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봄입니다. 산과 들에 생명의 기운이 가득하고, 꽃은 여기저기 피어납니다. 마음도 덩달아 기지개를 켭니다. 담 넘어 이웃집을 기웃거리니 지나는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봅니다. 훔치려는 것이 아니라, 꽃을 훔쳐보는 것인데도 말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는 것은 봄꽃에 마음이 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주 마음을 꽃으로 표현하는데요, 수많은 꽃말이 존재하는 이유 또한 이와 같다고 봅니다. 봄을 대표하는 꽃은 뭘까요? ‘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꽃은 연분홍 ‘진달래’와 노란 ‘개나리’입니다. 그중 봄을 여심으로 표현한다면 연분홍 진달래가 제격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봄에 진달래를 바라보며 눈에 담습니다. 진달래 여심을 훔칩니다.
훔친다고 하니 어감이 썩~좋지는 않습니다만, 사실 훔친다는 일이 무섭지 않습니까, 엄정한 대가를 치르게 되니까요. 빵 하나 훔쳐도 콩밥을 먹게 되고(옛날에 감옥에 가면 콩밥을 먹는다고 했는데, 정말 콩밥을 많이 줘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웃집 담을 넘으면 주거침입으로 신고를 당할 테지만, 무섭게 노려보는 CCTV 때문에 아예 꿈도 못 꾸지요. 남의 아이가 귀여워서 불쑥 손 내밀어 쓰다듬다가 봉변을 당했다는 어르신 얘기도 들립니다.
하물며 숙녀에게 함부로 말하거나, 쳐다보거나, 몸짓했다가는 예기치 않은 일이 생기겠기에 이 시대의 남성들은 작을 대로 작아진 가슴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초콜릿 한 조각, 커피 한 잔을 건네기도 조심스럽습니다. 낭만이 사라진 듯한 느낌도 들고요, 아무리 선의라 하더라도 마음을 표현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여심을 훔치기로’ 했습니다. 산에 들에 환하게 핀 진달래 여심을 눈에 담고, 글에 담기로 했습니다. 이 봄 진달래가 절정에 이를 때 ‘여심을 훔치러’ 산에 갈까 합니다. 더 늦으면 안 되겠지요, 봄날이 가기 전에 말입니다. 봄날이 간다니까 애절한 생각이 듭니다만, 한술 더 떠서 처절함을 안겨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봄에 들을 마땅한 곡이 없을까 생각해보니 ‘봄날은 간다’가 번뜩 떠오릅니다. 워낙 알려진 곡이라 유튜브에는 백설희, 조용필, 주현미, 장사익 등 내로라하는 여러 가수가 부른 다른 곡들이 올라와 있습니다. 그중 장사익 님의 노래가 마음에 들어옵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 다소 처지는 것 같으면서도 가슴 아리는 처절한 봄의 마음이 됩니다. 들으면서 왠지 빠져나올 수 없는 아픔 같은 것 말입니다…. 이번 주말엔 비를 흠뻑 맞고 처연하게 피어난 여심을 훔치러 가야겠습니다. 봄날이 가기 전에 말입니다.
우리 인생도 달콤한 봄비를 맞고, 한여름 뜨거운 햇볕과 사나운 폭우를 견디며, 나름의 서리 풍상을 다 겪어내지요. 다시 맞는 봄에 떠난 임(각자의 마음속)을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되돌아보면서…. 연분홍 치마가 하염없이 날리는 날, ‘봄날은 간다’를 들으며 봄을 보냅니다.
[신연강]
인문학 작가
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