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프로젝트] 버스를 통해 바라본 것

김태진


버스를 통해 바라본 것

나를 알아주는 버스가 있을 거야

 

 

버스 얘기에 앞서, 필자의 사정에 대해 얘기를 해야 한다. 안 하면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올해로 30살인 애송이 청년이다. 국어국문학과를 나와, 취업 길도 막막한 답 없는 남성이다. 나이가 30이 되면 순수하게 연애를 할 수 없다. 당연히 결혼을 전제로 한 이성 교제를 해야 하기때문에 그런 연애시장에서, 필자는 단연코 생태계 최약체이다. 일단 돈이 없다. 모아놓은 돈도 없고, 차도 없다. 그러니까 버스를 타고 다니다가 이런 글을 구상해서 썼겠지.


직업도 없고 능력도 없다. 심지어 남성적인 매력도 없다. 근본적인 가장 큰 문제는, 연애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스펙도 부족한데 경험도 없다. 연애 시장의 늦깎이 신입인 것이다. 그리고, 86년생부터 98년생까지, 극악의 성비를 보이는 이 최악의 세대는, 남성의 25%는 장가를 못 가는 실로 엄청난 성비를 자랑한다.


그 중간에 딱 끼어 있는 91년생 올해 30살인 필자는 그저 막막하고 막연할 뿐이다. 연애부터 결혼까지, 모든 것이. 하지만 한 해 한 해 나이는 먹어 간다. 장가를 가는 친구들은 점점 늘어난다. 연애 하고 있는 친구들도 많다. 슬슬 주말에 술 한잔할까? 놀러 갈까? 했을 때 아 미안 마누라 때문에’, ‘아 미안 여자친구랑 데이트해야 해서하는 친구들의 비율이 높아져 간다. 결국, 나와 비슷한 처지의 노총각들과 놀아야겠지만, 그들은 또 절묘하게 외지에 나가서 일하고 있어 만나기가 어렵다. 버스를 타고 기다리고 다시 환승하고, 그러면 생각이 많아져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냥 확 아무 여자나 만날까. 실은 아무 여자나 만날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다. ‘경로 의존성이라는 단어가 있지. 로마 시대 때 정비한, 말 두 마리가 끄는 마차길의 간격이, 수천 년의 시간이 지나 로켓을 옮기는 규격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그만큼 사람은 적응과 안정의 동물이다. 여자친구가 없는 기간이 30, 여자와 얘기를 안 해본 기간이 너무 많기에 나는 이제 여성이라는 동물과 어떻게 얘기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환심을 살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나를 보고 설레게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게 됐다. 연애 세포가 고장이 난 것이다.


만나는 봐야지 고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화려하지 않고, 못 생기지는 않았지만 내 눈에는 예쁘고 귀엽고, 알뜰살뜰하고 소소한 것에도 행복함을 느끼고, 아끼는 것을 즐기는 안빈낙도(安貧樂道) 같은 성격에,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주체적이며 능동적이고, 그러면서도 내 뜻을 이해해주고 함께해주고 서로에게 배우고 가르치고, 그럴 수 있는 반려를 원하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그런 여성이 어디에 있겠는가. 나는 돈도 없는데. 설령 있다고 해도 수많은 남성들이 귀신같이 채간다. 나는 애초에 여성들과 접촉도 못 하는데. 문제다 문제. 확실히 문제다. 만나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버스를 기다린다.


나는 사무실에서 아무 버스를 타서 터미널에 간다. 내 고장 군산의 거의 모든 버스는 일단 터미널은 들린다. 그래서 터미널에서 환승하는데, 그때까지 수많은 버스들이 지나간다. 앞서 말했듯 터미널에는 거의 대부분의 버스가 일단 지나가게 노선도가 짜여 있으니까. 내가 타야 할 버스는 60번대 버스이다. 그 외의 버스를 타면 내가 사는 동네와는 아예 동떨어진 다른 동으로 가거나 심하면 면 단위로 갈 수도 있다. 그래서 무조건 정해진 버스로 환승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60번대 버스를 기다린다.


그 순간 나는 한 가지 번뜩하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 기다려야 하는구나. 나는 기다려야 하는구나. 내가 아무리 시간이 없고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 조급증을 느껴도, 나는 내가 타야 하는 번호의 버스를 타야 한다. 목적지가 정해져 있기에, 그 버스를 타야 한다. 설령 60번대 버스가 오기 전에 10, 20번대 버스가 빨리 와서 그것을 탄다고 해도, 내 집은 그대로이기에, 나는 그 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 10번 버스를 10분 정도 빨리 탔다고 해도, 집까지 안 가기 때문에 중간 어딘가에서 내려 집까지 25분 정도 걸어가야 한다. 결국, 10분을 기다려서 60번대 버스를 타는 것이 더 현명한 것이다. 그게 지금은 무의미하게 시간을 허비하는 기다림 같지만, 내 목적지를 위해서는 그것이 가장 빠른 길인 것이다.


내 인생도 이와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꼭 연애가 아니더라도,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을 때. 여기서 지금 기다려야 할지, 아니면 가야 할지. 선택은 내가 한다. 책임도 내가 진다. 그렇다면 최대한 전체적인 효율이 좋은 쪽을 택하는 게 맞겠지. 지금은 연애 경험도 돈도 능력도 없는 나지만, 지금까지 연애 한 번 안 해본 나지만, 분명 나를 알아봐 주는 버스가 올 거야. 그 버스가 오기 전까지, 아무 버스나 타면 안 돼. 오늘도 나는 나만의 버스를 기다린다.


이정민 기자
작성 2021.04.25 11:59 수정 2021.04.25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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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