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프로젝트] 복숭아 트라우마

김수정

사진=코스미안뉴스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이 연분홍 비가 되어 내리는 봄밤이다. 동그란 달이 향기에 취해 잡고 있던 별의 손을 놓쳤는지 밤하늘에 둘의 술래잡기가 즐겁다. 봄이란 계절에 녹아든 아련한 추억 하나 없는 사람이 있을까? 저마다의 사연으로 가슴이 저린 사람은 아마 나처럼 밤하늘을 보며 두고 온 그리움 하나 꺼내 보겠지. 기뻤던 기억도 슬펐던 기억도 지나고 보면 인생의 지문으로 남아 개인의 역사로 오롯이 현재를 살게 한다.


나에게 봄은 지독한 아픔을 간직한 계절이다. 주변에서는 세월 가면 잊힌다고 자기의 이야기가 아니니 쉽게 말한다. 정작 당사자의 입장은 전혀 공감을 안 하면서 세상의 잣대에 기준치를 제시한다. 쉽게 말하면 나는 과일 중 털이 난 복숭아를 먹지 못한다. 희한하게 털이 없는 천도복숭아는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식탐을 부린다.

아니 왜 털 있는 복숭아를 못 먹어요? 신기하네.” 사람들은 뽀얀 속살에 달콤한 향이 가득한 복숭아를 포크에 찍어 먹으라고 권하다 도리질하는 모습에 동그란 눈으로 입을 맞춘 듯 똑같은 질문을 한다. “제가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어요. 털이 피부에 닿으면 가려워요.” 어색한 웃음으로 대충 얼버무리지만 말하지 못한 뭉클한 기억이 복숭아 솜털처럼 온몸에 간지럽게 남아있다.

바닷가 마을. 바다를 향해 열어 둔 앞마당에 금방이라도 넘실거리는 파도가 흰 소금을 한가득 부려놓고 바닷속 맷돌 이야기를 맛깔나게 들려줬다. 갈매기는 이따금 등대가 전하는 말을 물고 오기도 했다. 아침에 눈 뜨면 물안개 속으로 걸어가던 엄마의 발걸음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신 며느리이자 여섯 자식의 생계를 짊어진 어미의 고달픈 삶을 닮아 항상 쩔뚝거리는 소리가 났다. 농사꾼의 심장이 땅이라면 뱃사람의 심장은 바다였다. 펄떡이는 생명이 뭍으로 오르면 엄마의 재빠른 손은 나무 몇 개 못질한 생선 상자에 살아보겠다고 용쓰는 생선을 착착 담았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비린내를 뒤집어쓰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얼굴에는 아침 햇볕을 받은 생선 비늘이 반짝반짝 눈물처럼 빛났다. 어여쁜 새색시에서 억척스러운 영덕 댁이 된 어미의 일생은 늘어가는 주름만큼 패고 갈라지고 눈물겨웠다.

싱싱한 생선은 제값을 팔고 자식에게 먹일 생선은 늘 옆구리가 터지거나 눈알이 없거나 아가리가 찢어진 놈들이었다. 그마저도 감지덕지라며 쉴 새도 없이 생선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던 뒷모습이 아직도 어제처럼 선하다. 마을 이장 집 큰딸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사랑받으며 키워 부잣집으로 시집보냈는데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추락사고로 집안은 한순간에 풍비박산이 나고 감당하기 어려운 병원비는 꼬리에 꼬리를 문 빚으로 남아 동네 제일 부잣집을 똥구멍이 찢어지도록 가난하게 만들었다. 지독한 가난은 찌든 때가 낀 방바닥처럼 아무리 닦아도 나아지지 않았다. 무능력한 가장을 방안에 앉히고 세상으로 나가기 얼마나 두려웠을까! 외로움이 짙게 묻은 어깨가 가끔 들썩이는 걸 보는 날은 어렸지만 내 코끝도 아리고 알싸했다. 짭조름한 바닷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장만한 생선은 적당한 소금 간을 하거나 나무에 길게 끼워 말린다. 맛있게 염장이 되거나 말린 생선은 오래 두고 먹을 반찬이다. 넓은 바닷속 이야기를 간직한 생선들은 기름에 튀겨지거나 짭짭한 조림이나 얼큰한 탕이 되어 밥상에 올랐다. 보리밥 한 그릇이면 족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살림살이는 제자리였고 커가는 자식들에게는 돈이 필요했다. 그것은 우리 집만의 이야기가 아니었고 마을 사람 대부분이 가진 고민이었다.

살기 위해 다른 돈벌이를 찾던 마을 사람은 농사를 하나둘씩 짓기 시작했다. 바닷가에 어울리는 작물을 고민하다 복숭아를 심었고 얼마 안 되어 산등성이는 넓은 복숭아 과수원으로 바뀌어 갔다. 평평한 언덕마다 봄이면 분홍빛 꽃잎이 눈으로 날리는 고운 날이었고 나비와 벌들이 추는 춤은 화려한 비상으로 하늘에 닿았다. 가지마다 무겁게 달린 뽀얀 복숭아는 기특한 효자 노릇을 했다. 타지에 있는 자식들 학비로 구멍이 난 선박 수리비로 때로는 부모님의 병원비로 결혼한 자식의 집 사는데 보태는 비용으로 수확의 기쁨이 주었다. 그러나 그것도 기울어진 산비탈이라도 있어야 가능했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어찌 비벼보기라도 하는데 하루하루 목구멍이 포도청인 가난한 살림에 죽어 누울 땅 한 평도 없는 부모에게는 꿈조차 꿀 수 없는 사치였다. 아니 상상도 하면 안 되었다.

과수원에 일감이 있어 가는 날이면 엄마는 물러터진 복숭아 몇 개를 항상 챙겨왔다. 지금처럼 과일이 흔하지 않았던 때에 비싼 가격에 팔리는 과일을 주인이 줄 리 만무했다. 혹 물러 터지거나 땅에 떨어져 상품 가치가 없으면 달라고 사정사정하는 비굴함을 보여야 거들먹거리며 인심을 쓰는 척 줬다. 마흔에 얻은 막내딸을 주려고 손수건에 꼭 싸매고 온 모성을 알지 못하는 철부지 다섯 살이었다.

야아, 복숭아다.” 더위에 물러 동그란 모양이 찌그러진 바닥에 과일즙이 흥건했다. “우리 딸 주려고 가지고 왔다 아이가.” 땀에 달라붙은 옷이 떨어지지 않아 억지고 벗으며 나를 돌아봤다. “원래 복숭아는 캄캄한 밤에 묵는기다. 이뻐질라믄”, “?” 몰랐다. 성하지 않은 과일이라 숨어 있는 벌레가 보이면 딸이 놀랄까 하는 마음에 어두운 밖에서 먹으라고 말한 내리사랑을. 먹어보라는 말 한마디 없이 허겁지겁 입에 복숭아를 넣고 좋아하는 자식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눈길이 그립다.


그날은 바람이 불다 그쳤는지 흔적도 없이 고요한 봄밤이었다. 엄마와 언니와 더위를 피해 뒷산에 있는 작은 못에 목욕을 가자 했다. “복숭아도 가져가자. 어두운 데서 먹으면 예뻐진단다.” 목욕 대야에 통통한 아기 엉덩이처럼 살이 오른 복숭아를 챙겼다. 마을을 지나 산으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초승달은 구름 뒤에 숨었고 별만 가득 연못에 내려앉아 있었다. 달빛을 받아 잔잔히 반짝이는 물 위에 풀벌레 소리가 고요를 깨웠다. 엄마와 언니는 바다 사람인지라 수영을 잘했다.


시원한 물에 들어가 지친 하루의 피로를 풀며 이리저리 수영하는 걸 보다가 가져온 복숭아 생각이 나서 꺼내 한입 베물었다. 물컹. 뭔가 움직임이 입안에 가득했다. 뱉어보니 커다란 벌레가 두 토막이 나서 살아 꿈틀거렸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소리가 비명으로 터졌다. 놀라 뒷걸음을 쳤는데 이끼 낀 흙을 그대로 밟아 물에 그대로 꼬꾸라져 빠졌다. 물속에서 마주한 생애 첫 죽음의 공포. 절대적 공포는 어린 소녀의 입을 막았고 살려달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숨을 조여 오는 물은 헛발질하는 다리를 수초로 꽁꽁 묶었다. 내 기억은 여기까지다.


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상하게 조용해 살폈더니 못 위에 복숭아만 둥둥 떠다니고 내가 없더란다. 놀라서 못 속을 뒤져서 바닥에 가라앉은 몸을 건져 올렸다고 조금만 늦었으면 죽었을 거라 했다. 축 처진 몸을 끌어안고 살려달라고 울부짖던 목소리가 떠오른다. 통곡에 가까운 어미의 간절함이 하늘에 통했는지 저승사자의 손을 잡고 죽음의 문턱을 넘으려던 찰나 다시 손을 뿌리치고 이승의 정신을 잡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생명의 호흡으로 세상과 다시 만났다. 대신 물과 복숭아에 대한 트라우마를 달갑지 않은 선물로 받았다. 수영장은 고사하고 목욕탕도 수십 번 마음을 먹고 용기를 내야 가는 편이다. 문을 여는 순간부터 훅하고 치고 들어오는 숨 막힘이 아득하다. 털이 있는 복숭아를 보면 몸에 소름이 돋고 신경이 곤두선다. 도전해 보라 해서 나이가 들면서 눈 딱 감고 시도를 해봤는데 등줄기에 전율이 흐르고 발가락이 간질거렸다. 포기하자. 머릿속에 최면을 건다. 관심을 두고 보니 가까이에 사과나 배를 못 먹는 지인도 있고 오이나 고등어 알레르기가 있는 분도 꽤 있었다. 나름의 사연이 있으리라.

봄이면 땅속에 숨겨둔 씨앗이 기지개를 켠다. 자연의 순리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생명은 하늘과 바람과 땅의 숨결로 세상을 배운다. 자연이나 인간이나 똑같은 순환을 거치며 경험의 나이를 먹는다. 아픈 기억을 돌아오는 봄마다 내려놓다 보면 하얀 복숭아가 사랑스러워질지도 모를 일이다. 미친 듯이 먹고 싶을지도 모른다. 트라우마를 이겨내기보다 받아들인다면 조금 쉽게 자신을 설득해 볼 수도 있다. 가끔은 복숭아보다 나를 위해 물에 뛰어든 엄마의 트라우마가 더 크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깊이를 모르는 사랑의 일만 분의 일도 갚지 못했는데 물어보지도 못했는데 당신은 하늘로 여행을 떠났다.

 

다시 만나면 꼭 물어봐야겠다. 당신의 기억은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김수정]

이정민 기자
작성 2021.04.08 11:57 수정 2021.04.08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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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