대로 인정하며 살고 싶다. 내겐 더 이상의 연락을 피해달라는 부탁을 전하고 경찰서를 나왔다.

 

단테의 말처럼 오늘도 지옥에 떨어지지 않게 하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돌아오는 길목마다 벽보처럼 남겨 놓았다.


 

[문경구]

미주한인크리스찬문학협회공모 수필당선

문경구 kimurgin@hotmail.com


전명희 기자
작성 2021.03.09 11:20 수정 2021.03.09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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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