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와 접한 서울의 끝자락에 임진왜란 3대첩 중의 하나인 행주대첩이 있었던 행주산성이 있다. 1593년 3월 14일 벽제관 전투에서 승리한 왜군은, 약 3만의 병력을 3진으로 나누어 행주산성을 공격해 왔다.
당시 도원수 권율 장군은 약 2,300 명의 군사를 이끌고 행주산성에 이중으로 목책을 치고 각종 총통, 신기전, 화차 등 최신 병기를 배치한 채 참호를 파고 일전을 기다렸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 관군들은 당시 최정예 병사들이었다. 북을 울리며 각종 총통과 활을 쏘고 높은 곳에서 큰 돌을 굴려 적을 막았다. 수도하는 승려들도 누란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승병장 처영은 행주산성 서북쪽 자성에 진을 치고 있다가 행주산성의 목책이 뚫리자 승병들을 이끌고 달려가 육박전을 벌여 왜적을 격퇴시켰다.
권율 장군을 따라 올라온 삼남지방의 의병들도 죽을힘을 다해 싸웠다. 민, 관, 군 그리고 승려들까지 합세한 총력전이었다. 왜군은 결국 2,300 명의 조선 결사대 앞에 무릎을 꿇고, 1만여 명의 사상자를 낸 채 퇴각했다. 그날 권율 장군은 병사들에게 이런 말씀을 했다고 한다. "남자는 오직 의(意)와 기(氣)만을 생각할 뿐이지, 어찌 부귀와 명예를 논하겠느냐?"
행주산성에서 벌어진 일진일퇴의 공방전에서 화살과 탄환이 바닥나자 부녀자들이 치마로 돌을 날라 병사들을 도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여기서 행주치마가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그날의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산성으로 오르는 길은 한가롭기만 하고 봄이 오는 한강 하구에 갈매기들이 평화를 노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