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프로젝트] 엄지발가락 이야기

김수정

사진=코스미안뉴스


걸음걸이가 진짜 특이하네요. 걷는 것만 봐도 누군지 일겠네요. 하하.”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제법 가깝다고 생각하는 동료가 별 뜻 없이 던진 말이다. 평소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기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혀에서 화살을 꺼냈다. “이 씨 대머리도 얼마나 환한지 집에 형광등 값 안 들어 좋겠어요.”


이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입에서 나온 말을 주워 담고 싶어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수습이 불가능이었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던 이 씨는 밥숟가락을 팽개치더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성난 걸음으로 식당 문을 사납게 열고 더위 속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멍하니 벽에 걸린 시계만 쳐다보았다.


사람들은 남의 아픔에는 무관심하다. 생각 없이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는 근사한 논리를 이야기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돌을 던지는 당사자가 자신일 때가 비일비재하다. 가만히 다시 생각해보면 모순이 있다. 남의 아픔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아픔이 있다는 말 자체를 안 해 놓고 상대가 알아서 이해하겠지 하는 착각을 합리화시킨다. 개구리 역시 내가 여기 있다고 적극적인 뜀뛰기로 표현을 하던지 볼을 최대한 부풀려 힘껏 개굴개굴 울기라도 했다면 돌을 던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의 실수는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 두려워 안으로 숨기고 감추어 비밀 아닌 비밀을 만든 것이다.

나는 엄지발가락이 일반인보다 한마디 이상이 짧다. 그리고 발볼이 태평양이다. 굉장히 보기 힘든 경우다. 그렇다고 장애는 또 아니다. 지금까지 샌들은 신어본 적이 없고 굽 높은 구두는 상상 속 신데렐라이고 낮은 굽 구두도 발볼에 맞춰야 하니 항상 사이즈가 컸다. 몸의 가장 최전방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엄지발가락이 현저하게 짧다는 건 일상에 많은 불편을 준다. 평발이 아님에도 조금만 걸으면 발바닥 전체는 활활 타는 연탄 두 장이다. 걸음이 빨라지면 뒤뚱거리는 오리걸음이 된다. 균형을 잡아주지 못하니 신발은 항상 발뒤꿈치 바깥쪽만 닳아 두세 달에 한 번은 수선소에서 뒷굽을 갈아야 한다. 밤이면 퉁퉁 부은 발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이렇게 낳아준 엄마에게 원망을 보냈던 철없는 시절도 있었다. 친구들의 희고 예쁜 발에 신은 샌들이 참 부러웠다.

어릴 때는 발가락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모르고 자랐다. 집에서는 아무도 놀리거나 웃는 형제가 없었고 남들도 다 나랑 똑같이 생겼겠지 했다. 지독한 트라우마가 생긴 날은 초등학교 2학년 봄이었다. 짝지의 초대를 받아 집에 놀러 갔는데 마당에서 물장난하고 놀다 옷이랑 양말까지 젖어 짝지엄마가 새 양말로 갈아 신으라고 주면서 공포가 시작되었다. 젖은 양말을 벗고 새 양말을 신으려는데 집 안이 떠나가라 웃음소리가 들렸다.


너 발가락이 왜 그렇게 생겼니. 어머, 진짜 신기하다. 이런 발가락 처음 본다. 하하하.” 자지러지는 웃음에 방에 있던 아빠까지 나와 내 발을 물끄러미 보더니, 측은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엄지발가락이 짧으면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다는데 너는 아버지가 정말 일찍 돌아가시겠다. 이렇게도 짧을 수가 있구나.”

극한으로 내몰리면 서서도 기절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충격으로 경직된 몸은 뻣뻣했고 귀에는 매미 소리가 들렸다. 집에 어떻게 왔는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젖은 양말 두 짝을 가슴에 안고 마루에 힘없이 쓰러졌다고 언니에게 들었다. 아득한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데 그 밑에는 악마가 길고 붉은 혀를 날름거리며 발가락을 쪽쪽 빨아먹는 악몽을 꾸었다. 엄마는 밤새도록 수건을 빨아 땀에 젖은 나를 닦으며 이기 무신 일이고를 외치다 관세음보살을 수백 아니 수천 번을 불렀다. 병을 낫게 한다는 문수보살은 살려달라는 엄마의 울음에 다른 집에는 한 걸음도 못 가고 아마 내 곁을 지켰으리라.


그대로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은 꼴이었다. 그날 배려 없는 어른의 말 한마디로 아이는 심장에 큰 구멍이 났고 어른이 되어도 메워지지 않았다. 어디를 가도 아무리 더워도 양말이 없으면 불안했고 동행하는 여행이나 출장에는 마지막까지 기다리다 씻고 나와 다시 양말을 신고 잠을 청했다. 텔레비전에서 보니 어떤 여자분은 평생 남편에게 화장 안 한 얼굴을 보여준 적이 없다 하는데 나는 발가락을 보여 준 적이 없으니 그분은 시작점을 나는 종착역을 각각 숨기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엄마에게 울음을 담아 물었다. “내 발가락은 와이리 짧노. 창피해서 미치겠다.”, “미안타. 아를 뱄는지 모르고 동네 사람들캉 개고기를 묵은기라. 나이 사십에 아를 가졌다 생각이나 했겠나. 낳고 보니 진짜 개발처럼 엄지가 짧은걸 우짜노.”


가난이 집마다 소복이 들어앉아 하루 끼니를 걱정하던 시절의 고단함을 꺼내놓으면 장편은 안 돼도 단편은 족히 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당시 마흔에 자식을 본다는 것은 극히 드문 경우였고 헛구역질이 올라와도 해충인 것으로 여겼다는 넋두리에 무능력한 아버지를 대신해 졸지에 가장이 된 신세 한탄이 이어지면 어느새 엄지발가락은 기억상실이고 당시의 고생은 무용담으로 바뀐다.

알싸한 슬픔 한 덩이가 목에 걸리면 유난히 일찍 하늘로 소풍 간 아버지가 그립다. 짝지아빠의 말대로 아버지는 세상에 산책 나왔다 돌아가는 신선처럼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내가 스물다섯 살이 되던 해였다. 복중에 가장 큰 복이라는 자식에게 병시중 안 받고 안 아프고 그냥 자는 잠결에 떠나는 복이 그리 쉬운가. 세상에서 가장 큰 일이 태어남과 죽음인데 죽음에 무슨 복이 있을까만은 장례식에 모인 분들은 입을 모아 그렇게 이야기했다.


문상객이 돌아간 새벽. 어른이 되어 처음으로 아버지 앞에서 양말을 벗었다. 몽땅한 발가락이 서럽게 울었다. 내 자격지심에 자꾸만 어루만졌더니 엄지발가락이 물집이 잡혔다. 없어진 길이를 잡아당겨 늘릴 수만 있다면 하고 싶었다. 몇 시간을 영정사진 앞에서 소주 한 병을 마시며 소리죽여 하염없이 흐느꼈다. 괜찮다고 네 탓이 아니라고 국화꽃 속에서 당신은 미소를 보냈다. 나와 같은 편이라 알고 있던 삶은 가끔 의도치 않은 일로 옆구리를 깨문다. 설명도 해주지 않고 일방적인 행동으로 당황스럽게 한다.

좋은 남자를 만나 행복한 가정 속에 토끼 같은 자식을 키우며 편안하게 늙어간다는 지극히 평범한 계획이 긴급 수정되었다. 십 년의 결혼이 나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남자의 고백으로 끝이 났다. 자식도 나와 연관을 짓지 말라는 인간이길 포기한 행동에 잘 가라는 인사로 인연을 정리했다. 마음이 급했다. 당장 아이들과 살아갈 일이 현실이었고 닥치는 대로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 세상은 돈이 필요했고 나는 그 돈이 많이 모자라는 사람이었다. 발은 주인을 따라다니느라 거의 혹사 수준이었다. 버스에서 밟히기는 다반사고 계단에서 미끄러져 멍이 들기도 하고 무좀 때문에 가렵기도 했다. 피곤함에 지쳐 쓰러져 잠이 든 날에는 고약한 발 냄새가 이불까지 침투해 세탁기를 돌리기도 했다.

치열한 전쟁터인 생의 현장은 누구의 발가락이 짧은지에 관심이 없었다. 옆을 돌아보다 총에 맞으면 나만 손해였다.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세상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사는 사람보다 요리조리 피해 나가 잘살면서 열심히 하는 사람을 원했다. 무턱대고 열심히는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했다. 말수가 부쩍 줄었다. 세상에 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놓아봐야 알아줄 사람도 들어 줄 사람도 없음을 알고 입을 닫았다. 내 처지를 알고 동정하듯 쳐다보거나 안타까운 얼굴로 술잔에 술을 따라주는 자리가 싫었다. 말이 주는 부담감은 생각보다 컸다. 뱉은 말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하는 성격 탓에 내 발등을 찍은 일이 어디 한두 번인가!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이야기를 안 한 것이다.

오늘은 말이 부끄럽게 뜨거워 뚝배기 속 찌개처럼 넘쳐흘렀다. 입속에 침 한번 삼키면 넘어갈 일은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나 또한 상처를 받았다. 이 씨가 사라진 골목으로 향해 걸음을 옮겼다. 힘을 못 받는 엄지 대신 새끼발가락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뒤뚱거리며 여기저기 남긴 흔적을 찾는다. 그리고 생각했다. 다시 만나면 에어컨 바람이 시원한 찻집에 데려가 냉커피 한잔하며 눈 질끈 감고 양말을 벗겠다고. 내가 먼저 말해야 돌을 던질지 말지 상대가 결정하니까.

 

이 씨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글=김수정]


이정민 기자
작성 2021.04.07 09:56 수정 2021.04.07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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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