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바뀐 몸과 머리

영원한 인간 수수께끼

토마스 만


4

 

이제 그들은 각자 제 볼 일 보러 제 갈 길을 갔다. 줌나 강가에 이르자 소달구지 우차와 마차들이 다니는 큰 행길로 해서 슈리다만은 쌀 찧는 절굿공이와 땔 나무 장작을 파는 사람을 찾아갔고 난다는 그의 아버지 대장간에서 쓸 철광석을 구하러 좁은 뒷길로 천민들이 사는 개펄마을로 향했다. 3일 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만나 같이 돌아가기로 하고.

 

사흘이 지나 난다는 약속한 장소에 먼저 와 기다렸다. 그의 철광석 짐을 나르는 회색 당나귀 한 마리와 함께. 약속한 시간이 지나도록 슈리다만은 오지 않았다. 그런지 얼마 안 있어 슈리다만이 나타났다. 지친 듯 그는 기운이 하나도 없어보였다. 난다를 보고도 반가워하는 기색도 없이. 난다는 얼른 슈리다만의 짐을 받아 제 당나귀 짐에 같이 얹었다. 그래도 슈리다만의 기분은 조금도 나아지는 것 같지 않았다. 같이 걸으면서 난다가 말을 걸어도 건성으로 대꾸하는 둥 마는 둥 하며 길을 가다 쉴 때도 그는 뭘 먹을 수도 밤에 잠을 잘 수도 없다 한다.

 

슈리다만은 몸이 어딘가 많이 아픈 것이 분명했다. 그 다음 날 저녁달도 없이 별빛 따라 길을 좀 걷다 말고 난다가 걱정이 되어 다시 묻자 슈리다만 말이 병나긴 정말 났는데 고칠 수 없는, 그냥 앓다 죽을 수밖에 없는 병이란다. 그의 말인즉슨 그 병의 성질상 그는 죽어야할 뿐만 아니라 죽고 싶다는 것이다. 그가 죽어야 할 당위성과 그가 죽으려는 의지가 전적으로 혼연일체가 된 상태라서 이 둘을 따로 분간할 수 없을 뿐더러 이 둘이 야합하여 어쩔 수 없는 간절한 욕구가 생겼다며 그는 난다에게 애원한다.

 

난다, 네가 정말 둘도 없는 내 다정한 벗이거든 내 청을 꼭 좀 들어 줘. 이 불치의 병이 내 속에서 날 말할 수 없이 괴롭히고 있으니 제발 네가 날 위해 화장용 장작더미를 쌓아 주려무나. 불에 타죽는 것이 차라리 덜 괴로울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아이고 맙소사. 이 웬 일일까? 난다는 생각하면서 그래도 정신을 잃지 않고 침착하게 말한다.

슈리다만, 형의 말처럼 병이 정말 낫지 않는 병이고 그토록 괴롭다면 형이 시키는 대로 하지. 형 옆에 형과 나란히 같이 나도 누울 수 있을 만치 장작더미를 크게 쌓을 거야. 난 형 없이 못 살아. 그러니 나도 형과 같이 죽을 거야. 형과 함께 불길로 뛰어들겠어. 그러나 그러기 전에 뭣 때문에 그토록 형이 괴로워하는지 나도 좀 알아야겠어. 도대체 웬 일이야. 그리고 병명이 뭐야. 뭔지 알아야 그 병이 불치의 병인지 아닌지 알 수 있지 않겠어. 그런 후에 나도 죽을 준비를 해야지. 내 진심을 형이 조금이라도 알아준다면 말 좀 해봐. 내가 형 입장이 되어 형의 머리로 생각해볼 수 있다면 좋겠어. 우리가 극단적으로 우리 목숨 끊어버리기 전에 정말 형의 병을 고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해 보게 제발 좀 얘기해봐.”

 

두 뺨이 홀쭉하게 여윈 슈리다만은 아무 말 않고 한참을 잠자코 있더니 고작 한다는 말이 증거도 설명도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난다가 계속 애원하고 사정하자 한 손으로 두 눈을 가린 채 그는 비로소 고백하듯 실토한다.

 

왜 우리가 몇 일전 사랑과 모성과 죽음의 여신 데이비 칼리 샘터에서 본 소녀 있지 않아. 네가 그네까지 태워줬다는 수만트라의 딸 시타 말이야. 그 여자의 모습이 내 머리, 가슴, 팔과 다리, 손과 발끝까지 스며들어 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고 먹지도 자지도 못하겠어. 이러다가 난 죽을 수밖에 없지.”

 

그러면서 그가 계속 하는 말이 이 병을 낫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더할 수 없이 아름답고 착한 그 처녀뿐인데 만일 그 어떤 남자가 신만이 꿈 꿀 수 있는 그런 신적인 행복을 원한다면 그는 죽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결론짓듯 말한다.

 

그토록 매혹적인 눈과 피부와 엉덩이를 가진 여자 시타틀 내가 차지할 수 없다면 차라리 나라는 존재가 아주 없어져버려야겠어. 그러니 날 화장할 장작더미를 쌓아줘. 어쩔 수 없는 이 신과 인간사이의 갈등으로부터 내가 벗어나는 길은 불에 타 없어지는 거야. 다만 네가 나를 따라 같이 죽겠다니 그게 안됐어. 그렇지만 또 한 편으로는 너도 나랑 함께 죽어야 해. 그 여자를 하늘 높이 네가 그네까지 태워줬다는 생각이 내 가슴 속에 질투의 불을 지른단 말이야. 그런 행운아를 멀쩡하게 이 세상에 남겨 논 채 나 혼자만 없어지긴 싫으니까.”

 

이 말을 듣는 순간 난다는 웃음을 터뜨리고 껑충껑충 뛰면서 슈리다만을 끌어안고 소리 지른다.

상사병이야, 상사병! 이제 알았어. 바로 그거야. 죽을병이지. 아휴 재미있어. 이 얼마나 웃기는 일이야.”

 

그러면서 난다는 노래를 부른다.

똑똑한 친구 똑똑한 친구

그렇게 똑똑하던 사람인데

이 웬 일일까 큰 일 났네.

그 꾀와 지혜 다 어떻게 하고

그만 멍텅구리 바보 되었네.

 

어쩌다 처녀 한 번 보고

저렇게 머리가 돌아버렸네.

나무에서 떨어진 원숭이네

아니 그보다도 더 우스워

나 참말 우스워서 죽겠네.

 

그러면서 그는 무릎을 치며 왁자그르르 크게 웃고 말한다.

 

슈리다만, 형을 위해 이 얼마나 다행이야. 더 심각한 사태가 아니라서. 다름 아니고 형 가슴이 사랑에 불붙은 거야. 사랑의 신 카마가 그의 꽃화살로 형의 심장을 꿰뚫었어. 벌이 윙윙거리는 소린 줄 알았더니 번개가 치는 천둥소리였어. 봄과 춘정의 여신 라티가 형에게 발동을 건 짓이야. 이건 매일같이 날마다 일어나는 아주 정상적이고 즐거운 일이야. 인간 특유의.

 

형은 오직 신만이 이런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그만큼 형이 열망하고 있다는 말이지. 내 말 좀 잘 들어봐. 오로지 신들만 그럴 수 있다는 것은 과장이고 잘못된 생각이야. 형이 형의 밭고랑에 형의 씨를 뿌리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거야. (난다는 일부러 이렇게 표현했다. 슈리다만이 짝사랑하고 있는 시타란 이름이 밭고랑을 뜻하기 때문에.) 저 옛날 속담이 있지 않아. 올빼미는 낮 눈이 어둡고 까마귀는 밤눈이 어둡지만 사랑에 눈이 멀면 낮과 밤을 모른다고. 내가 왜 이 교훈적인 말을 형에게 상기시키는가 하면 형이 어서 정신 좀 차리고 저 들소마을의 시타가 여신이 아니고 평범한 여자란 생각이 들도록 하기 위해서야.

 

그 샘터에서 벌거벗고 멱감는 그 아가씨가 형 눈엔 여신처럼 보였겠지만 다른 사람들과 매한가지로 옥수수도 갈고 죽도 쑤며 물레질하는 여자일 뿐이야. 부모도 있고 비록 그 아버지가 수만트라로 무사계급의 혈통이라고 좀 뽐낼는지 몰라도 그것도 별 거 아니라고. 슈리다만, 형에게 난다란 친구가 왜 있게. 이럴 때 어서 나서서 일을 꾸며 형을 기쁘고 행복하게 해주라고 내가 있는 게 아니겠어. 이것 보라고. 나부터 정신 차려야겠네. 미쳤어 내가? 바보같이 왜 내가 형과 날 화장할 장작더미를 준비하게. 그럴 게 아니라 어서 형의 신방을 꾸며야겠어. 특히 엉덩이가 기막히게 아름다운 형의 신부와 극낙 같은 삶을 누릴.”

 

한참 잠자코 있던 슈리다만이 말한다.

 

난다, 네 말이 좀 모욕적이긴 해도 네가 날 위로하려는 마음에서 한 선의의 충고이고 네 우정의 발로인 줄 내가 알기 때문에 난 너를 용서할 수 있어. 있고말고. 그뿐더러 네 말 가운데는 내게 희망적인 새로운 가능성을 시사하는 바가 있는 까닭에 네게 고맙기도 해. 이미 그 누구와 혼약을 해 논 사이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면 난 정말 못 견디겠어.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을 뿐이야. 화장불에 타 없어지는 수밖에 없겠어.”

 

그러자 난다가 우정을 걸어 맹세코 그건 괜한 걱정이며 시타는 결코 그 아무한테도 약정되어있지 않다고 슈리다만을 안심시킨다. 그녀의 아버지 수만트라가 그렇게 미리 정혼해 놓는데 반대했기 때문이라면서. 그 이유는 신랑이 되기로 한 어린 남자 아이가 뜻밖에 일찍 죽기라도 하면 딸이 어린 과부가 될까봐서. 또 실제로도 그녀가 아무하고도 약혼한 사이가 아니므로 태양신 축제에 그네 탈 처녀로 뽑힐 수 있었다고. 그러니 시타는 아무한테도 매이지 않은 자유의 몸이고 슈리다만은 높은 계급출신의 집안도 좋고 옛 인도의 성전 베다에도 정통해 있으니까 친구로서 자기가 나서서 두 사람의 결혼을 성사시키기만 하면 된다고.

 

그러자 슈리다만의 뺨이 잠시 경련을 일으키고 나서 그의 얼굴에 희망의 미소가 떠올랐다. 꿈속에서조차 제대로 바라볼 수 없는 여신 같은 존재가 아니고 시타는 그의 신부로 품에 안을 수 있는 여자란 생각에 갑자기 얼굴이 상기되고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일이 뜻대로 안되면 먼저 결심했던 대로 화장불에 타죽겠다고 하자 난다가 걱정하지 말라고 다시 그를 안심시킨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상세히 어떻게 두 사람의 결혼을 성사시킬 것인가를 말해준다. 슈리다만은 잠자코 뒤로 물러나서 기다리라고. 그러면 난다 자기가 나서서 제일 먼저 슈리다만의 부친 바바부티를 찾아뵙고 말씀드려 그로 하여금 시타의 부모님께 혼담을 건네도록 하고 그런 연후에 슈리다만을 대신해서 그의 친구로서 시타에게 접근해 정식으로 구애 청혼하겠노라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난다는 행동에 들어갔다.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이야기를 듣고 난 슈리다만의 아버지 바바부티는 기뻐했고 시타의 아버지 수만트라도 바바부티집안의 혼담이 싫지 않았다. 더군다나 값비싼 많은 선물을 받게 될 테니까. 난다는 난다대로 제 친구 슈리다만을 높이 칭찬하는 말을 아낌없이 시타와 시타의 부모님께 전했다. 그리고 나서 이번엔 시타의 부모님이 구혼하는 슈리다만의 신분을 확인할 겸 답례로 우공복지 마을로 찾아왔다. 따라서 아무 탈 없이 두 사람의 약혼이 이루어지고 두 집안이 약혼선물을 교환했다. 결혼 날짜가 다가오자 난다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인편으로 직접 친척, 친구, 친지 손님들 초대하랴 짐져 나르랴 신부 집 안마당에 혼인 축하하는 모닥불 지피랴.

 

마침내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 왔다. 몸에다 백단향과 장뇌유 그리고 코코야자기름을 바르고 갖은 보석으로 꾸민 신부가 신부복차림으로 얼굴에는 베일을 드리우고 나타났다. 이때 시타는 처음으로 그녀의 신랑 되는 슈리다만을 보게 되었지만 슈리다만은 시타가 구면이라면 구면이었다. 멱감는 샘터에서 보았으니까.

 

이렇게 해서 꿈도 꾸지 못하던 처녀를 슈리다만은 그의 아내로 맞게 되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 못할 지경임에 틀림없었다.


 

















서문강 기자
작성 2018.10.27 00:20 수정 2018.10.27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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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